컨텐츠 바로가기

01.04 (토)

[기억할 오늘] '거짓말'로 시작된 새해 벽두의 참극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1.1 로즈우드 학살
한국일보

1923년 1월 로즈우드 흑인 주민들이 집단 피신했다가 백인 폭도들에 의해 전소된 집. 위키피디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1923년 1월 1일, 미국 플로리다 섬너(Sumner)의 22세 백인 여성 패니 테일러(Fannie Taylor)의 집에서 비명 소리가 울렸다. 놀라 달려간 이웃에게 테일러는 심하게 맞은 듯한 얼굴로 흑인 괴한이 침입했다고 말했다. 보안관과 남편(James Taylor)은 주민들을 모아 범인 색출에 나섰다. 도망칠 곳은 딱 한 곳, 인근 숲속이 아니라면 지척의 흑인 마을 로즈우드(Rosewood)뿐이었다.

19세기 초 삼나무를 원료로 한 연필공장이 들어서면서 조성된 마을 로즈우드는 19세기 말 오랜 벌목으로 목재가 고갈돼 공장이 폐업하면서 흑인들만 남은 마을이 됐다. 당시 마을의 200여 가구 가운데 백인 가구는 잡화점 한 곳뿐이었다.

광기의 ‘사냥’이 시작됐다. 총과 몽둥이에 사냥개까지 동원한 백인들은 집집마다 들이닥쳐 강압적인 수색에 나섰고 저항하는 이들에겐 몽둥이를 휘두르고 불을 질렀다. 소문은 이내 인근 게인즈빌(Gainesville)로 전해져 500여 명의 K.K.K단원들이 득달같이 가세했다. 제시 헌터(Jesse Hunter)라는 흑인 갱단 출신 전과자가, 아무런 근거 없이 유력 용의자로 지목됐다. 테일러의 집 빨래를 해주던 한 여성의 조카는 섬너로 끌려가 살해당했고 헌터의 은신처로 추정된 집에선 총격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소문은 점점 험악해지며 백인 폭도의 수를 불렸지만 보안관은 주지사의 방위군 투입 제안마저 거부했다. 약 일주일간의 폭동으로 흑인 6명과 백인 2명이 숨졌고 수많은 이들이 다쳤다. 마을은 폐허가 됐다.

잊힌 듯하던 사건은 60년 뒤인 1982년 한 지역신문 기자의 연속 보도로 다시 세상에 알려졌다. 주 정부는 진상 조사를 통해 사건 당일 남편이 집을 비운 사이 한 백인 남성이 패니를 찾아왔었다는 목격담을 확보, 패니가 외도 사실을 숨기기 위해 거짓말을 한 것으로 결론 지었다.
주 정부는 200만 달러 보상 법안을 제정, 생존한 유족 일부에게 배상하고 자녀 교육기금을 마련했다.

최윤필 기자 proose@hankookilbo.com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