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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4 (토)

[김창규의 시선] 장수 시대, 버핏의 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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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김창규 중앙SUNDAY 경제산업에디터


지난달 29일 타계한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재임 당시보다 퇴임 이후 더 활발한 활동을 해 ‘가장 위대한 전직 대통령’으로 꼽힌다. 도덕과 인권을 앞세웠지만 재임기간(1977~81)은 순탄치 않았다. 2차 오일 쇼크, 이란의 미 대사관 인질 사건,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등으로 지지율이 급락했다. 정치적 경쟁자로부터 ‘나약하고 무능한 대통령’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결국 그는 1980년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에게 참패해 재임에 실패했다. 하지만 퇴임 이후 활동은 빛을 발했다. 카터재단을 설립해 분쟁 종식, 인권 보호, 질병·기아 퇴치 등을 통해 국제 평화 정착에 헌신했다. 에티오피아·수단 등 국제 분쟁 지역에서 중재자로 활동했다. 2002년엔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100번째 생일을 맞은 지 두 달 뒤에 사망한 그는 역대 미국 대통령 가운데 최장수 전직 대통령이 됐다.



인간은 노년에도 활동토록 진화

버핏 “장수 시대 가정 화목 위해

유언장 내용을 자녀와 공유해야”

진화 분야의 석학인 대니얼 리버먼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활동과 노화 사이의 관계를 진화생물학과 인류학적 측면에서 설명한다. 그는 ‘활동적인 조부모 가설(Active Grandparent Hypothesis)’을 통해 인간의 장수는 선택됐을 뿐만 아니라 노년에 가능한 한 많은 자녀·손주 등이 생존할 수 있도록 열심히 일해야 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주장한다. 고립된 산속에서 수렵채집 생활을 하는 탄자니아의 하자(Hadza)족을 사례로 설명한다. 하자족 할머니의 하루는 새벽에 불을 피우고 어린 자식을 먹이고 돌보는 일로 시작된다. 몇 시간 후 할머니는 부족의 다른 젊은 여성과 함께 숲으로 향한다. 2세 이하의 유아를 등에 업고, 6~7세 이상의 어린이를 데려가곤 한다. 주식인 감자과의 덩이줄기(tuber)를 캐기 위해서다. 이 식물을 찾기 위해 때로는 1시간가량 산속을 돌아다녀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눈에 띄는 장면이 목격된다. 하자족 여성은 모두 식물을 캐기 위해 땅을 파지만 할머니가 어머니보다 일을 더 많이 한다는 점이다. 할머니는 하루에 5~6시간 땅을 판다. 반면 ‘젊은’ 어머니는 이보다 적은 4시간가량 땅을 판다. 할머니는 아이에게 젖을 먹이거나 아이를 돌보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할 필요가 없어서다. 한 연구에 따르면 18~40세 미국 여성은 하루 평균 5756걸음을 걷는다. 이 숫자는 나이가 들면서 급격히 감소하고, 70대가 되면 절반 수준으로 뚝 떨어진다. 이와 달리 하자족 여성은 미국인보다 두 배나 많이 걷고 나이가 들어도 크게 줄지 않는다. 석기시대에 아무도 몇 시간 동안 걷고, 달리고, 파는 등의 육체노동을 피하지 못한 것처럼 인간은 활동하도록 진화해 왔기 때문에 노년이 되어서도 움직임을 멈추지 않는 게 노화를 늦추는 지름길이라는 분석이다.

포춘 500대 기업 가운데 최고령 최고경영자(CEO)는 94세의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이다. ‘오마하의 현인’으로 불리는 그는 1965년부터 무려 60년 가까이 이 회사를 이끌어 왔다. 포춘 500대 기업 CEO의 평균 나이가 57세, 평균 재임기간이 7년인 걸 고려하면 ‘최고’라는 수식어를 붙이는데 지나침이 없다. 그런 그도 세월의 힘을 이기지 못하는 듯하다. 그는 지난해 11월 주주에게 보낸 서한에 특별한 내용을 담았다.

“시간은 결국 누구에게나 이깁니다. 지금까지 저는 매우 운이 좋았지만, 머지않아 죽음이 저를 찾아올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돈이 적든, 많든 상관없이 모든 부모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하고 싶다고 했다. “자녀가 성숙해졌을 때, 유언장에 서명하기 전에 자녀에게 읽게 하세요. 자녀가 당신의 결정에 대한 논리와 당신 사망 후에 직면하게 될 책임을 충분히 이해하도록 하세요. 질문이나 제안이 있다면 주의 깊게 듣고 합리적인 내용을 선택하세요. 당신이 더 이상 대답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자녀가 유언에 대해 ‘왜’라고 묻는 것을 원하지 않을 테니까요.” 그는 2023년 11월 99세로 사망한 찰리 멍거 부회장과의 경험담을 들려줬다. “찰리와 저는 사후에 유언장 때문에 상속자가 혼란스러워하고 때로는 화를 내면서 가족이 분열되는 경우를 많이 목격했습니다.…(중략) 또한 부유한 부모가 사망 전에 유언장을 충분히 논의했을 때 가족이 더 가까워지는 몇 가지 사례를 봤습니다. 이보다 더 만족스러운 일이 있을까요?”

버핏 회장의 자산은 200조원을 넘어선다. 이 자산의 95%는 60세 이후에 형성됐다. 그는 자산의 99%를 기부한다고 선언했음에도 가족과 ‘유언장 대화’를 통해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버핏 회장의 바람처럼 새해에도 충분한 대화로 건강함과 화목함이 모든 가정에 깃들기를 기대한다.

김창규 중앙SUNDAY 경제산업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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