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 65조의 탄핵은 국회의 소추와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위헌·위법을 저지른 고위 공직자를 파면하는 비상(非常) 절차다. 그 위헌·위법은 중대해야 한다. 그런데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은 ‘헌재 재판관 임명 거부’ ‘특검 임명 회피’ 등의 사유로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은 한덕수 국무총리를 탄핵소추했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의결정족수를 헌재 주석서와 달리 대통령(200석)이 아닌 일반 국무위원(151석) 기준으로 정하면서 앞으로도 ‘압박용 탄핵’이 가능하게 됐다.
야당도 이런 사유로 헌재가 한 총리를 파면할 것을 기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탄핵소추를 강행한 배경에는 헌법 65조 3항이 있다. 국회가 탄핵소추를 의결하면 그 정당성을 불문하고 헌재 결정 시까지 공직자의 권한을 정지하도록 한 규정이다. 탄핵소추 그 자체로 공직자를 압박하는 것이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대북 송금 사건을 수사하던 이정섭 검사의 탄핵소추는 재판관 만장일치로 기각됐지만 9개월간 손발이 묶였다. 그동안 민주당의 ‘대표 방탄용 탄핵’으로 검사들이 피해를 봤다면 이제는 그 범위가 방통위원장, 감사원장, 나아가 대통령 탄핵소추 중 국정을 총괄할 권한대행에게까지 미치게 됐다.
헌법 65조는 현행 헌법인 ‘1987년 체제’의 산물이다. 국회 권한을 강화해 탄핵 절차를 쉽게 하면서 국회에는 아무런 책임도 지우지 않았다. 지성우 성균관대 로스쿨 교수는 “국회의 권한남용이 발생하지 않으리라는 낭만적 생각으로 만든 헌법으로 전 세계에서 탄핵소추가 가장 쉬운 나라가 됐다”고 했다. 그는 “정치권이 ‘제도적 자제’를 발휘하던 이전과 달리 21대 국회부터 심한 여소야대가 발생하면서 앞으로도 거대 야당의 탄핵은 반복될 것”이라고 했다.
헌법 남용은 개헌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 특히 국회 의결로 일방적으로 직무를 정지하는 제도는 손봐야 한다. 민사소송에서 어떤 회사 임원의 직무를 정지해 달라는 가처분을 내면 법원이 심문기일을 열어 그 필요성을 따진다. 그런데 국가 운영을 좌우할 공직자를 탄핵소추하면서 국회 의결만으로 직무를 정지한다는 것은 매우 기형적이다. 직무 정지 없이 빠르게 탄핵 절차를 심판하거나, 헌재나 법원이 직무 정지 필요성을 판단하는 사법 통제가 필요하다.
거대 야당의 폭주를 예상하지 못한 ‘87년 체제’는 국가적 참사의 수습 과정에서도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헌법 교과서에서도 찾기 어려운 ‘대행의 대행’ 체제는 역설적으로 개헌의 필요성을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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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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