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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3 (금)

"원자로에서 89초 동안 견뎠고, 첫 흑인 여성 장관 및 57명의 소수인종 판사 임명" , 특별했던 지미 카터의 기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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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워싱턴포스트(WP) 카터 전 대통령의 11가지 특별한 일화 소개

파이낸셜뉴스

임기 3년 차인 1979년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백악관 웨스트윙 지붕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한 뒤 연설하고 있는 지미 카터 당시 미국 대통령. 연합뉴스


[파이낸셜뉴스]"녹고 있는 원자로 속에서 89초 동안 견뎠고, 재임 기간 첫 흑인 여성 장관을 임명하고, 57명의 소수인종 판사와 41명의 여성 판사를 임명한 병원에서 태어난 첫 대통령…"
지난 29일(현지시간) 100세를 일기로 타계한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여러 신기록들을 세운 전임들과 다른 '특별한' 미국 대통령이었다.

미 워싱턴포스트(WP)는 '지미 카터에 관한 놀랄만한 11가지 사실'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카터 전 대통령에 관해 잘 알려지지 않은 일화들을 전했다.

해군 중위 시절, 캐나다 원전 폭발 처리 위해 녹고 있는 원자로에서 89초 동안 작업

그는 해군 중위로 복무하던 1952년 캐나다 온타리오주의 원자로 폭발 사고 당시 방사성 물질을 제거하는 긴급 임무에 투입된 일이 있었다. 당시 28세였던 카터는 보호장비를 착용한 채 원자로에 들어가 89초 동안 있었다. 일반인이 1년 동안 흡수하는 양과 같은 방사선에 피폭된 카터 전 대통령은 6개월 동안 소변에서 방사능 양성 반응이 나왔다고 나중에 밝혔다.

진보주의자인 그는 임기 동안 57명의 소수인종 판사와 41명의 여성 판사를 임명했다. 이는 그 이전 미 대통령들의 소수인종 및 여성 판사 임명 횟수를 모두 합한 것보다 많았다.

최초의 흑인 여성 장관도 그의 내각에서 탄생했다. 주택도시개발부 장관에 이어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낸 퍼트리샤 로버츠 해리스였다.

해군사관학교를 나와 해군 장교를 지냈던 카터 전 대통령은 신기술과 과학에 대해서 앞선 혜안이 있었다. 임기 3년 차인 1979년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백악관 웨스트윙 지붕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했다. 재임 당시 이란 정권 교체로 인한 석유 수급 불안정으로 고유가와 인플레이션에 시달린 그는 외국산 석유 의존도를 줄이겠다는 계획을 세우며 그 의지를 보여줬다.

이 태양광 패널은 후임인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에 의해 철거돼 스미스소니언 박물관 등으로 보내졌다. 2000년까지 미국 에너지 수요량의 20%를 태양광으로 전환하겠다는 그의 꿈도 실현되지 못했다.

선거운동 비행기에서 지상과 컴퓨터로 연결해 선거운동 한 '얼리 어답터'


해군을 나와 가업인 땅콩 농장을 운영하던 그가 1976년 대선 선거운동을 할 때 이용하던 비행기 이름은 '땅콩 1호기'(Peanut One)였다. 이 비행기에는 3만피트(9144m) 상공에서도 지상과의 연결 하에, 선거 관련 전략을 짤 수 있도록 컴퓨터 장비가 설치돼 있었다. 당시로는 첨단이었다.

WP의 정치부 기자였던 데이비드 브로더는 이 컴퓨터에 대해 "애틀랜타 선거운동 본부의 일정과 미디어, 직원들과 정교한 회로망으로 연결돼 있다"라고 전했다.

본명이 '제임스 얼 카터 주니어'(James Earl Carter Jr.)인 그는 실제 이름 '제임스'가 아닌 '지미'(Jimmy)라는 별칭으로 취임 선서를 한 최초의 대통령이었다.

빌 클린턴(본명 윌리엄 제퍼슨 클린턴)·조 바이든(본명 조세프 로비니트 바이든 주니어) 대통령도 취임 이후 '빌'과 '조' 등 별칭으로 불렸지만, 취임 선서 때는 본명을 사용했다.

부인 로절린 여사와의 결혼 생활은 역대 미 대통령의 혼인 지속 기간 중 가장 길었다. 무려 77년간 부부로 지냈다. 로절린 여사와 1945년에 처음 만난 카터 전 대통령은 이듬해 결혼했고, 지난해 로절린 여사가 향년 96세로 작고할 때까지 부부생활을 유지했다. 로절린 여사는 결혼 당시 카터 전 대통령보다 3살 어린 18세였다.

77년 동안의 결혼 생활, 동성 결혼은 찬성하면서도 낙태 반대한 독실한 기독교인


퇴임 후 고향인 조지아주 플레인스로 돌아온 카터 부부의 침실 2개짜리 목장 주택은 집 밖에 세워진 비밀경호국(SS)의 방탄 차량보다 가격이 저렴했다.

그는 취임 4개월 후인 1977년 5월 런던 방문 당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버킹엄궁에서 주최한 만찬에 참석해 여왕의 모친 엘리자베스 대비의 입술에 작별 입맞춤을 했다는 영국 언론의 보도가 나오면서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엘리자베스 대비는 "남편 사후에 뻔뻔스럽게 내 입술에 입맞춤을 한 사람은 그(카터)가 유일하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회고록에서 이를 부인하면서 작별 입맞춤을 대비의 뺨에 가볍게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진보주의자이면서도 독실한 기독교인이던 카터는 낙태 문제에서는 보수적이었다. 그는 1973년 연방 차원의 낙태권을 보장한 '로 대 웨이드' 대법원 판결에도 불구, 개인적으로 낙태를 반대했다.

하지만, 그는 퇴임 후에는 동성 결혼에 찬성하기도 했다. 그는 2015년 미 대법원이 동성결혼 합헌 판정을 내린 뒤 인터뷰에서 "예수님도 동성결혼을 승인하실 거라 믿는다"라고 말했다.

그가 1982년 세운 카터센터는 4년 뒤부터 아프리카 기니벌레 박멸 운동을 펼쳐 이를 박멸하는 데 공을 세웠다. 기니 애벌레는 고인 물속에 있다가 인체에 들어오면 극심한 통증을 동반하는 궤양을 만든다.

병원에서 태어난 첫 미국 대통령, 기니벌레 박멸 운동 등 성과


카터 전 대통령은 1977년 취임 직후 엘비스 프레슬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고 회상한 적이 있다. 그는 당시 통화에 대해 "그(프레슬리)는 완전히 취해 있었고, 무슨 말을 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라고 말했다.

같은 해 8월 프레슬리가 별세하자 그는 성명에서 "20여년 전 그는 전례 없는 영향력을 지니고 등장했고, 아마 그와 동일한 영향력을 지닌 이는 없을 것"이라고 애도했다.

그는 또 병원에서 태어난 '최초의 대통령'이었다. 그는 1924년 10월 1일 조지아주 플레인스의 60병상 규모의 병원에서 태어났다. 20세기 초반에는 거의 모든 출산이 가정에서 이뤄졌는데, 그가 병원에서 태어난 것은 모친인 릴리안이 그 병원의 간호사였기 때문으로 보인다.

한편, 그의 장례식은 내달 9일(현지시간) 워싱턴DC 국립성당에서 거행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부고 성명을 내고 카터 전 대통령의 장례일을 국가 애도일로 지정했다.

june@fnnews.com 이석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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