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현 바이오중기벤처부 차장 |
인내외양(忍耐外揚), 중소기업계가 뽑은, 2025년 경영 환경을 표현한 사자성어다. ‘인내심을 발휘해 어려움을 이겨낸다’는 뜻이다. 사실 이 의미는 눈앞에 둔 2025년만이 아닌 그 어느 해에 적용해도 중소기업계의 상황을 나타내는 데 어색하지 않다. 지난해 이맘때 뽑은 2024년의 사자성어만 봐도 그렇다. ‘운외장천(雲外蒼天)’, 어두운 구름 밖으로 나오면 맑고 푸르른 하늘이 나타난다는 의미인데 난관을 극복하면 더 나은 미래가 있다는 점에서 인내외양과 일맥상통한다. 중소기업계는 늘 인내를 요하는 난관을 헤쳐 오고 있다는 얘기다.
흥미로운 것은 인내외양의 의미보다 이 사자성어에 얽힌 이야기가 중소기업계가 직면한 또 하나의 난관을 간접적으로 드러낸다는 점이다. 인내외양은 기존에 있는 사자성어가 아니다. 중소기업계의 현재 상황을 토대로 인공지능(AI)인 챗GPT가 내년 경영환경을 전망해 생성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디지털 전환 흐름에 맞춰 AI를 활용해 폭넓게 사자성어 후보를 수집했다고 설명했다. 인내외양과 함께 기존에 있었던 사자성어인 응변창신(應變創新), 극세척도(克世拓道), 위기지학(爲己之學), 영고성쇠(榮枯盛衰)가 후보에 올랐는데 중소기업인 36.4%가 인내외양을 골랐다.
AI 기술은 우리의 삶 곳곳에 스며들어 변화를 일으키고 있고 중소기업도 이를 비켜 갈 수는 없다. 하지만 AI가 중소기업계의 상황을 간명하게 네 자로 표현한 것과 달리 중소기업과 AI의 거리는 여전히 상당하다. 중기중앙회가 올 하반기 300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AI 활용 의향 실태조사’를 한 결과 현재 AI를 적용 중인 중소기업은 5.3%에 그쳤다. 앞으로 도입을 희망하는 기업은 16.3%로, 5분의 1에도 미치지 못했다.
중소기업이 시대적 흐름인 AI 도입에 이렇게 소극적인 이유는 필요하지 않다고 여겨서다. 취재 현장에서 만난 중소 제조기업 대표 대부분은 "우리 사업에 AI는 필요하지 않다"고 했다. 예를 들어 의료 기기를 제조하는 중소기업은 공장에서 제품을 만들고 판로를 개척하는 데도 바쁜데, AI 적용은 다른 나라 얘기로 여길 수 있다. 하지만 마케팅 예산을 짜고 고객 이메일이나 전화를 응대하는 데도 AI를 활용할 수 있다. 이렇게 하면 인력을 충원하지 않고도 늘어난 업무를 감당한다. 이는 AI를 활용해 중소기업이 생산성을 높인 실제 사례 중 하나다. 이렇듯 중소기업이 AI를 적용할 수 있는 분야는 결함탐지, 불량률 분석 등 생산 단계부터 시장 분석, 마케팅, 향후 판매 예측까지 다양하다. AI 도입이 순기능만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여기서 차이가 빚어지고 이는 시간이 지나면 더 크게 벌어질 수 있다. AI 기술이 빠르게 발전할수록 중소기업과 대기업 간 양극화는 더 극명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AI 도입은 산업군을 가리지 않고 전 세계적으로 피할 수 없는 흐름이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우리 경제의 주춧돌인 중소기업이 글로벌 경쟁력을 상실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맞춤형 지원이 필요하다. AI 도입에 대한 중소기업의 마인드를 바꿔주는 것부터 경제적 측면의 지원, 시스템적 지원까지 고루 이뤄져야 한다. 변화를 꺼리는 중소기업에 AI를 확산하는 일 역시 ‘인내외양’의 시간이 필요할 수 있다. 지금 중소기업의 AI 리터러시(이해하고 활용하는 능력)를 높이는 작업부터 시작해야 한다.
김철현 바이오중기벤처부 차장 kc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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