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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2 (목)

복합 리스크 맞는 새해 주택시장…뱀처럼 '앉아서 기다려라'[안장원의 부동산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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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안장원 부동산선임기자


새해로 넘어가는 길목의 주택시장이 119년 전인 1905년 을사년 겨울마냥 을씨년스럽다. 그해 11월 일본의 강압에 따른 강제합병 조약인 을사늑약이 체결됐다. '을씨년스럽다'는 표현은 망국의 치욕을 안겨준 을사년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달 초 외세가 아니라 국민의 손으로 뽑힌 대통령이 주권자를 유린한 비상계엄 사태가 가져온 국가 비상사태의 한파가 주택시장에도 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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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데없는 비상계엄 사태로 혼란스럽고 침울한 정치·경제적 상황에서 주택시장이 새해를 맞고 있다. 사진은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주택가.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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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절반 넘게 아파트값 '마이너스'



연말 주택 매매거래가 크게 줄고 집값이 약세를 보이고 있다. 서울시의 서울부동산정보광장 자료를 보면 12월 아파트 계약 신고 건수가 1400건 정도로 11월 3200여건의 절반에도 한참 못 미친다. 한 달 신고기한을 고려하면 40% 줄어든 셈이다. 한국부동산원의 주간아파트가격동향에 따르면 지난달까지 0.04% 이상이던 상승률이 0.01%로 떨어졌다. 강남 상승 폭이 줄어들고 강북을 중심으로 하락세가 확산하고 있다. 25개 자치구 가운데 비상계엄 사태 직전 2곳이던 ‘마이너스’ 구가 지난주 13곳으로 나타났다.



리스크 많고 불확실한 주택시장

경기 하강, 탄핵, 규제 완화 비상

금리 인하, 공급 부족 영향 본격화

'상저하고' 예측 실현될지 관심

매달 중순을 기준으로 집계하는 월간 통계도 지난 7월 1%를 넘어섰던 서울 상승률이 이달 0.26%로 내려갔고 전국은 6개월 만에 상승세를 멈췄다. 이런 추세라면 서울만이 아니라 강남도 머지않아 하락세로 돌아설 것으로 예상된다.

주택시장이 고금리 충격으로 인한 집값 하락 수렁에서 올해 빠져나오는가 싶었는데 대통령 탄핵 정국에 휩쓸려 다시 빨려 들어가는 것일까.

8년 전 박근혜 전 대통령 당시의 전례를 보면 탄핵 정국은 시장에 큰 충격을 주지 못했다. 거래가 늘고 가격이 오르던 시장에 찬물을 끼얹기는 했지만, 잔과 받침대만 잠시 떨게 한 찻잔 속 태풍처럼 지나갔다. 탄핵 정국이던 2016년 12월~2017년 3월 3개월간 주택 매매 거래량이 직전 3개월의 50~60% 수준으로 급감했는데 연말·연시의 계절적 요인도 작용했다. 연초 예년 거래량과 비교하면 조금 줄어든 정도다. 아파트값 상승세가 꺾였어도 급락세를 보이지 않았다.

함영진 우리은행 부동산리서치랩장은 “정치적으로 어수선해 매수를 미루면서 거래가 줄긴 했지만 급매물이 늘지는 않아 시장이 잠시 제자리걸음을 했다”고 말했다. 2004년 3~5월 고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정국 때는 집값이 되레 올랐다.

박 전 대통령 탄핵 선고 이후 시장은 뒤로 잡아당겼다가 놓은 장난감 자동차처럼 튀어나갔다. 거래가 급증하고 가격이 뛰며 문재인 새 정부 집값 급등의 서막이 됐다.



집값 약세에다 탄핵 정국 가세



하지만 박 전 대통령 탄핵을 소환해 위안을 삼기에는 그때와 지금의 상황이 다르다. 그때보다 지금 불확실성이 훨씬 크고 리스크가 얽힌 복합 위기를 맞았기 때문이다. 탄핵 절차가 순조롭고 빠르게 진행되지 못해 정국의 혼란이 심해지고 길어지면 주택시장도 견뎌내지 못한다. 시계 제로의 정국에서 시장은 바짝 엎드릴 수밖에 없다. 매물이 쌓이며 급매물이 늘면서 집값 하락 압력이 커지게 된다.

여기다 이미 위축된 국내 경제를 흔들 수 있는 미국 트럼프 새 정부의 변수도 대기하고 있다. 비상계엄 사태가 터지기 전인 지난달 말 한국은행은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4%에서 2.2%로 2%포인트 낮추고 새해 성장률을 1.9%로 예상했다. 그런데, 올해 전망치와 내년 예상치를 더 낮춰야 할 판이다. 성장 동력이 계속 식어가는 가운데 비상계엄 사태까지 겹쳤고 미국발 먹구름도 짙다. 내우외환의 한파가 거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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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근영 디자이너


추운 날씨를 이겨낼 주택시장 체력이 강하지 못하다. 집값을 버틸 힘이 부친다. 올해 집값이 상승세로 돌아서고 거래가 늘다가 정부의 ‘대출 스트레스’를 받고 고개를 숙인 데는 비싼 집값이 한몫하고 있다. 정부는 대출 한도 산정에 스트레스 금리를 적용해 대출금액을 줄였다. 한국은행 기준금리가 내려갔지만 대출 규제 영향으로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되레 올랐다.

2022년 10월 연 4.82%까지 올라갔던 예금은행 주택담보대출 평균 금리가 올해 7월 3.5%까지 내려간 뒤 다시 슬금슬금 오르더니 10월 4%를 넘어서며 11월 기준 4.3%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서울의 연소득 대비 집값이 10.3배다. 주택 수요자가 줄어든 대출금을 충당하고 연 4%가 넘는 이자를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나마 집값을 떠받쳐온 규제 완화도 ‘비상’이 걸렸다. 정부가 추진해온 규제 완화가 탄핵 정국 와중에 갈팡질팡하게 됐고 중장기 규제 완화도 계획대로 실행될지 기약할 수 없게 됐다. 재건축 특례, 재건축부담금 폐지, 종합부동산세(종부세)·취득세 완화, 공시가격 현실화 폐지, 임대차 규제 완화 등이 낙동강 오리알 처지가 될 수 있다. 지난달 선도지구 선정과 함께 새해 본궤도에 오를 예정이던 수도권 1기 신도시 재건축도 맥이 빠지게 됐다.

백준 J&K도시정비 대표는 “1기 신도시 재건축이 비상계엄 사태 날벼락을 맞게 됐다”며 “정책 결정이 늦어지며 정부의 추진력이 약해지고 집값 전망 악화로 주민들의 추가분담금 불안은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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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국평'(국민 평형)으로 불리는 전용 84㎡가 역대 최고가인 60억원에 거래된 서울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원베일리.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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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입주 아파트 30만가구 밑으로



물론 시장이 회복될 요인도 있다. 새해 기준금리가 추가로 인하될 것으로 보여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내림세를 탈 것으로 예상된다. 코로나19 이후 집값 급등과 그 이후 급락에서 보여지듯 금리는 주택시장을 좌우하는 주요 변수다.

여기에 주택공급 부족 우려까지 있다. 현 정부 들어 크게 줄어든 주택건설 인허가 실적 영향이 새해부터 나타나기 시작한다. 한국부동산원과 부동산114에 따르면 2016년 이후 연간 30만 가구를 상회하던 새 아파트 입주 물량이 새해 30만가구 아래로 내려갈 것으로 예상된다. 수요가 줄어든 상황에서 공급 감소의 가격 견인 효과가 크지 않지만 공급 부족이 누적되면 나중에 수요 증가와 맞물려 큰 힘을 낼 수 있다. 금리 인하와 공급 부족은 새해 지배적인 집값 전망인 ‘상저하고’(상반기 내리다 하반기 반등)의 주요 근거가 되고 있다.

생물학자인 최재천 이화여대 교수는 새해를 상징하는 뱀을 ‘sit-and-wait predator’(앉아서 기다리는 포식자)라고 했다. 사냥감을 쫓아다니는 게 아니라 똬리를 틀고 앉아서 기다린다는 말이다. 에너지 사용을 줄여 가까이 다가온 먹잇감을 노리는 경제적이고 안정적인 사냥법인 셈이다. 리스크가 산재하고 불확실성의 안개가 짙은 새해 주택시장에서 새겨둘 만한 생존방식이다.

안장원 기자 ahnjw@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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