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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2 (목)

제주항공 참사 발생 이틀째, 유가족 호소가 비명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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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핑부터 희생자 신원 확인 과정 잡음 해결안돼 유가족 막막함 가중
참사 이틀째엔 제주항공 경영기획본부장 짧은 사과에 ‘조치 미진’ 비판도


한겨레21

12월30일 전남 무안국제공항 2층에서 한 유가족이 이진철 국토교통부 부산지방항공청장(왼쪽서 두 번째)에게 유가족들의 답답한 마음을 토로하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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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커 교체) 안 한다는 거잖아! 그러니까 언제까지! 언제까지!”



2024년 12월30일 오후 1시45분께 전남 무안국제공항 2층 대합실. 전날 발생한 제주항공 참사 유가족인 한 중년 남성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토교통부 부산지방항공청과 제주항공, 전남경찰청, 전남도청 등에서 나온 사람들이 참사 상황에 대한 브리핑을 하고 있었는데, 마이크에서 자꾸만 잡음이 나왔기 때문이다. 행사장에서 흔히 쓰이는 앰프 스피커에 의존한 마이크 소리는 넓은 국제공항 대합실에선 작게만 들렸고, 브리핑 전달사항은 뒷좌석에 있는 유가족들에게 들리지 않았다. 정부 쪽 발표 한 마디 한 마디에 집중한 유가족들에게 제대로 들리지 않는 브리핑 소리는 그 자체로 지옥이었다. 이런 상황에 대한 문제제기가 참사 첫날인 12월29일부터 이어졌지만, 국토부 쪽의 대처는 바뀌지 않았다. 이에 폭발한 유가족이 욕설까지 하며 분노를 표한 뒤이야 전남도청 관계자가 “오후 3시까지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답했다.



울분을 토하는 유가족은 이 중년 남성만이 아니었다. 또 다른 남성은 희생자 신원과 시신 확인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저 안에 지금 어떤 상황인지 모르시죠? 처음에는 검시반이 없어서 (시신 확인을) 못 한대. 그리고 검시반이 온 뒤에는 경찰이 공간이 없어서 못 한대”라고 말했다. 이 남성은 이진철 부산지방항공청장을 막아서면서 문제를 개선해달라고 호소했다. 다른 유가족에게선 “버스에 타라고 해서 탔더니 2시간을 기다렸다”는 목소리도 나왔고, 국토교통부와 경찰 등 현장에 나온 부처의 소통이 매끄럽지 않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유가족은 특히 희생자 신원 확인 절차를 아직 마치지 못한 유가족들에게 향후 절차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에 대한 설명 없이 무작정 기다리게만 하는 상황을 가장 답답해했다. 한 중년 남성은 “어제 밤에 아직 신원 확인 안 된 사람들은 디엔에이(DNA)를 채취해서 국과수(국립과학수사연구원)로 보낸다고 했는데, 헬기로 몇 분이 진행됐고, 진도율이 어떻게 되고, 몇 시에 끝나는지” 왜 말해주지 않느냐고 항의했다. 나원호 전남경찰청 수사본부장은 “유족 세 분의 DNA 채취가 늦어져 오전 11시가 다 돼서 헬기가 간 걸로 안다. 늦어도 내일(12월31일) 오전까지는 확인이 가능하다”고 해명했다. 국토교통부는 12월30일 오후2시30분 기준 사망자 146명 신원확인을 완료했고, 33명은 DNA 분석 등을 통해 신원을 확인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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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석 제주항공 경영기획본부장(마이크 든 이)이 12월30일 전남 무안국제공항을 찾아 유가족에게 사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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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항공의 사과가 미진하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한 유가족은 현장에서 “제주항공 회장 왜 사과 안 하냐”라고 외쳤다. 김이배 제주항공 대표가 12월29일 전남 무안국제공항을 찾아 사과했고, 12월30일에는 이정석 경영기획본부장이 나와서 다시 사과했지만 부족하다는 외침이었다. 이 본부장은 이 자리에서 “합의 내용이 담긴 종이 한 장으로 여러분의 슬픔을 다 담을 수는 없겠지만 슬픔을 깊이 통감하고 반성하고 있다”며 “유족께 예의를 다하기 위해 장례 관련 직·간접 비용 일체, 그외 장례·숙박 이용비 등을 지급할 것을 확인드린다. 사고와 관련된 민형사상 책임과 인적·물적 배상 등의 경우에 법령에 따라 별도의 책임을 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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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30일 오전10시30분께 전남 무안국제공항에서 국토교통부가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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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오후 3시15분쯤엔 가족을 잃은 슬픔으로 공항 전체를 울릴 만큼 높은 고성을 지르는 유가족도 있었다. 한 재난구호쉘터에서 울음이 섞인 비명이 계속 나오자 재난심리회복지원센터 관계자가 현장으로 달려가 유가족 상태를 확인하기도 했다. 무안국제공항 2층 2번게이트 앞 엘리베이터 인근에선 “보고싶어 죽겠어… 보고싶어 죽겠어… 미치겠어… 불쌍해서 어떻게 해, 불쌍해서 어떻게. 잘 갔다온다고 했잖아”라는 혼잣말을 반복하며 공항을 힘 없이 배회하는 여성 노인도 보였다. 검은 옷을 입은 이 여성은 혼잣말을 반복하다 이내 공항바닥에 쓰러져 머리를 바닥에 부딪히며 울분을 토했다.



박한식 유가족협의체 대표는 “여기 형제자매도 있지만, 한순간에 부모를 잃은 자식들도 많다. 한순간 소년소녀가장이 됐고, 이 사람들이 앞으로 살아가야 되는데 보상을 받으려면 진상규명을 명확하게 해야 되지 않겠나. 인재냐 자연재해냐에 따라 틀려지는 부분인데 (현장을 방문한) 우원식 국회의장에게 끝까지 좀 봐달라고 얘기했다”고 말했다.



이번 사고에서 미성년자들도 목숨을 잃었다. 교육부는 12월30일 참사 사망자 179명 가운데 초중고생이 11명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구연희 교육부 대변인은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정례브리핑에서 “초등학생 4명, 중학생 3명, 고등학생 4명으로 각각 집계됐다”고 말했다. 어린이집에 다니는 영유아도 1명 사망했다.



글·사진 무안(전남)=손고운 기자 songon1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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