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1월 31일 백악관에서 지미 카터 당시 미국 대통령과 영부인 로절린 여사가 미국을 방문한 덩샤오핑 중국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앞줄 오른쪽)을 맞이하고 있다. /지미 카터 라이브러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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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수교를 이끌며 중국이 개혁·개방 시대를 맞이하게 한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100세 일기로 타계했다는 소식에 중국 정부가 애도를 표했다.
마오닝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30일 브리핑에서 “중국은 카터 전 대통령의 서거에 깊은 애도를 표한다”며 “카터 전 대통령은 중·미 수교의 추진자이자 결정자였고, 장기간 중·미 관계의 발전과 양국의 우호적 교류·협력을 위해 중요한 공헌을 했다. 우리는 이를 높이 평가한다”고 말했다.
마오 대변인은 “카터 전 대통령이 재임 기간 대만과의 외교적 관계를 강화했는데, 그의 유산 가운데 이 부분은 어떻게 평가하는가”라는 질문에는 “우리는 어떠한 미국-대만 공식 왕래에도 일관되게 단호히 반대해왔다”며 “이 문제에 관해 우리의 입장은 일관되고 매우 명확하다”고 답했다.
중국 매체들은 카터 전 대통령의 미·중수교 업적을 조명하며 부음 소식을 전했다.
30일 중국중앙TV(CCTV)는 ‘지미 카터 전 대통령 서거, 그의 재임 기간 중·미는 수교했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고인이 1977년부터 1981년까지 미국의 제39대 대통령으로 재임할 때 미·중이 정식 외교관계를 맺었다고 전했다.
카터 전 대통령은 당시 중국 최고 지도자 덩샤오핑과 함께 몇 차례의 비공식 협상을 거쳤다. 중국은 1978년 개혁·개방을 선언했으며 양국은 1979년 1월 1일부터 정식으로 수교했다. 미·중수교는 냉전 종식과 세계화 시대 도래의 첫 단추로 여겨진다.
중국신문망도 미·중수교를 카터 전 대통령의 주목할 만한 업적으로 꼽으며 “중·미 양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역사적 결정이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카터 전 대통령의 중국과의 인연과 발언을 소개했다.
보도에 따르면 카터 전 대통령은 1949년 미 해군 잠수함 승무원으로서 상하이에 방문했다. 카터 전 대통령과 중국과의 첫 인연이다. 이 매체는 카터 대통령이 1977년 백악관에 입성한 뒤 중국과의 공식 수교를 주된 의제로 삼았고, 1978년 수교하면서 중화민국(대만) 대신 중화인민공화국(중국)을 정부로 인정했다고 전했다.
중국신문망은 카터 전 대통령이 “장기적으로 볼 때 미국 국민들은 중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스스로의 번영과 평화, 행복한 삶에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라고 했다고 전했다. 또 2008년 미·중수교 30주년을 앞두고 그는 “내 생일인 10월 1일은 중국 국경일과 같은 날”이라면서 “덩샤오핑을 비롯한 중국 지도자들은 내가 중국의 친구가 되는 것은 운명이라고 했다”고 한다.
트럼프 1기 행정부가 ‘미·중 무역전쟁’을 선포했을 때는 카터 전 대통령이 특별 기고문을 통해 “미·중관계는 양국과 세계에 매우 중요하다”면서 “양국이 대화를 통해 갈등을 해소하고 균열을 복구해야 한다”고 했다고도 전했다.
펑파이신문은 ‘지미 카터 : 미국의 마지막 온건파 대통령’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카터 전 대통령은 재선에 실패하며 암울하게 대통령 경력을 마쳤지만 퇴임 후 사회활동가로서 두각을 나타내며 “자유주의와 보수주의 사이의 온건한 다리가 됐다”고 전했다.
펑파이신문은 카터 전 대통령이 임기 막판 물질주의를 비판한 것을 두고 “미국이 직면한 위기를 일종의 도덕적 설교로 밀어붙였다”며 “1970년대 후반 냉전이 심화하고 사회가 분열되는 상황에서 미국의 리더십 역할을 제한하는 것은 당시에는 터무니없이 보였다”고 평했다.
이 매체는 그러면서 “후임 도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겁에 질린 미국 국민에게 보수주의와 민족주의, 미국 예외주의를 강조했고, 공화당의 정치적 르네상스를 가져왔다. 트럼프 시대의 공화당원들은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그로부터 큰 이익을 얻고 있다”고 전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카터 전 대통령은 덩샤오핑 이후 장쩌민에서 시진핑까지 중국 지도자들과 교류했고, 장쩌민 전 주석은 그를 중국의 ‘라오펑유(오랜 친구)’라고 불렀다고 전했다.
SCMP는 카터 전 대통령은 평화중재자이자 인권옹호자로 기억되고 있다며 1978년 캠프 데이비드에서 이집트 대통령 안와르 사다트와 이스라엘 총리 메나헴 베긴 간 회담을 통해 평화조약을 체결한 것을 들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도 “중국에 가장 우호적인 미국 대통령이 별세했다”는 애도의 글이 올라오고 있다.
베이징 | 박은하 특파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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