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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2 (목)

[광화문에서/유성열]‘비상 조치’가 필요한 건 尹 내란 혐의 수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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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유성열 사회부 차장


2013년 10월의 일이다.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은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야당을 비난하고 정부·여당을 옹호하는 글을 트위터에 올려 여론을 조작한 혐의로 국가정보원 직원 3명을 체포했다. 이를 뒤늦게 파악한 국정원이 “통보 절차를 전혀 거치지 않았다”고 반발하자 수사팀은 직원들을 15시간 넘게 조사한 뒤 석방시켰다. 국정원 직원을 구속하려면 국가정보원직원법에 따라 미리 국정원장에게 통보해야 한다.

수사팀은 지휘라인인 2차장검사와 서울중앙지검장에게 보고하지 않고 법원에서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집행했다. 검찰은 지휘 체계를 무시한 항명으로 규정하고 수사팀장을 직무에서 배제했다. 그러자 수사팀장은 직후 열린 국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수사 외압’을 받아왔다고 폭로했다. 중앙지검장이 “야당 도와줄 일 있느냐”며 사실상 수사를 막은 탓에 자신의 전결로 영장을 발부받아 강제수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는 주장이었다. 국감에서 그는 “저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도 했다.

법무부는 수사팀장에게 정직 1개월의 중징계를 내린 뒤 대구고검으로 좌천시켰다. 그러나 법원은 수사팀이 이 같은 ‘비상 조치’를 동원해 수사한 국정원 여론 조작 의혹의 실체를 인정했다. 국정원법 위반 혐의는 물론이고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까지 유죄가 인정됐고, 국정원장(원세훈)은 2018년 대법원에서 징역 4년이 확정됐다. 당시 수사팀장은 윤석열 수원지검 여주지청장, 12·3 비상계엄을 선포한 현 대통령이다.

비상계엄 선포 사건에 대한 수사가 윤 대통령의 턱밑까지 진행되면서 윤 대통령이 약 1년 전부터 야당의 입법 폭주를 막고 부정선거 의혹을 규명하기 위한 ‘비상 조치’를 언급해 왔다는 진술이 이어지고 있다. 윤 대통령이 현행법을 어겼다는 비판을 받으면서까지 시도한 비상 조치 2개 중 하나는 끝내 성공해 최고권력자의 반열까지 오르는 발판이 됐다. 하지만 나머지 하나는 위헌·위법 비판 속에 국민 지지를 얻지 못하고 실패하면서 탄핵심판과 내란 우두머리 혐의 수사를 동시에 받는 처지가 된 것이다.

비상 조치로 흥한 대통령이 비상 조치로 몰락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국민들은 헌정질서가 한 달 가까이 회복되지 않는 상황에 고통을 겪고 있다. 검찰총장까지 지낸 법률가이자 일국의 대통령인 사람이 ‘송달 거부’라는 꼼수를 쓰는 모습을 봐야 하는 고통도 상당하다. 국민들은 국정원을 신속히 강제수사해야 한다며 상관에게 보고하지 않고 직원들을 체포해 온 그가, 검찰과 공수처의 출석 요구에는 일절 응하지 않는 모습도 생생히 목격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29일 공수처의 3차 출석 요구도 끝내 불응했다. 이제 윤 대통령이 자진 출석할 가능성은 사라졌다고 봐야 한다. 윤 대통령이 검사 시절 국정원을 수사할 때처럼, 윤 대통령에 대한 비상 조치가 시급한 상황인 것이다. 공수처는 체포영장 청구 등 강제수사 방안을 총동원해 증거 인멸을 신속히 막아야 한다. 그리고 대통령경호처는 공수처의 비상 조치를 막아서는 우를 절대 범하지 않길 바란다. 국민들은 지금 헌정질서 회복을 위한 비상 조치를 바라고 있고, 대통령경호처가 충성할 곳은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이다.

유성열 사회부 차장 ry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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