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대 청년이 먼저 읽고 그리다. 김재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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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끝별 | 시인·이화여대 교수
12월3일 밤 10시30분께, 저녁 세안을 하는데 틀어놓은 뉴스에서 “비상계엄을 선포합니다”라는 말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그날 밤 우리는 두려움과 공포로 밤을 지새우며 실시간 라이브로 직접 봤다. 무장 계엄군에 대한 우리 국민의 트라우마가 얼마나 큰지를, 나 같은 겁보마저 계엄이 웬 말이냐며 국회 앞으로 가야 한다고 서성였으니. 국회의원의 존재와 그들의 역할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그러니 잘 뽑아야 한다는 것을, 대통령은 더더욱.
황당하고 무도한 비상계엄 선포 후 불안과 공포 속에서도, 생중계되는 현장에서도 감동의 순간들이 있었다. 국회의사당 담을 넘어 의원들이 본회의장에 속속히 들어설 때, 국회 앞으로 달려온 시민들이 맨몸으로 장갑차를 막아설 때, 한 여성 정치인이 계엄군의 총구를 맨손으로 잡고 “부끄럽지도 않냐”고 외칠 때, 보좌관들이 소화기를 뿌려가며 온몸으로 계엄군들을 막아설 때, 여당 대표와 의원 18인이 계엄 해제 투표를 위해 달려와 본회의장을 지킬 때, 당론을 거스르고 여당 의원 3인이 1차 탄핵 투표에 참여할 때, 그중 1인이 기자들 앞에서 울먹이며 소신을 말할 때….
쉴 틈 없이 이어지는 뉴스 속보에도 있었다. 한 특전사 단장이 국회 진입의 책임을 인정하면서 부대원들의 무죄를 호소하고 가족에게 미안하다며 울먹일 때, 탄핵이 가결되자 구름떼처럼 몰려든 시민들의 탄식과 함성과 눈물이 여의도에 울려 퍼질 때, 응원봉을 든 여성 청년들이 힙한 노래와 춤과 소품들로 집회를 축제로 만들어낼 때, 특히 경찰과 대치 중인 남태령 농민 트랙터 부대를 응원하러 달려온 여성 청년들이 밤새 떼창을 하며 “차 빼라”를 외칠 때….
그리고 그 밤 이후 20여일이 지났음에도, 진상이 속속들이 드러나고 있음에도, 반성하고 책임을 져야 할 자들이 작당하고 우기기, 버티기, 시간 끌기, 물타기를 하고 있다. 뻔뻔하게 뻔하고 빤한 이 ‘쌈마이’ 정치에 절망하며 김수영 시를 되뇐다. “풍경이 풍경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곰팡이가 곰팡이를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중략)/ 졸렬과 수치가 그들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바람은 딴 데에서 오고/ 구원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오고/ 절망은 끝까지 그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절망’).
김수영은 반성할 필요가 없거나 반성할 수 없는 소소한 풍경이나 곰팡이, 그리고 여름이나 속도에 반성을 촉구함으로써 정작 반성해야 할 장본인들을 호명해 낸다. 반성조차 하지 않음으로써 ‘절망’을 불러일으키는 ‘졸렬과 수치’의 당사자들이다. 졸렬은 ‘옹졸하고 천하여 서투른 것’이고, 수치는 ‘다른 사람들을 볼 낯이 없거나 스스로 떳떳하지 못한 것’이다. 반성이란 자신의 이런 졸렬과 수치를 적확하게 인정하고 그에 합당한 대가를 치르는 일이다. 권력이 권력의 졸렬을 반성하지 않고, 우매가 우매의 수치를 책임지지 않으려 한다. 하긴 그것이 권력의 생리인지도 모른다. 안보가, 경제가, 외교가, 생활이, 민심이 이렇게 쩌억 쩌억 금이 가고 있는데도, “그놈들은 털끝만치도 다치지 않고 있다/ 보라 항간에 금값이 오르고 있는 것을/ 그놈들은 털끝만치도 다치지 않으려고/ 버둥거리고 있다”(‘육법전서와 혁명’).
김수영이 시를 썼던 1960년대는 절망의 시대였다. 김수영 시에 길을 묻던 시대는 “나의 양심과 독기를 빨아먹는/ 문어발”(‘적’)처럼 적이 분명한 시대였고, 그 적이 교묘하게 제 권력을 이용해 ‘마케팅’을 하는 시대였다. 그런 시대는 절망을 불러일으킨 ‘바람’의 뿌리를 캐고 ‘구원’의 인과를 밝혀야 하는 시대다. 1980년대의 손때가 묻은 낡은 김수영 시집을 다시 펼쳐 보는 즈음이다. “거짓말의 부피가 하늘을 덮는다 나는 눈을/ 가리고 변소에 갔다 온다”, “한 가지를 안 속이려고 모든 것을 속였다/ 이 죄의 여운에는 사과의 길이 없다”(‘거짓말의 여운 속에서’). 60여년 전에 썼던 김수영의 시들이 왜 이리 생생하게 다가오는가.
“글씨가 가다가다 몹시 떨린 한자가 있는데/ 그것은 물론 현 정부가 그만큼 악독하고 반동적이고/ 가면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중용에 대하여’). 최악의 권력은 반성하지 않고 거짓말로 자신의 악을 정당화하는 권력이다. 책임지지 않고 가면으로 자신의 반동을 포장하는 권력이다. 그 밤의 권력자들에게 반성과 책임을 묻기 위해 절망과 분노로 잠 못 들며, 하던 일을 제쳐놓고 밤낮으로, 이 엄동설한에 ‘금 간 얼굴로’ 거리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이유는 없다- 나가다오 너희들 다 나가다오”(‘가다오 나가다오’)라고 외치게 되는 것이다. 입에 발린 사과는 사양한다. ‘그놈들’이 나갈 때까지 우리에게는 “조그마한 용기가/ 필요할 뿐이다”(‘허튼소리’), 바로 보고 바로 외칠 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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