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형색색 응원봉 흔들며 유명 K팝 '떼창'
획일화된 집회 벗어난 MZ세대 다양성의 상징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지난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윤석열 즉각 탄핵 범국민 촛불대행진에 참여한 시민들이 형형색색 응원봉을 들고 있다. /장윤석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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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우리 사회에는 하나를 꼽기 힘들 만큼 대형 사건·사고가 많았다. 더팩트 사건팀은 다양한 사건·사고를 묶는 인상적 이슈 3가지를 선정해 결산 기사로 싣는다. 첫번째로는 올해 빼놓을 수 없는 대형 사건이었던 12·3비상계엄 사태를 계기로 나타난 시위 문화를 짚어본다.<편집자주>
[더팩트ㅣ사건팀] 윤석열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시민들은 거리로 나왔다. 45년 만의 계엄 선포에 시민들은 분노했지만 차분했다. 거리에는 민중가요 대신 케이(K)팝이 울려 퍼졌다. 시민들은 노래에 맞춰 형형색색의 응원봉을 흔들며 "윤석열 퇴진"을 외쳤다. 거리는 유명 가수의 콘서트장이나 축제 현장을 방불케 했다. 시민들의 평화적 외침은 결국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을 이끌어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이끈 촛불에 이어 응원봉은 새로운 광장 민주주의의 상징이 됐다.
◆ 민중가요 대신 K팝…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꾸민 집회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난 3일 밤 일부 시민들은 서울 여의도 국회로 향했다. 시민들은 계엄군에 맞서 다음 날 새벽까지 국회 앞을 지켰다. 비상계엄은 6시간여 만에 해제됐다. 하지만 분노한 시민들은 그날 오후 광화문에 다시 모여 촛불을 들었다. 서울 도심에서 촛불집회가 열린 것은 지난 2016~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촉구하는 집회 이후 7년여 만이었다.
1만여 명으로 시작된 집회는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을 하루 앞둔 지난 6일 5만여 명으로 늘었다. 이어 1차 표결이 진행된 지난 7일에는 주최 측 추산 100만여 명까지 급증했다. 탄핵안 국회 통과가 불발되자 시민들은 광화문과 여의도를 옮겨가며 집회를 이어갔다. 재표결을 통해 탄핵안이 가결된 지난 14일에는 200만여 명이 거리에 운집했다.
열흘이 넘는 기간 어두운 거리를 밝힌 것은 촛불과 함께 응원봉이었다. 지오디(god)부터 빅뱅, 트와이스, 뉴진스, 라이즈 등 내로라하는 아이돌 그룹의 다양한 응원봉들이 함께했다. 한 네티즌이 X(옛 트위터)에 망가진 응원봉 사진과 함께 "응원봉은 다시 사면 되고 망한 나라는 새 걸로 다시 못 사잖아"라고 올린 글에는 "그만큼 더 특별해질 거다. 응원봉 없는 응원도 충분히 뜨거울 테니"라는 답변이 달렸다.
민중가요가 흘러나온 뒤에는 K팝까지 가세하며 분위기를 한껏 띄웠다. 시민들은 '임을 위한 행진곡', '광야에서', '아침 이슬' 등을 제창한 뒤에는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 김연자의 '아모르 파티', 로제의 '아파트', 지드래곤의 '삐딱하게' 등 K팝도 '떼창'했다. 시민들은 세븐틴 부석순의 '파이팅 해야지'를 '탄핵해야지'로 개사해 불렀다. 크리스마스 캐럴 '징글벨'의 '종소리 울려라'는 '탄핵벨 울려라'로 바꿔 불렀다.
윤석열 즉각 체포·퇴진! 사회대개혁! 범시민대행진 집회가 지난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 동십자각에서 열린 가운데 집회 참가자가 '꾸짖을 喝!'이라고 적힌 깃발을 들고 있다. /박헌우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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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진 집회 현장에는 좋아하는 소품을 이용해 직접 만든 도구도 등장했다. 인형에 전구를 꽂아 '인형봉'을 만들고, '탄핵'이라고 적힌 머리끈을 만들었다. '제발 아무것도 안 하고 싶은 사람들의 모임', '여자들의 공놀이에 미친 여성들 연합', '전국 집에 누워있기 연합' 등 특이한 깃발도 눈에 띄었다. "제발 그냥 누워있게 해줘라. 우리가 집에서 나와야겠냐", "날 힘들게 하는 건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로도 충분하다" 등 문구는 웃음을 자아냈다.
◆ 선결제 릴레이…세대 뛰어넘은 화합의 장
선결제 행렬도 이어졌다. 부득이 집회에 참여하지 못한 시민들이 인근 가게에 선결제 등을 해두고 무료 음료 등으로 참가자들을 응원한 것이다. 일부 가게에서는 선결제가 끝난 뒤에도 음식이나 음료 등을 무료로 제공했다.
연예인들도 선결제에 동참했다. 아이유는 지난 14일 집회 현장 인근 베이커리 카페, 떡집, 국밥집 등 5곳 선결제를 통해 빵 200개, 음료 200잔, 떡 100개, 국밥 300그릇을 준비했다. 뉴진스도 같은 날 김밥 100개, 음료 250잔, 삼계탕 100그릇, 만둣국과 온반 100그릇을 선물했다.
차가운 날씨에 핫팩과 털모자 등 방한용품은 물론이고, 여성용품, 건전지 등 나눔의 손길도 있었다. 지난 16일 광화문 집회에서 만난 곽모(55) 씨는 털모자가 가득한 가방을 열어 보이며 "추워 보이는 학생이 있으면 나눠주려고 가져왔다"고 말했다. 지난 11일에는 SNS에 "국회의사당역 여자화장실에 핫팩, 여성용품, 건전지 등을 비치해 뒀다"며 "응원봉 방전이 걱정되시는 분들은 편하게 써달라. 바람 앞에도 꺼지지 않는 모든 불빛들에 감사드린다"는 글도 올라왔다.
전국농민총연맹(전농)은 지난 21일 윤 대통령의 구속을 촉구하며 트랙터를 이끌고 서울 서초구 남태령 고개로 진입했다. 다만 경찰이 교통 혼잡의 이유로 전농을 막자 대치가 약 28시간 지속됐다. /박헌우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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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서울 서초구 남태령 고개에서도 나눔은 이어졌다. 윤 대통령 구속을 촉구하며 트랙터를 이끌고 시위를 벌이던 전국농민총연맹(전농)이 교통 혼잡을 우려한 경찰에 막히자 시민들은 삼삼오오 남태령으로 집결했다. 농민과 시민 등 3만여 명이 운집했다.
시민들은 핫팩과 닭꼬치, 죽 등을 사서 전달했다. 한 시민은 "지금까지 먹은 쌀을 생각해서라도 이 자리에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며 "이 자리를 빌어 저의 밥상을 철통같이 책임져주신 농민분들께 감사하다"고 전했다. 일부는 SNS에 '쌀 먹고 사는 사람이면 후원하자',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전여농) 소액이라도 후원으로 연대한다', '소액이라도 가볍지 않다' 등 글을 남겨 후원 참여를 유도했다.
전문가들은 달라진 집회 문화를 'MZ세대 다양성의 상징'으로 해석했다. 정당이나 시민단체, 노조 등이 주도하던 획일화된 집회 방식에서 벗어나 각자 좋아하는 방식으로 정치에 참여해 의사를 표현한다는 것이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응원봉은 젊은 세대가 중심이 돼 만든 상징이지만 여러 세대를 넘어서 공감할 수 있는 하나의 수단"이라며 "시위가 근엄한 사회운동이 아닌 즐거운 축제처럼 지속가능성을 얻게 될 것"이라고 했다.
bsom1@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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