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맘때 제일 많이 듣는 말 중 하나가 '다사다난(多事多難)'이다.
올 한 해 어땠나 눈을 감고 돌아본다. 아, 정말 징글징글했구나. 싸우고 깨지고 사랑하고 헤어졌구나. 내가 산 주식은 영락없이 가격이 떨어졌고 내 정치적 기대는 어이없이 토대가 흔들렸다. 한때 믿었던 사람은 등에 칼을 꽂았다. 그러니 어쩔까, 남아공 작가 J M 쿳시의 소설 '추락(Disgrace)'의 마지막 문장 같을 수밖에. "그렇소, 단념하는 거요."
사고나 사건은 예고 없이 온다. 요즘 3대 질문이라는 "왜? 이걸? 내가?"를 생각할 겨를조차 없다. 하지만 다사다난 속에서 실마리를 찾는다. 많이 겪었으므로 맷집이 세졌다. 생존본능이, 방어기제가 절로 작동한다.
모든 사고나 사건이 불행이라고 나는 믿지 않는다. 톰 행크스 주연의 영화 '포레스트 검프'에 나왔던 차량 범퍼스티커('Shit happens!'라고 적혀 있던)와 진흙 얼룩이 남긴 스마일 모양의 티셔츠를 떠올린다. 지난 내 삶 속에서도 반증들이 있다. 닭인 줄 알았는데 꿩이었고, 꿩이 아니라 봉황이었던 적이 몇 번이었던가.
그렇다고 해서 나중에 좋을 것이니 지금의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라고도 이야기하지 않겠다. 고통의 당사자에게 새옹지마(塞翁之馬), 전화위복(轉禍爲福)과 같은 말은 쓴 약에 사탕에 불과하고, 호사다마(好事多魔), 호몽부장(好夢不長)은 팥죽에 들어간 설익은 새알심 같은 것이므로.
나이 들면 좀 음흉해져서 현재의 고통을 과거의 소소한 영광이나 미래의 불확실한 기쁨에 숨기곤 한다. 현재 괴로운 일은 현재 괴로운 거다. 밖은 춥고 안은 두렵다.
이런 태도는 권할 게 못된다. 젊을 때에는 더더욱 그러지 말기를. 아프면 아프다고, 힘들면 힘들다고 소리치기를. 그래야 도움도 위로도 받고, 다시 일어설 힘도 움튼다.
튀르키예 소설가 오르한 파무크의 '하얀 성'을 읽다가 밑줄을 쫙 쳤다. "이미 이룩된 것들은 대부분 섭렵했으며, 그 모든 것에 코웃음을 쳤다. 자신이 더 잘할 수 있을 거라 확신했으며, 자신을 따를 자도 없거니와, 누구보다도 영리하고 창의적이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간단히 말하면, 평범한 젊은이였다." 끝 모를 오만함과 찌를 듯한 건방짐, 이런 게 '평범한' 젊음이란다. 무지할지언정 포기하지 않는 그런 것이란다.
다치바나 다카시 도쿄대 교수도 '스무 살, 젊은이에게 고함'에서 "무엇이 있을 수 있고, 무엇이 있을 수 없는지 사전에는 결코 알 수 없다"면서 "'판타 레이(Panta Rhei·고대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의 명언으로 만물은 끝없이 변천한다는 뜻)'야말로 영원한 진리"라고 강조한다. 평범한 젊은이가 판타 레이에서 만들어내는 세계는 그야말로 무궁무진할 거다.
올 한 해 동안 나는, 우리는 금 갔지만 깨지지 않았고, 넘어졌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내년에도 그럴 것이다. 희망은 고통을 마주하는 데서 비롯된다고 했다. 그 흔한 트라우마 또한 고통을 직면하고 수용하고 흘려보내면 사라진다고 했다. 그 뒤엔 재생, 복원의 힘이 커진다.
변윤제의 시 '내일의 신년, 오늘의 베스트'는 이렇게 흘러간다.
"정수리에 잎 그림자 몰아치는 날/ 슬픔이 꼭 훌륭해야 할 필요 없잖아요"라고 시작하며 분위기를 띄우고, "매일이 선물이 아니라면 뭐지요?"라고 물으며 고개를 넘고, "그래요, 저는 내년에도 사랑스러울 예정입니다"라고 귀엽게 마무리.
다사다난했던 한 해의 고통 속에서 복원의 싹을 틔운다. 한 살 더 먹었지만 더 젊어진 우리는 내년에도 사랑스러울 거다. 분명 그럴 거라 희망한다.
[김영태 전 코레일유통 대표이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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