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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7 (금)

'가습기살균제' 2심 다시…대법 "제품별 인과관계 따져야"(종합2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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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경·SK케미칼 유죄판결 파기…대법 "옥시와 성분 달라 과실 공범 안 돼"

2심에서는 '옥시와 공범' 인정…SK케미칼·애경 "죄송…피해 회복에 노력"

연합뉴스

가습기 살균제 참사 기자회견
(서울=연합뉴스) 윤동진 기자 = 지난 2월 6일 오후 서울 서초동 법원 삼거리에서 환경보건시민센터 주최로 열린 ‘가습기살균제 참사 세퓨 제품피해 국가책임 민사소송 2심 판결에 대한 입장발표 기자회견’에서 한 피해자가 발언하는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황윤기 기자 = 유해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판매한 혐의로 기소된 SK케미칼과 애경산업 전 대표에게 금고형을 선고한 2심 판결이 대법원에서 일부 뒤집혔다.

대법원 1부(주심 서경환 대법관)는 26일 업무상 과실치사 등 혐의로 기소된 홍지호(74) 전 SK케미칼 대표와 안용찬(65) 전 애경산업 대표에게 각각 금고 4년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피해자들이 사망하거나 상해를 입은 원인이 어떤 가습기 살균제 탓인지 구체적으로 심리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번 사건의 피해자 98명 중 94명은 SK케미칼과 애경산업, 옥시레킷벤키저 등 여러 회사의 가습기 살균제를 함께 사용한 '복합 사용자' 그룹이다.

검찰은 이들 회사의 임직원을 업무상 과실치사죄의 공동정범으로 보고 재판에 넘겼다.

2심 법원은 검찰의 논리를 받아들여 홍 전 대표와 안 전 대표가 신현우 전 옥시레킷벤키저 대표 등과 과실범의 공모 관계라고 인정해 유죄를 선고했다.

공동정범이란 형법에서 '2인 이상이 공동으로 죄를 범한 때에는 각자를 정범으로 처벌한다'는 조항에 규정돼 있다. 법적으로 책임능력이 있는 2명 이상이 서로 공동으로 죄가 될 사실을 실현하는 경우 전원을 교사범이나 종범이 아닌 정범으로 처벌한다는 의미다. 통상 그만큼 처벌이 더 무거워지는 법적 효과가 생긴다.

2심 법원은 "복수의 여러 종류의 제품을 사용한 소비자에게 건강상 피해가 발생한 경우 각 제품의 결과 발생에 대한 기여 정도를 일일이 가려내 규명하는 것이 성질상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하다"며 "사전에 그러한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행위자들에게 공동의 주의의무를 부과시키는 것이 형사정책적 목적에서도 타당하다"고 했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옥시 사건의) 피고인들이 제조·판매에 관여한 가습기살균제의 주원료는 PHMG 등이고, 이번 사건 살균제의 주원료는 CMIT/MIT로, 그 주원료의 성분, 체내분해성, 대사물질 등이 전혀 다르고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를 활용하거나 응용해 개발·출시됐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어떤 제품이 개발·출시된 후 경쟁업체가 '기존 제품과 주요 요소가 전혀 다른 대체 상품'을 독자적으로 개발·출시한 경우에는 사망 또는 상해의 결과가 발생할 수 있다는 사정을 공동으로 인식할 수 있었다고 볼 여지가 없다"고 덧붙였다.

즉 SK케미칼·애경산업의 가습기살균제와 옥시 등이 제조·판매한 가습기살균제는 전혀 별개의 상품이기 때문에 이들을 공동정범으로 묶어서 처벌할 수 없다는 취지다.

대법원은 2심 법원이 든 사정만으로 과실범의 공동정범을 인정할 경우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를 특징으로 할 뿐만 아니라 인터넷망 등을 통해 국경을 초월한 상품의 구매·소비가 용이하게 이루어지는 현대사회에서 상품 제조·판매자들 등에 대한 과실범의 공동정범 성립범위가 무한정 확장된다"고 지적했다.

파기환송 후 2심 법원에서는 복합 사용자 그룹 피해자들의 사망 원인을 구체적으로 규명해 잘잘못을 가려야 한다.

검찰과 법원으로서는 여러 제품을 섞어 사용한 피해자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성분 때문에 숨졌는지 규명해야 하는 과제가 생겼다. 과학적 인과관계를 입증해야 하는 일이라 재판에 상당 기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규명 결과 SK케미칼·애경산업이 판매한 제품으로 피해가 발생했다는 게 합리적 의심이 없을 정도로 입증되면 법원은 여전히 유죄를 선고할 수 있다.

공소시효 문제도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크다. 사망자 대부분이 2010∼2011년에 숨졌고 상해 피해자들도 2011년경 사용을 마쳤는데 검찰이 홍 전 대표와 안 전 대표를 기소한 시점은 2019년이다. 업무상 과실치사죄의 공소시효는 7년이다.

검찰은 공범이 기소되면 공소시효가 정지되는 형사소송법 규정을 근거로 공소시효 만료 전에 옥시 측이 먼저 기소됐음을 들어 이들을 기소했지만, 옥시 측과 공범이 아닌 것으로 판명 나면 일부 피해자에 대한 범죄는 면소 판결이 선고될 가능성이 크다. 면소 판결은 일단 발생한 형벌권이 사후 일정한 사유로 소멸한 경우 선고하는 판결이다.

대법원은 "원심(2심)은 피고인들과 관련사건 피고인들(옥시 등) 사이의 공동정범 성립을 인정했고 이를 전제로 공소시효 완성에 관한 피고인들의 주장을 배척했다"며 "피고인들의 업무상 주의의무위반과 피해자들의 사망 또는 상해 결과 사이에 상당인과관계(타당한 인과관계)가 인정되는지에 관해서는 판단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홍 전 대표와 안 전 대표는 각 회사에서 클로로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CMIT)·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MIT) 등 독성 화학물질이 포함된 가습기 살균제 '가습기 메이트'를 제조·판매해 98명에게 폐 질환이나 천식 등을 앓게 하고 그중 12명을 사망케 한 혐의로 2019년 기소됐다.

1심에서는 무죄를 선고받았으나 2심은 유죄로 판결을 뒤집고 금고형을 선고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날 2심 판결에 법리 오해 등 잘못이 있다며 피고인들의 상고를 받아들여 2심 재판을 다시 하도록 사건을 돌려보냈다.

한편, SK케미칼은 이번 판결에 대해 "재판부의 판단을 존중한다. 이번 판결과 별개로 피해자분들의 고충이 오랜 기간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 대해 죄송스러운 심경"이라며 "피해 회복을 위한 노력을 지속하겠다"고 밝혔다.

애경산업도 "판매한 제품으로 인해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해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며 "법적 책임 문제를 떠나 가습기 살균제 문제의 해결과 피해자 구제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노력을 지속하겠다"고 했다.

water@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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