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로가 공자에게 말했다. “위(衛)나라 군주가 스승님을 기다려 정치를 맡기려 하니 스승님께서는 장차 무엇을 먼저 하시렵니까?”
공자가 말했다. “반드시 이름부터 바로잡겠다[正名].”
이에 자로는 “이런! 스승님께서 이렇게 황당하실 줄이야. 그렇게 해서 어찌 정치를 바로잡는다는 말입니까?” 이에 공자는 “한심하구나 자로야!”라고 야단을 친 다음에 이렇게 말한다.
“군자는 자기가 알지 못하는 것은 비워두고서 말을 하지 않는 법이다. 이름이 바르지 못하면 말이 순하지 못하고 말이 순하지 못하면 일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일이 이루어지지 못하면 예악이 흥하지 않고 예악이 흥하지 못하면 형벌이 알맞지 못하고 형벌이 알맞지 못하면 백성들이 손발을 둘 곳이 없게 된다. 그래서 군자가 이름을 붙이면 반드시 말할 수 있고, 말할 수 있으면 반드시 행할 수 있는 것이니 군자는 그 말에 있어 구차함[所苟]이 없을 뿐이다.”
지금 우리는 온갖 미신에 혹(惑)한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 발동으로 초유의 사태를 맞고 있다. 이 위기를 벗어나는 첫걸음은 이 사태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다. 그것이 정명(正名)이다. 내란(內亂)이냐 아니냐는 논란 또한 정명의 문제이다. 야당은 다른 의도가 있어 가능한 한 내란으로 몰아가고 있고 여당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길이 없다. 그러니 지금 우리 “백성들이 손발을 둘 곳이 없”는 것이다.
나라의 백성 되어 손발을 둘 곳이 없는 것만큼 비참한 일이 또 있을까? ‘시경(詩經)’ 소아(小雅) 정월(正月)편에는 손발은 물론이고 마음조차 둘 곳 없는 백성들 마음을 노래하는 구절이 나온다.
“저 까마귀를 바라보건대/누구의 지붕에 가서 앉을까?[瞻烏爰止/于誰之屋]”
그래서 첨오(瞻烏)는 이후 나라가 어지러워 백성들이 의지할 곳이 없음을 비유하는 말로 자주 사용되었다. 딱 요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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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우 논어등반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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