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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7 (금)

[설왕설래] 계엄 트라우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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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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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우마(Trauma)는 그리스어로 ‘상처’를 의미한다. 반복 기억, 환각, 극도의 긴장과 불안, 불면, 일상생활 기피 등의 증상을 나타내는 게 보통이다. 9·11 테러 직후에도 미국인의 44%가 크고 작은 스트레스를 호소했다. 뉴욕에 사는 사람들은 집단 트라우마를 겪었다고 한다.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생존자, 천안함 폭침으로 희생된 사병들의 가족도 비슷한 증상을 보였다.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20여일이 지났지만, 시민들의 ‘계엄 트라우마’는 현재 진행형이다. 평소 뉴스에 관심이 없었던 직장인 중에 아직도 밤늦게까지 TV 앞에 앉아 뉴스를 챙겨본다는 사람이 적지 않다. 밤에 자주 깨서 뉴스를 확인한다는 사람도 있다. 헬리콥터 소리만 들려도 갑자기 불안해지고, 가끔 울리는 재난문자 경보음이 계엄과 관련된 일일까 생각돼 깜짝깜짝 놀란다는 노인도 있다. 응답자의 66.2%가 비상계엄 사태 이후 ‘트라우마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나와 있다.

시민들의 계엄 트라우마가 좀처럼 해소되지 않는 것은 시시각각 전해지는 후속 보도 역시 충격적인 내용이 많기 때문이다. 전방에 있던 HID(첩보분견대본부) 북파공작원이 판교 등 수도권에 대기했다. 또 막후 기획자의 수첩에서는 ‘NLL(서해 북방한계선)에서 북한의 공격을 유도한다’는 표현까지 확인됐다. 극심한 정국 혼란이 이어지는 것도 시민들의 불안을 부채질하는 요인이다. 탄핵 정국 수습을 위한 여·야·정 협의체가 당초 예정대로 26일 출범할 수 있을지도 불투명하다.

정신분석가 권혜경 박사는 트라우마 극복에 도움을 주는 것으로 사람들의 감정적 지지와 이해를 우선 꼽는다. 그리고 가해자에 대한 정당한 처벌,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려는 사회적 노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비상계엄 선포에 따른 집단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서라도 관련자에 대한 엄중한 처벌과 진상규명이 신속하게 이뤄져야 한다. 다시는 계엄 선포와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도 사회 전체에 형성되어야 한다. 그런데 불법 계엄을 선포한 윤석열 대통령은 사과조차 하지 않는다. 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2차 소환에 불응하고 버티기로 일관하고 있다. 이러면 시민들의 트라우마 극복도 지체될 수밖에 없다.

박창억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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