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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6 (목)

9살 오빠에게도 "네 짓이지"…납치돼 숨진 6살 아이, 쑥대밭 된 가정[뉴스속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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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뉴스를 통해 우리를 웃고 울렸던 어제의 오늘을 다시 만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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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12월 25일(현지시간) 미국 콜로라도주의 한 가정집에서 존베넷 램지(당시 6세)가 사라졌다./사진=X(엑스, 구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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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12월 25일(현지시간) 미국 콜로라도주의 한 가정집에서 존베넷 램지(당시 6세)가 사라졌다. 집 계단에는 아이를 납치한 것으로 보이는 유괴범 협박 편지가 놓여있었다.

다음날 존베넷은 싸늘한 주검으로 자신의 집 지하실에서 발견됐다. 가족들은 이 사건으로 각종 의혹에 연루됐다. 난소암을 앓던 존베넷 모친은 진범을 알지 못한 채 결국 2006년 세상을 떠났다.

남은 존베넷 가족들은 최근 넷플릭스에서 방영된 다큐멘터리를 통해 경찰 실수와 무차별한 언론 보도로 자신들이 희생양이 된 이야기를 털어놓기도 했다.


'어린이 미인대회' 6세 여아…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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램지 가족 사진. 왼쪽부터 존베넷 램지, 존 램지, 팻시 램지, 버크 램지./사진=X(엑스, 구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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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사업가 남편과 지역 미인대회 출신 아내, 금쪽같은 아들과 딸. 램지 가족은 더할 나위 없이 풍족한 삶을 살고 있었다. 특히 딸 존베넷 램지는 빼어난 외모로 어려서부터 리틀 미스 콜로라도 등 여러 어린이 미인대회를 휩쓸었다.

1996년 크리스마스 당일 램지 가족은 이웃집에서 열린 파티에 참석한 후 귀가했다. 이튿날 새벽 엄마 팻시 램지는 자택 계단에서 누군가가 놓고 간 편지를 발견한다. 편지에는 '당신 딸을 데리고 있다. 아이를 돌려받고 싶다면 11만8000달러(약 1억7000만원)를 준비하라"는 협박이 담겨있었다.

램지 가족은 곧바로 실종 사실을 경찰에 알렸다. 현장에 도착한 경찰과 존베넷의 부친 존 램지 등은 집 안 구석구석을 뒤지기 시작했고 결국 존 램지는 와인 창고 안에서 딸의 시신을 직접 발견했다.

6세 존베넷은 목이 졸리고 머리가 흉기에 맞아 두개골이 파열된 상태였다. 그뿐만 아니라 사후 부검 결과 아이는 성폭행당한 상태였다. 속옷은 소변과 피가 묻어 있었고 위에는 소화되지 않은 파인애플 조각도 남아있었다.


"용의자는 가족" 단정적인 수사와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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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램지와 펫시 램지./사진=AF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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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용의자로 지목된 이들은 다름 아닌 램지 가족이었다.

부친 존 램지가 수색 과정 중 창고로 직행해 아이를 찾았고 현장을 훼손하지 말라는 말을 무시한 채 그는 시신을 옮기고 아이에 붙여져 있던 테이프를 떼어냈다. 또 범인이 요구한 11만8000달러라는 금액은 공교롭게도 존이 회사에서 마지막으로 받은 보너스 액수와 같았다.

모친 팻시도 의심을 받았다. 협박 편지가 팻시 메모지와 그의 필기구로 쓰였고 필적이 팻시 말투와 주로 사용하는 단어와 아주 유사하다는 점이 이유였다.

경찰과 언론은 점점 더 용의자를 팻시로 특정하기 시작했다. 이듬해 4월에는 팻시가 핵심 용의자가 됐다는 CNN 보도가 나왔고 실제로 그는 6시간이 넘는 심문을 받기도 했다. 세간에서는 난소암으로 우울증에 걸린 팻시가 딸을 해쳤거나 침대에 소변을 본 아이를 홧김에 살해했을 것이라는 의혹도 제기됐다.

사건 발생 당시 불과 9세였던 존베넷의 친오빠 버크 램지도 용의선상에 올라 조사를 받기도 했다.

다만 가족이 아닌 제3자 침입설을 뒷받침할 수 있는 증거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검찰 수사관 루 스미트는 존베넷이 발견된 지하창고의 창문이 사람이 충분히 통과할 수 있는 크기라는 것을 시연해 입증했다.

현장엔 램지 가족이 신지 않는 브랜드 부츠 자국이 남아있었다. 또 사망한 존베넷은 전기 충격기로 쇼크를 입은 것으로 드러났는데 가족이 범인이라면 굳이 전기 충격기를 사용하진 않았을 것이라는 점이 침입설 근거였다.

1999년 검찰은 램지 부부를 기소하기엔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것을 인정했다. 2003년 존베넷 속옷에서는 제3자 유전자(DNA)가 발견됐다. 같은 해 연방법원은 경찰과 연방수사국(FBI)이 수사를 엉성하게 진행했다며 사건을 폐기하도록 했고 검찰도 증거 불충분을 들어 사건이 종결됐다.

사건 발생 약 7년 만에 부모는 딸을 죽인 범인이라는 누명을 벗을 수 있게 된 셈이다.


10년 만에 붙잡힌 유력 용의자…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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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마크 카./사진=AF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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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베넷 램지를 죽인 유력 용의자는 2006년 8월 태국 방콕에서 체포됐다. 용의자의 이름은 존 마크 카(당시 41세) 미국 전직 교사였다. 그는 아동 포르노 소지와 강간 혐의가 있는 전과범이었다.

카는 "존베넷을 사랑했다. 죽이려는 의도는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아이를 납치해 돈을 받아내려고 했지만 그 계획이 틀어졌다고도 덧붙였다. 그러나 DNA 검사 결과 카는 범인이 아니었다.

카 외에도 어린 존베넷의 주변에는 위험인물들이 많았다. 램지 가족 이웃이었던 게리 올리바는 수감 중인 상태였던 2019년 고등학교 동창에게 편지로 자신이 존베넷 램지 사건 범인임을 밝혔다.

또 다른 이웃 주민이었던 빌 맥레이놀즈는 존베넷 사망 이틀 전 램지 가족 집을 방문했고 과거 자기 딸이 납치됐던 전적이 있었다. 빌의 아내는 과거 어린 여자아이가 성추행당한 뒤 지하실에서 살해당한다는 내용의 연극 극본을 작성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들 모두 DNA 불일치로 수사선상에서 제외됐다.


그날 이후, 한 가정이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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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넷플릭스 다큐멘터리에 출연한 존 램지./사진=넷플릭스 유튜브 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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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 당국과 언론은 수년 동안 한 가정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었다.

존 램지는 사업에 실패하며 재산을 잃게 됐고 유력 용의자로 지목됐던 팻시는 난소암 투병 중 2006년 세상을 떠났다. 팻시는 사망 전에야 경찰로부터 "새 용의자로 카를 수사 중이다"라는 연락받았지만, 검거됐던 카 마저도 DNA 불일치로 풀려났다.

누군가는 램지 가족을 돈벌이 수단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존베넷 사건의 수사를 맡았던 전직 형사 스티브 토머스는 2000년 팻시를 범인으로 지목하는 베스트셀러를 펴냈다. 이에 램지 가족은 명예훼손으로 토머스와 출판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결국 토머스와 출판사는 램지 가족에 비공개 금액을 주기로 합의했다.

CBS 방송은 2016년 존베넷 램지의 친오빠 버크가 살해 용의자일 것이라는 내용의 방송을 송출했다. 동생이 자신의 간식을 먹었다는 이유로 살해했다는 것이 CBS가 제시한 범행 동기였다. 버크는 CBS 측에 7억5000만 달러 소송을 제기했고 소송은 회사와 그 관계자들이 버크에게 비공개 금액을 지급하는 것으로 합의한 후 해결됐다.

램지 가족은 10년 만에 두 사람을 잃는 고통을 겪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불과 6세밖에 되지 않은 딸을 미디어에 노출한 부모 욕심이 화를 불렀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민수정 기자 crystal@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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