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 등 해외 시장 공략해 매출 확대
인터넷 쇼핑몰에서 많이 팔리는 제품의 인기 비결은 무엇일까. 무조건 값이 싸거나 광고를 많이 한다고 잘 팔리는 것이 아니다. 같은 제품이어도 경쟁을 물리치고 인기를 얻는 제품의 비결은 바로 넛지 포인트 공략이다.
'팔꿈치로 슬쩍 찌른다'는 의미의 넛지(nudge)는 심리학에서 유래한 용어다. 강요가 아닌 부드럽게 결정을 유도하는 행위를 의미하는 넛지의 대표적 사례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공항에서 남성 화장실의 소변기에 붙인 파리 모양 스티커다. 이를 통해 소변이 다른 곳으로 튀는 것을 줄여 화장실 청결도를 높이면서 전 세계로 확산됐다.
이를 상술에 적용한 것이 넛지 포인트다. 구입을 망설이는 사람에게 구매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결정적 요소를 보여줘 판매로 이끄는 방법이다. 그러나 길거리에서 옷깃을 잡아끌거나 요란한 광고처럼 강요나 과장하는 느낌을 주면 안 된다. 사람들이 판단하기 어려울 때 작은 구매 가이드를 슬쩍 흘리는 식이어야 효과가 있다. 식당 차림표에 붙어 있는 '베스트' 표시가 대표적 넛지 포인트다.
김병준(35) 대표가 2022년 창업한 에이베러는 넛지 포인트를 공략하는 인공지능(AI) 소프트웨어 '디스터'를 개발한 판매기술(마케팅테크) 분야의 신생기업(스타트업)이다. 디스터는 쿠팡 등 인터넷 쇼핑몰에서 인기 제품을 만드는 마법의 도구 역할을 하며 이 업체의 매출을 2022년 49억 원에서 지난해 272억 원, 올해 500억 원으로 대폭 끌어올렸다. 서울 세종로 한국일보사에서 김 대표를 만나 넛지 포인트 공략 비결을 들어봤다.
김병준 에이베러 대표가 서울 세종로 한국일보사에서 인터뷰를 하며 AI로 판매율을 끌어올리는 소프트웨어 '디스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정다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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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상거래 흐름을 바꾼 쿠팡
인천대 경영학과를 나온 김 대표는 창업 동아리 회장을 하면서 대학 3학년 때 광고회사에 취직했다. 2년간 일하며 판매에 영향을 주는 콘텐츠의 힘을 알게 된 그는 2016년 비주얼코드라는 광고대행사를 차렸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맛집, 패션, 건강 등 사람들의 관심사를 반영한 화제성 콘텐츠가 소비로 연결된다는 것을 알았어요."
소비자의 관심사 파악에 능해 돈을 곧잘 벌었던 그는 비주얼코드를 2020년 화장품 회사에 매각했다. 이후 쿠팡 컨설팅 사업을 하며 두 번째 창업 아이디어를 얻었다. 쿠팡 컨설팅 사업이란 판매자들에게 쿠팡에서 제품을 잘 팔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사업이다. "쿠팡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판매자들이 많아요. 무조건 최저가로 팔아야 한다는 잘못된 인식 때문에 쿠팡 입점을 꺼려요. 그래서 이들에게 쇼핑몰 판매 전략을 알려주는 지금의 회사를 창업했죠."
김 대표는 두 번째 창업의 계기가 된 쿠팡을 3세대 전자상거래로 꼽았다. 네이버, 옥션으로 대표되는 1세대 전자상거래는 포털 위주의 검색형 서비스였다. 2세대 전자상거래는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등 SNS와 결합됐다. "SNS에서 광고를 보고 물건을 사는 충동 구매가 늘었죠."
쿠팡으로 대표되는 3세대 전자상거래의 핵심은 물류, 즉 빠르고 편한 배송이다. "사람들은 검색으로 상품 정보를 얻은 뒤 물류가 편한 쿠팡에서 사요. 이후 제품 검색도 쿠팡에서 하며 쿠팡에 묶이는 록인 현상이 일어나죠. 모 제품의 경우 월 검색량이 네이버에서 10만 건인데 쿠팡에서는 150만 건이 넘어요. 쿠팡이 전자상거래의 흐름을 바꿨어요."
넛지 포인트가 소비를 결정
김 대표가 3세대 전자상거래를 겨냥해 개발한 디스터는 AI를 이용해 판매를 의뢰한 제품의 넛지 포인트를 파악한다. 디스터는 쇼핑몰에서 어떤 검색어가 인기인지, 해당 경쟁업체가 얼마나 되는지 분석한 뒤 구매를 유도하는 넛지 포인트 요소를 결정한다. "사람들은 합리적 소비를 하는 것 같지만 넛지 포인트가 적용된 제품을 많이 구매해요. 결국 넛지 포인트가 비교 우위를 확보하는 방법이에요."
중요한 것은 제품마다 넛지 포인트가 다르다는 것이다. 쿠팡에서 많이 팔리는 캠핑용 장작의 경우 넛지 포인트가 뜻밖에도 감성이다. "많은 장작 판매업체들이 별다른 광고 없이 장작을 그냥 팔아요. 장작은 특별한 가공이 필요 없기 때문이죠."
김 대표는 장작에 캠핑 경험을 넛지 포인트로 적용했다. "장작 연기 때문에 소중한 캠핑 경험을 망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은 돈을 더 내도 연기 나지 않는 장작을 사요. 이를 겨냥해 장작 생산업체와 납품계약을 맺고 상자에 생산일자를 눈에 잘 띄게 표시해 팔았어요. 연기가 잘 나지 않는 최신 압축 장작이라는 것을 강조했죠. 덕분에 올해 출시한 제품인데도 판매량이 수년 된 경쟁업체를 앞질렀어요."
하지만 어린이 용품은 감성보다 안전이 넛지 포인트다. "상품마다 소비자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가 모두 달라요. 이를 빨리 파악해 넛지 포인트를 찾는 것이 중요하죠."
광고 효과 측정 기능이 있는 디스터는 넛지 포인트를 담은 광고 등을 내보낼 경우 가장 효과적인 시간과 노출 영역도 판단한다. "쿠팡 이용자들은 다음 날 아침에 배달하는 로켓 배송 때문에 밤에 주문을 많이 해요. 따라서 일부 상품은 밤 시간대 광고를 노출해야 효과가 있어요."
에이베러에서 판매해 인기를 끈 '내시경 귀이개'. 에이베러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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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 스타킹과 내시경 귀이개의 성공
김 대표는 디스터의 효과를 알리기 위해 일부 제품을 직접 구입해 쇼핑몰에서 팔기도 한다. "제품을 만든 업체에 디스터를 적용한 제품의 판매 효과를 볼 수 있게 데이터를 공유해요. 데이터를 봐도 판매방법을 쉽게 따라할 수는 없어요."
이렇게 직접 구입해 크게 성공한 제품이 골프용 여성 스타킹과 내시경 귀이개다. 골프용 여성 스타킹의 경우 디스터로 분석해 1인당 2장씩 구매하는 특성을 발견하고 2개씩 포장한 제품을 만들어 1개보다 약간 비싼 가격에 팔았다. 내시경 귀이개는 스마트폰용 소프트웨어(앱)와 연결해 귓구멍 안을 볼 수 있는 기능을 붙여 인기 제품이 됐다. "골프용 여성 스타킹과 내시경 귀이개 모두 해당 제품 분야에서 판매량 3위 안에 들었어요."
현재 김 대표는 40개사와 제휴를 맺고 800여 종의 제품을 인터넷 쇼핑몰에서 판매한다. 덕분에 쿠팡의 중요 협력업체로 부상했다. "판매량이 늘면서 쿠팡의 중요한 협력업체 중 하나로 꼽혀 성공 사례 발표를 많이 했어요."
앞으로 디스터가 광고 가격까지 제안하도록 개발할 예정이다. "쿠팡의 경우 차순위 입찰제여서 두 번째로 높은 가격을 써낸 업체에 소비자 후기 등 다면 평가방식을 적용해 결정하죠. 이때 필요한 입찰가격까지 제안하는 기능을 디스터에 추가할 방침입니다."
AI의 판매 분석 기능도 추가된다. "판매율이 떨어지면 AI가 경쟁사에서 가격을 내렸는지, 소비자 평가가 좋지 않은지 원인까지 분석해 경고를 보내도록 할 계획입니다."
참새마트로 쇼핑 분야의 네이버를 노리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김 대표는 직접 쇼핑몰을 운영하기 위해 지난 7월 참새마트라는 중개 쇼핑몰 운영업체 카트랩스를 인수했다. 참새마트는 연결된 쇼핑몰에서 물건을 사면 구매액의 최대 10%를 현금처럼 쓸 수 있는 포인트로 돌려주는 특이한 쇼핑몰이다. "참새마트의 경우 여러 쇼핑몰이 연결돼 있어 한 곳에서 편하게 쇼핑할 수 있어요. 여기에 비용 일부까지 되돌려 주죠. 연결된 쇼핑몰에서 광고비 성격으로 제공하는 비용 가운데 일부를 소비자에게 돌려주는 제휴 마케팅이죠. 해외의 라쿠텐, 허니, 숍100 등이 선보여 크게 성공한 방식이에요."
김 대표는 제휴 쇼핑몰을 늘려 참새마트를 쇼핑 분야의 네이버로 키울 생각이다. 현재 연결된 쇼핑몰은 쿠팡, 알리, 테무, 인터파크, 예스24, 지마켓 등 20여 곳이 넘는다. 참새마트는 이용자 확대를 위해 추천 방식을 도입했다. 다른 이용자를 추천하면 보상을 주는 일종의 네트워크 마케팅 방식이다. "현재 참새마트 이용자가 2,000명인데 추천 방식을 통해 내년 말까지 5만 명으로 늘릴 예정입니다."
이와 함께 지난 10월부터 제품 후기를 모아서 보여주는 솔리샵이라는 사이트도 운영한다. "소비자가 판매업체에서 의뢰한 제품을 구입해 써보고 후기를 남기면 보상을 주는 서비스입니다. 판매업체는 이를 통해 제품을 개선하고 소비자는 싸게 살 수 있어 서로 좋죠."
넛지 포인트를 파고들어 인기 제품을 만드는 김병준 에이베러 대표의 목표는 쇼핑몰 이용자 10명 중 한 명이 에이베러를 알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그는 내년에 해외 시장을 적극 공략할 계획이다. 정다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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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시장 공략으로 매출 확대
앞으로 김 대표는 해외 시장을 적극 공략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디스터를 각 나라별 대표 쇼핑몰을 지원하도록 개선할 계획이다. "미국 아마존, 동남아시아에서 인기 있는 인터넷 쇼핑몰 쇼피를 지원하는 기능을 추가할 예정입니다. 지난 6월 아예 미국에 아마존을 겨냥한 사무실도 만들었어요. 아마존에서 인기 있는 제품을 직접 기획해 판매하거나 다른 업체의 위탁을 받아 판매할 계획입니다. 우선 미국에서 인기 있는 한국 화장품부터 시작했어요."
해외 시장 확대를 통해 국내에서 쿠팡 의존도가 높은 문제를 극복하고 내년 매출을 800억 원까지 끌어올리는 것이 목표다. 쿠팡 의존도가 높으면 쿠팡의 부침에 따라 사업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쿠팡은 앞으로도 계속 성장할 것으로 봐서 크게 우려하지 않아요. 다만 해외 시장으로 나아가야 매출을 늘릴 수 있어 내년에 아마존 매출을 늘릴 예정입니다."
덩달아 영업이익 상승도 노리고 있다. "창업 첫해부터 지금까지 계속 5~6% 영업이익률을 냈어요. 내년에는 영업이익률을 더 올려야죠." 투자는 올해 처음 받는다. "연말을 목표로 투자 유치를 진행 중이며 10억~20억 원을 예상하고 있어요."
김 대표의 궁극적 목표는 소비문화의 혁신이다. "편리한 쇼핑을 통해 정확한 제품 정보를 얻고 좋은 제품을 싸게 살 수 있는 문화를 만들고 싶어요. 인터넷 쇼핑 이용자의 10%가 에이베러에 익숙하게 만드는 것이 목표죠."
최연진 IT전문기자 wolfpac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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