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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6 (목)

[노트북을 열며] 리처드 닉슨, 윤석열에 포기의 미학을 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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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전수진 투데이·피플 팀장


“결코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첫 번째는 윤석열 대통령이, 두 번째는 한동훈 국민의힘 전 대표의 말이다. 윤 대통령의 발언은 14일 자신의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직후 대국민 담화에서 나왔고, 한 전 대표는 16일 사퇴 기자회견 후 지지자들에게 포기 불가를 선언했다. 둘의 발언 요지가 판박이라는 게 공교롭고도 씁쓸하다.

포기를 못 하겠다는 윤 대통령을 보며 떠오른 인물이 있으니, 리처드 닉슨(1913~1994년) 전 미국 대통령이다. 1969년 백악관에 입성한 그는 외교 성과 등에 힘입어 재선에 성공했지만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자신의 발목을 잡았다. 사임을 앞둔 그의 대국민 담화 중 일부는 이랬다. “난 결코 포기를 모르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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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닉슨의 대통령 사임을 보도한 뉴욕타임스 1면. 부제에 “‘치유’의 시간” 문구가 보인다. [사진 뉴욕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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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과 닉슨의 차이는 그러나 다음 맥락을 보면 선명해진다. 닉슨은 이렇게 말을 이었다. “임기가 다하기 이전에 사임을 한다는 생각에 온몸의 모든 신경이 곤두선다. 하지만 대통령으로서 난 국익을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 대통령직을 내려놓는다. 지금 필요한 것은 풀타임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중략) 이젠 치유의 시간이 필요하다.” 탄핵 정쟁 소용돌이에 국익이 실종되지 않도록, 24시간을 본연의 임무에 충실한 대통령이 국가엔 필요하기에, 포기를 택한다는 것. 2024년 한국에도 유효한 말 아닌가. 닉슨에 대해 긍정적 맥락에서 글 쓰는 날이 올 줄은 몰랐다.

윤 대통령도 국가를 언급했지만, 맥락은 정반대였다. “저를 향한 질책, 격려와 성원을 모두 마음에 품고, 마지막 순간까지 국가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그의 말은 물러나지 않겠다는 선언, 아니, 선전포고다. 국가가 아니라 본인의 에고(ego)를 우선 순위에 뒀기에 가능한 발상이다. 자신에게 반기를 들었다고 해서 계엄령이라는 유령을 21세기에 소환한 것, 그게 왜 잘못인지도 깨닫지 못한다는 것은 그의 한계를 고스란히 노출한다.

포기하지 않겠다는 윤 대통령의 뜻은 위험하다. ‘포기’라는 단어가 억울한가. 그럴 것도 없다. 미국 주간지 뉴요커는 지난 10월 ‘포기’를 재조명하면서 “어쩔 수 없어서 하는 것만이 포기가 아니며, 새로움을 위해 괴로움에 종지부를 찍는 것 역시 포기”라고 전했다. 『포기에 대하여(On Giving Up)』라는 책을 쓴 심리학자 필립 애덤스는 “비극적 영웅은 포기를 할 줄 모르기 때문에 스스로를 비극으로 몰아넣는다”며 “결국 포기라는 선택을 못 하고 스스로를 파괴하고 만다”고 적었다.

비극적 영웅으로 스스로를 파괴하는 건 본인뿐 아니라 국익에도 반하는 일이다. 오늘은 크리스마스. 윤 대통령이 국민에게 줄 수 있는 유일한 선물은 포기라는 선택이다. 포기해야 그 자신도, 나라도 산다.

전수진 투데이·피플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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