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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6 (목)

랩보다 힙한 판소리 들어보소~ 이날치가 내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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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이날치는 판소리에 뿌리를 두고 여러 팝 음악을 시도하는 얼터너티브 팝 밴드다. 보컬 3인(안이호·전효정·최수인), 베이스 2인(장영규·노디), 드럼(이용진)으로 구성됐다. [사진 하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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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률 9%를 돌파하며 인기리에 방송 중인 JTBC 토일드라마 ‘옥씨부인전’에는 조선 최고의 예인 천승휘(추영우 분) 캐릭터가 나온다. 인기만점 전기수(조선시대 낭독가)인 그는 직접 겪은 일을 책으로 쓰고, 공연 형태로 엮어 노래를 하며 이야기를 들려준다.

밴드 이날치는 현실의 천승휘와 같은 존재다. 안이호(보컬·44), 전효정(보컬·27), 최수인(보컬·24), 장영규(베이스·56), 노디(베이스·39), 이용진(드럼·41)으로 구성된 밴드 멤버들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판소리 스타일을 빌려 노래한다. 판소리 ‘수궁가’ 중 별주부가 호랑이를 만나는 대목에서 모티브를 얻은 ‘범 내려온다’가 이들의 히트곡이다. 코로나 시국이던 2020년 발매된 이 곡은 한국관광공사 유튜브 캠페인 ‘필 더 리듬 오브 코리아: 서울’ 영상으로도 사용돼 조회수 5200만 뷰를 기록 중이다. ‘조선의 힙스터’, ‘조선의 아이돌’이란 별명도 생겼다.

최근 여성 국극 주제의 드라마 tvN ‘정년이’에 등장했던 “쑥국 쑥국 쑥쑥국 쑥국”이란 추임새의 ‘새타령’도 이들의 작품이다. 지난해엔 홍콩, 덴마크, 슬로바키아 등 해외 공연을 돌며 한국 음악에 쏠리는 세계의 관심을 실감하기도 했다.

이날치는 지난달부터 매달 싱글을 발표하는 2집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11월 5일 나온 첫 번째 싱글 ‘낮은 신과 잡종들’에는 ‘봐봐요 봐봐요’, ‘발밑을 조심해’ 두 곡이 담겼다. 두 번째 싱글 ‘히히하하’는 26일 공개된다. 이 노래들은 기존의 판소리를 토대로 한 것이 아니라, 극작가 김연재와 협업한 창작물이다. 왕의 정복 전쟁이 벌어진 태고의 어느 날, 두 주인공 더미와 자루가 전쟁과 폭력에 맞서기 위해 모험을 떠나는 이야기다. 노랫말엔 “자웅 자웅 자웅”, “퉁 쾡 자르르르르”, “우줄 우줄” 등 국어사전에 있거나 없는 의태어, 의성어가 흩뿌려져 재미를 더한다.

지난 20일 서울 서대문구 연희로 이날치 사무실에서 만난 멤버들은 “2집부터는 판소리 근간이 되는 이야기를 창작해 이를 노래하는, 과거의 소리꾼처럼 앨범을 만들고자 한다”며 ‘21세기 판소리’를 예고했다. 밴드를 이끄는 장영규는 어려운 길을 택한 배경에 대해 “1집의 성공 이후 국악을 재해석하는 무대가 많아졌다. ‘정년이’ OST로 ‘새타령’을 불렀고 내년에는 ‘흥보가’를 재해석해 보여드릴 기회가 있을 것 같다. 이러한 작업들이 있으니 음반에서만큼은 새로운 창작을 해야만 했다”고 강조했다.

이날치만의 선율은 독특한 멤버 구성으로부터 출발한다. 기타, 피아노와 같은 화성음을 이끄는 악기 대신 판소리 보컬 3인으로 멜로디를 채운다. 두 명의 베이스와 드럼은 판소리의 고수(북치는 사람)와 같은 역할로, 이날치만의 가락을 만드는 중요한 구성요소다. 베이스 장영규는 1990년대 밴드 어어부 프로젝트를 하면서 국악에 눈을 뜨기 시작해, 이후 충무로에서 ‘천재 음악감독’으로 입지를 다졌다. 노디는 장영규에 대한 궁금증과 존경심을 안고 이날치에 새로 들어왔고, 이용진은 전 멤버 정중엽의 추천을 받아 이날치에서 드럼 스틱을 잡게 됐다. 장영규는 “공식적으로 기록되지 않았으나 분명히 존재했을 판소리의 다양한 형태에 주목했다. 여기에 상상력을 더해, 과거에 머무는 것이 아닌 오늘의 대중음악을 하기 위해 이날치만의 멤버 구성을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보컬 최수인과 전효정은 서울대학교 국악과 출신의 20대 소리꾼이다. 학창시절부터 각종 판소리 대회를 휩쓸었던 최수인은 “1년 전 이날치 보컬이 되겠다고 했을 때, 주변에선 ‘궤도에서 벗어난 활동’이라면서 걱정했다. 막상 해보니 해방감을 느꼈고, 이러한 자유로움은 전통 소리를 갈고닦는 데에도 도움이 됐다”고 했다. ‘범 내려온다’ 히트 이후 팀에 들어온 전효정은 “내 목소리를 찾는 작업을 지난해 내내 했다. ‘쉽게 하는 것처럼 보이면 그 사람이 진짜 고수’라는 말을 이날치에 들어와서 절실히 깨달았다”고 밝혔다. 원년 멤버 안이호는 “처음엔 전통을 벗어난 시도가 두려웠지만 막상 지금은 그런 고민 자체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며 “전통을 존중하되 얽매일 필요는 없다. 자신이 진짜로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를 찾는다면 성과는 따라올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날치의 2집 프로젝트는 내년 초여름까지 이어진다. 이날치는 “반짝 화제의 대상이 되기보다는 우리만의 음악성을 인정받고 싶다”고 바랐다.

황지영 기자 hwang.jee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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