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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르시스(katharsis)! 연민과 공포의 정화, 혹은 찌꺼기의 배설을 뜻하는 그리스 말이다. 카타르시스는 통상 비극의 개념으로 이해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비극을 “서사가 아니라 연기를 통해서, 연민과 공포로 생겨난 그런 감정들을 정화시킨다”(6장 1449 b)고 정의해 놓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정화’는 크게 세 갈래로 이해된다. 혹자는 연민과 공포를 불러일으키고 그런 감정들을 제거할 수 있도록 드라마를 구성하는 것으로, 혹자는 드라마를 보는 관객의 마음에 생겨난 연민과 공포를 해소하는 것으로, 혹자는 종교적 차원의 정화로 풀이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아리스토텔레스는 카타르시스에 함축된 정치적 기능에 대해서는 상세히 논하지 않는다. 드라마가 아닌 현실에서 겪는 두려움과 공포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에 대해 한마디 정도는 해줄 법도 한데 말이다.
내 생각에, 카타르시스는 드라마의 기능을 넘어서 정치적인 정화 작용까지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단적으로,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왕>을 그 증거로 제시할 수 있다. <오이디푸스왕>은 나라를 더럽힌 오염(miasma)과 그 원인을 찾아서 제거해 달라는 시민들의 요청으로 시작하는데, 그 오염을 제거하는 것이 실은 카타르시스이다. 이 비극은 나라의 오염을 정화하는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 정화를 지켜본 관객이 마침내 안도와 환호하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그렇다면 현실에서 겪는 불안과 공포는 어떻게 해소해야 할까? 그 답은 지극히 간명하다. 드라마에서처럼, 나라를 더럽힌 오염과 그 원인을 제거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어쩌면 그 답이 너무도 분명해 아리스토텔레스가 카타르시스의 정치적 기능에 대해선 별도의 말을 남기지 않았을 것이다. ‘지체 없이’ 오염과 그 원인을 찾아내고 제거하는 것 이외에 다른 방도가 없다는 점을, 드라마를 통한 간접 경험이 아니라 현실에서 직접적으로 불안과 공포를 느끼고 경험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직감하고 동의할 것이기에.
‘존경하는’ 여의도 선량들에게 묻는다. 비상계엄 선포로 여전히 불안과 공포에 시달리는 국민들을 위한 크리스마스 선물로 카타르시스는 어떠한가?
안재원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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