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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6 (목)

[여적]탄핵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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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윤석열퇴진 전국대학생시국회의’는 지난 23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우체국에서 크리스마스카드 500여통을 대통령 관저에 부치고 있다. 카드에는 “당신은 민주주의를 꺾을 수 없다” “모두가 제 몫의 숨을 온전히, 또 기꺼이 쉬게 해주세요” “죗값 치르고 감옥 가라” 등 윤석열을 강도 높게 비판하는 내용이 담겼다. 대학생 시국회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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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랑딸랑~’ 자선냄비에 돈도 넣었고, 송년 모임도 해치웠겠다, 지금쯤은 크리스마스에 눈 오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게다. 계엄의 밤이 없었다면 한 해를 이렇게 마무리했을 게다. 그 무도한 일이 있기 전까진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시상식에 한껏 들떠 그 순간을 두고두고 떠올릴 수 있으리라 싶었다. 그러나 계엄은 우리의 소중한 일상을 삼켜버렸다. 기부할 마음도 쪼그라들어 ‘사랑의 온도탑’은 100도를 달성하지 못할 거라고 한다. 송년회는 줄줄이 취소됐다.

그나마 안심되는 것이 있다면, 같은 마음으로 거리를 채우고 있는 응원봉들이다. 내란 수괴 윤석열을 끌어내려는 형형색색의 불빛은 국회의 탄핵소추 결정을 끌어냈다. 12·3 계엄 후 이어지는 집회는 2030 여성들이 주축이다. 수많은 콘서트에서 단련된 노하우로 혹한의 날씨에도 현장을 지키고 있다. 멋지고 대단하다.

그 와중에도 나라는 뒤로 가고 있다. 탄핵을 반대하는 극우세력 압박으로 경북 구미시가 25일로 예정된 가수 이승환씨의 콘서트 대관을 취소했다고 한다. 이전 공연에서 이씨가 “탄핵이 되니 좋다”고 한 발언을 문제 삼았음이 분명하다. 가수 아이유 등 탄핵 집회를 지원한 연예인들에 대한 비방 움직임도 있다. 박근혜표 ‘불랙리스트’ 구태가 또 도진 것인가.

그렇다고 여기서 멈출 순 없다. 응원봉 집회가 그간의 촛불집회와 다른 건 다양한 소수자들이 서로를 알아보기 시작했다는 점일 것이다. 연대 의식이 확산하면서 노동운동 현장에도 후원이 줄 잇고 있다. ‘전태일 의료센터’ 건립위원회에는 23일 2795건의 후원이 몰려 한때 홈페이지가 마비됐다고 한다. 성탄 전야에도 광장은 윤석열 탄핵을 촉구하는 응원봉과 노래들이 메웠다. 서울 경복궁역 앞에선 ‘메리 퇴진 크리스마스 민주주의 응원봉 콘서트―다시 만들 세계’가 열렸다.

탄핵안이 가결된 12월14일, 광장에서 가장 먼저 울려퍼진 노래는 ‘다시 만난 세계’였다. 앞으로 탄핵의 긴 터널을 빠져나가려면 이 노래 정도는 외우고 있어야겠다. 집회에 참여하면서 나라도 바로 세우고, 서로의 삶을 들여다봤으면 좋겠다. 이 겨울이 춥고 힘들겠지만, ‘다시 만들 세계’에서는 서로에게 보내는 지지와 환대가 풍성하길 기원한다.

이명희 논설위원 mins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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