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고사 직전의 석유화학업계를 구하기 위한 '신호탄'을 쐈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뉴스웨이 김다정 기자]
정부가 고사 직전의 석유화학업계를 구하기 위한 '신호탄'을 쐈다. 중국발(發) 과잉 공급으로 인해 벼랑 끝에 놓인 국내 석유화학산업의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결과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23일 '석유화학산업 경쟁력 제고 방안'을 관계부처 합동으로 발표했다. 공장 매각 등 사업재편을 유도하고, 고부가·친환경 분야로의 진출을 지원하는 것이 주요 골자다.
구체적으로는 사업재편 기업의 경우 지주회사 지분 100% 매입을 위한 규제 유예 기간을 현행 3년에서 5년으로 늘리고, 기업결합심사가 신속히 이뤄지도록 공정거래위원회의 사전 컨설팅을 지원한다.
유동성 해소와 사업 전환을 위해 3조원 규모의 정책금융도 지원한다. 설비투자·연구개발(R&D)·운영자금 등에 대해 현행 금리보다 1%포인트 이상 낮은 저리로 대출을 지원한다. 사업재편 추진 시에는 1조원 규모의 사업 구조 전환지원자금을 활용할 수 있다.
전례 없는 위기 상황…심상치 않은 '수익성 악화'
지난 40여년간 국가 경제 성장에 중추적인 역할을 해왔던 국내 석유화학업계는 최근 몇 년 사이 전례 없는 위기를 맞았다.
제2의 내수시장'이라 불렸던 중국이 자급률을 무섭게 끌어올리면서 '공급과잉'이라는 구조적인 한계에 봉착한 것이다. 지난해 중국의 연간 에틸렌 생산능력은 5174만톤(t)으로 5년 전인 2018년(2565만t)의 두 배를 넘어섰다.
중국의 자급자족은 수출 감소를 넘어 글로벌 시장을 교란하고 있는 상황이다. 중국산 저가 제품이 풀리면서 국내 업체들의 수익성까지 크게 악화됐다.
오히려 공장을 가동할수록 손해인 상황이 지속되자 국내 석유화학사들은 가동률을 낮춰 생산능력을 조절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녹록지 않다. 그러는 사이 국내 나프타분해설비(NCC) 가동률은 2021년 93.1%에서 2023년 74%로 2년 새 20%포인트 가까이 감소했다
한때 강력한 경쟁력으로 반도체·정유와 함께 '수출 3대 효자'로 불렸던 석유화학은 중국 기업의 공격적인 NCC 증설에 따른 대규모 물량·가격 공세에 밀려 이제 '매각 1순위'로 전락했다.
정부, M&A·R&D·금융세제 등 지원…석유화학업계 "환영"
구조적 한계가 해소되지 않으면 장기 불황을 넘어 생존까지 위협받을 수 있다는 우려 속에서 그 어느 때보다 실효성 있는 정부 지원책에 대한 목소리가 높은 상황이다.
국내 석유화학업계는 정부가 '3조원' 규모의 금융·세제 지원을 통해 경쟁력 강화에 뜻을 모았다는 점에서 환영하는 분위기다. 설비 폐쇄와 사업 매각, 합작법인 설립 등 기업의 자발적 사업재편을 지원하는 인센티브 내용이 담겨 구조조정을 위한 밑바탕은 마련됐다는 평가다.
한국화학산업협회는 즉각 환영의 뜻을 전했다. 신학철 화학산업협회 회장은 입장문을 통해 "정부의 지속적인 관심으로 석유화학산업 경쟁력 제고 방안이 차질 없이 발표된 것에 대해 업계를 대표해 감사의 뜻을 표한다"고 밝혔다.
신 회장은 "업계가 위기 극복을 위해 범용사업 축소 등 사업을 재편하고 정밀화학, 배터리 소재 등 고부가가치 친환경 산업 구조로 전환하고자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정부의 속도감 있는 지원이 절실한 상황이었다"며 "정부의 경쟁력 제고 방안을 크게 환영한다"고 말했다.
日사례로 보는 '정부 주도' 중요성…아쉬운 목소리도
하지만 '빅딜'과 같은 강력한 구조조정 카드가 빠진 지원책이 어느 정도 실효성이 있을지는 의문이 남는다.
국내 석유화학업계의 양대 산맥으로 꼽히는 LG화학과 롯데케미칼도 NCC 등 핵심 자산 매각과 범용 소재 사업 처분 등 자발적인 구조조정에 나섰지만 2년이 넘도록 뜬소문만 무성할 뿐 그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석유화학업계가 스스로 자구 노력을 해오고 있고 사업재편 의지도 충분한 만큼 정부는 이를 촉진하도록 제도적 지원에 나설 계획"이라며 "사업재편 계획을 마련하면 관계부처와 신속히 지원하고, 실제 정책 수요를 바탕으로 내년 상반기 후속대책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당초 시장에서는 이른 시일 내에 고강도 구조조정이 선제 돼야 한다는 것이 중론 속에서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김수강 넥스트 연구원은 "이른 시일 내 구조조정을 결단하지 않을 경우 열위업체들을 중심으로 재정적인 어려움이 심화될 것"이라며 "일부 업체들이 자산경량화·구조조정을 통해 리스크를 줄이고 있지만, 기존 설비자산 매각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여 정부 차원의 구조조정 지원이 중요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과거 일본의 석유화학 사업재편 사례만 보더라도 정부 주도의 과감한 구조조정이 이뤄졌다. 산업부 역시 최근 '일본 석유화학 주요 정책 및 현황 조사 연구'에 관한 용역을 긴급 발주하기도 했다.
일본은 한국과 대만의 공세에 30년 전 일찌감치 석유화학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정부 주도로 1 지역당 1사만 남긴다는 원칙을 세우고, 기업 간 통폐합을 추진했다. 현재 일본은 내수를 위한 최소한의 설비만 남겨둔 채 교통정리에 성공했다.
이은영 삼일PwC 경영연구원 상무는 '팀 코리아' 구조조정 방안을 제시하면서 "현재 석유화학기업을 통폐합하여 범용제품 생산기업은 1~2개로 통합하고, 나머지는 스페셜티 제조업체로 특화하는 방안을 고려해 볼 수 있다"며 "기업 자율에만 맡길 경우 골든타임을 놓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 생존을 위협받는 석유화학업계의 구조조정 필요성에 대해 정부와 공감대를 형성했다는 것은 환영할 만하지만 기대했던 정부 주도의 빅딜 방안은 나오지 않아 아쉬운 면이 있다"며 "마땅한 인수자를 찾기 어려운 상황에서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 없이는 또다시 시간만 지체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다정 기자 ddang@
저작권자(c)뉴스웨이(www.newsway.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