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부채와 지출 줄이겠다고
선거 때 유권자에 약속했습니다
트럼프를 여전히 지지하지만
미래에 부담을 지울 순 없습니다”
미국 하원 원내대표 마이크 존슨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J D 밴스 부통령 당선인(왼쪽부터) 등과 지난 14일 육군 대 해군 미식축구 경기를 관람하는 모습. 트럼프는 이 자리에서 존슨에게 임시 예산안에 '부채 상한'을 유예하는 내용을 넣으라고 압박했다고 알려졌다. /AFP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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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의 대통령 ‘2기’를 한 달 앞둔 지난 주말, 미국 의회에선 큰 소동이 있었다. 트럼프와 그의 최측근 사업가 일론 머스크가 공화당 지도부를 통해 내린 명령이 의회를 뒤흔들었다. 여야가 이미 합의한 임시 예산안에 ‘부채 상한’ 적용을 유예하는 내용을 끼워 넣으라는 지시였다. 부채 상한은 재정 건전성을 위한 장치로 의회 승인을 받아야 올릴 수 있다. 그때마다 종종 정쟁(政爭)이 격해져 정부가 마비될 위기에 처하곤 한다. 내년 임기 시작 전에 이 골치 아픈 문제를 치우고 싶었을 트럼프의 계획은 그러나 무산됐다. 19일 하원 표결 때 공화당 의원 중 38명이 반대에 동참해 부결됐다. 예산안은 다음 날 트럼프의 요구 사항을 빼고 간신히 통과됐다.
머스크는 “반대하면 2년 안에 끝장”이라고 협박했다. 그럼에도 반대표를 행사한 공화당 의원은 5분의 1 정도다. 무슨 생각이었을까. 이들의 발언을 찾아보았다. 일단 ‘작은 정부’를 신봉하는 정통 보수파 의원이 다수였다. 이들 중 상당수는 반복되는 부채 한도 문제뿐 아니라, 지출을 계속 늘리는 예산안부터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칩 로이 의원의 3분짜리 의회 연설이 이들의 생각을 압축적으로 담았다. “지난달 선거 때 공화당은 책임 있는 재정 지출을 약속하지 않았습니까. 인제 와서 부채 한도를 올리고 지출도 늘리겠다고요? 이런 제안을 하는 공화당에 역겨움을 느낍니다. 미국의 부채가 100일마다 1조달러(약 1450조원)씩 늘고 있습니다. 수치스러운 일입니다.”
반대자 중에 ‘트럼프 충성파’가 적지 않다는 점은 인상적이었다. 이들은 정부 지출의 ‘군살’을 빼겠다고 공언하며 정부효율부(DOGE·‘도지’라고 읽는다)까지 만든 트럼프와 머스크가 부채 상한을 올리라고 압박하는 행태가 모순적이라고 직언(直言)했다. 머스크도 참여하는 의회 내 ‘DOGE 위원회’ 공동 위원장을 맡은 에런 빈 의원이 대표적이다. 그는 “지출 중독에서 미국을 구하겠다는 것이 DOGE의 취지”라면서 반대표를 행사했다. 30대 여성 의원 캣 캐맥은 트럼프의 2020년 대선 패배까지도 부정한 골수 충성파면서도 이번엔 트럼프의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 X에 쓴 글이다. “선거 때 공화당은 35조달러에 이르는 국가 부채를 줄이겠다고 공약했다. (트럼프 요청대로) 부채 상한 적용을 유예하는 동시에 이를 달성할 방법은 없다.”
트럼프의 국경 통제 정책을 지지해 온 네이선 모런 의원은 ‘반대’ 투표 후 취지를 설명한 성명을 발표했다. “미국을 해치는 지출 낭비를 줄이고 재정 건전성을 회복시키겠다는 공약을 믿고 지난 선거 때 유권자 7700만명이 트럼프와 공화당에 투표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합니다. 하지만 미래 세대에게 부담을 지울 ‘백지수표’(부채 한도 증액)까지 용인할 수는 없습니다.”
이들의 발언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는 ‘약속’과 ‘의무’였다. 지난달 대선과 총선 때 ‘재정 건전성 회복’을 공약으로 내걸고 유권자 선택을 받은 공화당이라면 그 약속을 지킬 의무가 있다는 얘기였다. 평소 “트럼프가 나라를 구했다”고 칭송해 온 랠프 노먼 의원이 반대표 행사 후 한 방송 인터뷰는 표현이 다소 과격했지만 설득력 있게 들렸다. “예산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정부가 마비된다고 호들갑을 떨면서 급박함을 ‘머리에 총구가 겨눠졌다’고 비유하는 이들이 있죠. 부채 상한 유예와 과도한 정부 지출이야말로 국민의 미래에 정치권이 총을 겨누는 행태입니다. 상식적으로 좀 생각합시다.”
국회의원은 누구를 위해 일할까. 미국에서도 국회의원은 사랑받는 직업이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그 하루만큼은 ‘유권자와 한 약속’을 권력자에게 충성하기보다 앞세운 공화당의 38인이 있었다. 때로는 상식적인 일에도 용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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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영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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