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발냄새연구회’ ‘전국 집에누워있기 연합’ ‘전국고양이노동조합’ ‘전국 뒤로 미루기 연합’ ‘전국 얼죽아 연합’ 등 탄핵과는 전혀 상관없을 법한 이 문구들이 여의도 광장에서 펄럭일 때 시민들은 열광했다. 그것은 끔찍한 계엄령 앞에서도 당당함을 잃지 않은 시민들의 통쾌한 풍자였다. 또한 이것은 단순히 언어유희를 넘어, 약자의 언어를 넘어, 소위 ‘웃음의 정치’(Gelopolitics)라 할 수 있다. 그 유쾌한 풍자의 어우러짐 속에 새로운 세상을 위한 열망이 커져만 갔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대학 정치학과의 패트릭 지아마리오 교수는 현대인이 ‘웃음의 시대’(Age of Hilarity)를 살고 있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웃음을 통해 정치적 이슈를 배우고, 풍자를 통해 정치에 참여한다. 반면, 조롱과 비아냥을 통해 약자에 대한 정치적 폭력이 자행되기도 한다. 한편, 웃음은 고통스러운 현실로부터 일시적으로 해방되는 탈출구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지아마리오 교수가 가장 경계하는 ‘웃음의 정치’는 바로 ‘웃음 없는 정치’이다. 왜냐하면, 웃음을 상실한 정치란 권력에 대한 풍자와 유머가 통제되고 오직 권력자의 냉소와 조롱만이 허용되면서, 결국 권위주의와 독재를 강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전까지 한국의 시민들에게 어떤 웃음이 허용되고, 어떤 웃음이 배제되어 왔을까? 테오도르 아도르노는 <계몽의 변증법>에서 두 가지 웃음을 소개한다. ‘순응적 웃음’과 ‘비판적 웃음’이 그것이다. 시민들에게 허용된 일상적 웃음이란 주로 문화산업의 일환으로 오락과 소비를 장려하는 수단일 테다. 아도르노는 이것을 ‘순응적 웃음’이라 일컬으며, 이것이 비판적 사고를 마비시킨다고 보았다. 그는 단순히 오락적 웃음을 넘어 사회적 모순을 자각하고 비판하는 ‘풍자’와 같은 ‘비판적 웃음’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우린 아도르노가 전혀 상상하지 못한 새로운 유형을 최근 목격하고 있다. 바로 가장 오락적인 ‘응원봉’이 가장 정치적인 ‘탄핵봉’으로 탈바꿈한 장면 말이다.
지난 11월7일 시민들은 권력자의 웃음을 시청했다. 대국민담화 및 기자회견에서 대통령은 자신에 대한 여러 의혹과 논란에 대해 별일 아니라는 듯 유머까지 섞으며 준비된 답변을 이어갔다. 시종일관 얼굴에 여유로운 미소를 머금은 장면들이 영상을 통해 생중계됐다. 그 자리에서 분명했던 건 웃음은 오직 대통령에게만 허용되었고, 그 누구의 웃음도 허락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코미디 같은 발언들 앞에서 도저히 웃을 수 없었다는 것이 맞는 표현일 게다.
하지만 이제 하루가 멀다 하고 비웃음과 냉소에 맞서 해학과 패러디, 환호와 환대가 거리 위를 물들이고 있다. 권력자의 여유로운 냉소를 깨부수는 건 시민들의 환호 섞인 아우성일 테다. 즉, 영국 철학자 사라 아메드의 ‘킬조이(killjoy)’ 선언처럼, 시민들은 냉소적인 권력 앞에 “기꺼이 성가신 존재”가 되기로 결심했다. 12월21일 밤 남태령 고개에서 농민들과 시민들이 바로 그 증거다. 그들은 더 화려하고, 더 반짝이며, 더 큰 목소리로 다시 만날 세상을 밤을 지새우며 힘껏 외쳤다.
웃음의 배제와 허용은 오랫동안 권력의 주요한 통제 수단이 되어 왔다. 하지만 계엄령 이후 이제 웃음은 더 이상 권력의 것이 아니라 온전히 시민의 것이 되었다. 사라 아메드의 표현을 빌리자면, 민주주의를 위해 환호가 필요하다면, 환호가 곧 민주주의다. 따라서 우린 지금 지구상에서 최초로 점등된 오색찬란한 민주주의를 목격하고 있는 것이다.
철학자 니체는 위트가 넘치는 사람이야말로 자유로운 정신의 소유자라 했다. 신분과 지위, 시대의 지배적 견해로부터 벗어나 다르게 사유할 수 있는 사람 말이다. 지금 전국의 광장에 온갖 위트로 무장한 자유시민들이 넘쳐나고 있다. 비로소 대한민국에 진정한 해방의 역사가 태동되는 것은 아닐는지. 2024년 연말, 반짝이는 웃음의 정치로 이 추운 겨울을 넘어 따뜻한 봄날을 맞이할 수 있기를 소망해본다.
김관욱 덕성여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
김관욱 덕성여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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