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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4 (화)

[이대근 칼럼]국민의힘이 기가 살아 있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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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윤석열 탈당을 요구한다. 내란과 윤석열 실정에 책임 있는 세력을 배제, 당내 윤석열 흔적을 지운다. 이렇게 당을 윤석열로부터 분리한 다음 당을 혁신해 살길을 찾는다. 내란충격에 대처하는 합리적 접근법이다. 박근혜 탄핵 때도 그렇게 해서 당을 위기에서 구하고 집권까지 했다.

국민의힘은 반대로 하고 있다. 의리 때문일까? 입당 3년짜리 사고뭉치와 당의 미래를 맞바꾸는 것은 아무래도 계산이 맞지 않는다. 윤석열과 분리 불가능하다는 생각에 자포자기한 걸까? 당 분위기는 전혀 그렇지 않다. 권성동은 “여전히 국민의힘이 여당”이라며 굳이 자신들이 윤석열의 당임을 내세운다. 한덕수에게 국회가 통과시킨 법을 거부하라 요구하고, 당정협의도 하며 뒤늦게 망한 정권의 주인 노릇에 열심이다.

정면돌파하려는 걸까? 당 간판과 얼굴만 바꿔 책임회피하는 얕은수를 쓰는 대신, 윤석열과 함께 돌을 맞기로 했다면, 책임전가 아닌 책임분담을 하겠다면 환영할 일이다. 시민들은 책임을 분명하게 물을 기회를 잡을 수 있다. 하나 비대위 체제로 전환하고도, 윤석열에 의해 더럽혀진 당명과 당 이미지를 안 바꾸고 그대로 두는 모험을 할 것 같진 않다.

국민의힘의 놀라운 행태는 나름의 생존법을 터득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건 아마도 강력한 생존법일 것이다. 그렇지 않고는 저토록 기가 살아 있을 수 없다. 저 당이 변화를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할 것이라는 기대를 배신하고도 살아남을 방법은 딱 하나, 정치 양극화에 의존하는 것이다.

19세기 영국 총리 벤저민 디즈레일리가 정당을 ‘조직된 의견’이라고 했지만, 정치 양극화 상황에서 정당에 필요한 건 의견이 아니라, 상대에 관한 부정적 감정이다. 어떤 쟁점에 어느 편이 더 설득력 있는 견해를 내놓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우리 편이 이기는 것이지, ‘권력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정치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이 아니다. 이게 국민의힘이 기댈 언덕이다.

많은 이들은 이런 현실을 바꾸기 위해 개헌해야 한다고 한다. 권성동이 이재명에게 한 개헌 제안도 그런 배경을 갖고 있다. 권성동 제안은 두 가지 이유로 부적절하다. 우선 내란 책임을 윤석열이 아닌, 헌법에 묻고 있다. 윤석열은 헌법이 금지하는 일을 했다. 내란은 헌법적 결함이 아니라, 윤석열의 인지적 결함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그리고 개헌을, 더 나은 민주주의를 위한 정치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수세 탈피, 혹은 역공세를 위한 정략도구로 이용했다.

분권개헌은 소망스럽다. 하지만 상대에 대한 부정적 감정을 연료로 하는 대립정치가 해소되지 않는 한 개헌은 어렵고, 설사 개헌해도 정치변화를 기대할 수 없다. 한국 정치는 대화를 강제하는 여소야대 상황에서도 대결한다. 그런 정치를 치유할 특효약은 없다.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원하면 정치를 잘하는 길밖에 없다. 개헌은 만능이 아니다. 개헌을 요구하는 정치현실을 바꾸겠다는 결심이 없는 개헌 논의는 개헌을 대결 소재로 삼는 또 다른 양극화 현상일 뿐이다.

제왕적 대통령의 등장은 현행 헌법하에서도 막을 수 있다. 제왕은 헌법에 의해 탄생하는 게 아니라, 정치에 의해 만들어진다. 윤석열 정부에서 우리가 목격한 바다. 장관들과 여당은 대통령을 정점으로 위계적 권력질서를 구축하고는 윤석열의 헛소리를 왕명처럼 받들었다.

국회 견제를 받는 윤석열 앞에 놓인 선택지는, 왕이 된 기분을 내려놓고 야당과 대화하든가, 축소된 권력에 만족하든가 둘 중 하나였다. 그러나 제왕의 맛에 길들여진 그는 양자택일을 포기하고 창의적 방법을 찾아냈다. 그랬던 그도 자신이 제왕이 아니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는 아무것도 할 힘이 없어서 이렇게라도 해야 했다고 말했다.

최근 사람들은 양당 지지율 격차 두 배 확대, 윤석열 지지율 하락에 놀라지만, 정작 놀랄 일은 따로 있다. 윤석열 지지율 11%는 박근혜 탄핵 때 지지율 4~5%의 두 배이며, 국민의힘 지지율 24%도 새누리당 지지율 12%의 두 배다.

박근혜 국정농단과 비교할 수 없는 내란을 일으켜도 집권세력 지지율이 두 배 높아진 현상을 설명할 다른 방법이 없다. 바로 혐오정치 두 배 성장이다.

한국 정치가 이렇게 무어의 법칙을 따르는 한 양당 경쟁의 진정한 승자는 혐오정치가 될 것이다. 탄핵당하고도 반성 없이 화려하게 부활하는 윤상현의 꿈, 이루어질지 모른다.

경향신문

이대근 칼럼니스트


이대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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