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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4 (화)

‘폴리코노미의 해’를 보내며 [세상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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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언했다 국회의 의결로 계엄을 해제한 지난 4일 오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전광판에 이날 거래를 시작한 코스피, 원-달러 환율, 코스닥 지수가 표시돼 있다. 이날 코스피와 코스닥 시장은 2% 가까이 하락세를 보이며 출발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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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욱 |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



2024년은 역사상 가장 많은 인구가 투표에 참여한 해였다. 76개 국가에서 약 42억명이 선거를 치렀다. 1년간 우리 연구원이 발간한 현안 보고서 목록을 보면 어디서 어떤 선거를 치렀는지 알 수 있다. 1월 대만 총통 선거부터 시작해서 3월엔 러시아 대선, 4월엔 인도 총선, 5월엔 남아프리카공화국 총선, 6월엔 멕시코 대선과 유럽의회 선거가 있었다. 7월엔 영국과 프랑스에서 조기 총선이 치러졌고, 8월엔 방글라데시에서 반정부 시위가 일어나며 새 정부가 꾸려졌다. 10월엔 일본 총선이, 그리고 11월엔 가장 중요한 미국 대선이 있었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경제는 정치와 무관하지 않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이 각국 선거에 주목한 이유는 그 결과에 따라 정부 경제정책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처럼 주요 국가에서 선거가 치러질 때는 미리부터 경제적 영향을 분석하고 대책을 준비해야 한다. 미국을 담당하는 동료들은 두 후보 정책에 대한 보고서를 각각 써놨다가 선거 결과가 나온 다음날 당선자 버전의 보고서를 발간했다. 미국만큼은 아니지만 유럽에서도 중요한 선거들이 꽤 있어서 나도 분주한 해를 보냈다. 정치(politics)와 경제(economy)를 섞어 만든 ‘폴리코노미’라는 말은 1년 내내 우리 연구원의 화두였다.



폴리코노미는 정치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뿐 아니라 경제가 정치에 미치는 영향도 의미한다. 때론 경제 상황이 선거 결과를 결정짓기도 한다. 예컨대 트럼프의 지지 기반은 자유무역의 혜택에서 배제된 노동자 계층이다. 중국산 저가 제품의 공습에 미국은 속수무책이었고, 러스트벨트의 공업단지는 날로 쇠락했다. 가뜩이나 어려운데 이민자들이 대거 들어와 좋은 일자리를 차지했다. 관세를 올리고 국경을 막아 제조업을 다시 일으키겠다는 트럼프에게 절반에 가까운 미국인이 지지를 보냈다.



경제 상황 악화로 인한 불만은 유럽의 정치지형도 변화시켰다. 코로나19 유행 이후 고금리, 고물가 상황이 지속되면서 가계 실질소득이 감소했다. 전쟁 중 무리한 에너지 전환은 생산 비용을 상승시켰고, 엄격한 환경 규제가 기술 혁신에 대한 투자를 지연시켰다. 이민자, 난민에 대한 재정지원은 내·외국인 간 갈등의 불씨가 됐다. 집권 세력이 신통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동안 극단주의와 인기영합주의가 득세했다. 올해 유럽의회와 유럽 주요국 선거에서는 소위 극우로 분류되는 정치세력이 역대 최대 지지율을 기록했다.



새로 떠오른 이들은 불가피하게 자국 유권자들을 우선하는 정책을 펴게 된다. ‘○○을 다시 위대하게’ 유의 고립주의 정책은 분명 세계 경제에 부담이 될 것이다. 트럼프는 취임하기도 전에 멕시코, 캐나다, 유럽연합 등 최우방에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나섰고, 유럽은 이에 맞서 보복관세나 수출통제를 검토하고 있다. 역내 첨단산업 경쟁력 강화를 목적으로 한 보조금 경쟁은 앞으로 더욱 치열해질 조짐이다. 2차 대전 후 지금껏 세계 경제의 번영을 책임졌던 국제 분업 체계는, 주요 참여국의 국내 정치 동학으로 인해 서서히 해체되고 있다.



이 와중에 우리나라는 사정이 안 좋다. 12월의 한국은 정치가 경제를 뒤흔든 가장 적나라한 사례로 기억되지 않을까 싶다.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 불법 비상계엄 선포로 인해 어마어마한 경제적 손실이 발생했다. 비상계엄 뒤 단 3일간 외국인 투자자들은 코스피 시장에서 1조원 이상의 지분을 매도했고, 한국은행은 금융위기 때보다 더 많은 유동성을 시장에 공급했다. 계엄 여파에 미국발 충격이 더해지며 원-달러 환율이 15년 만에 최고치를 찍었다. 정치 불안은 소비, 투자, 수출을 다 위축시켰다.



사실 더 큰 문제는 앞으로다. 대통령 권한대행과 장관들이 수습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지금의 위기는 급조한 단기 대책으로 극복할 성격의 것이 아니다. 파편화되고 있는 세계 경제 질서에 어떤 철학을 가지고 어떻게 적응할지 결정해야 하고, 적극적으로 우방을 찾아 연대의 묘수를 찾아내야 한다. 정치적 지형 변동 이면에 있는 국내 자원 배분의 문제 역시 장기적 비전을 갖고 풀어나가야 한다. 하나같이 대통령 자리를 비워두고는 해결할 수 없는 과제들이다.



정치적 안정이 곧 경제적 이익이다. ‘폴리코노미의 해’를 보내며, 부디 2025년에는 탄핵 절차가 조속히 마무리되고, 더 나은 정치, 더 나은 경제를 위해 준비된 정부를 맞이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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