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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4 (화)

[현장의 시각] 경제엔 여야 없다… 원팀 필요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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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송기영 산업부 재계팀장




2016년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탄핵과 2024년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정국은 공교롭게 트럼프 미국 행정부 1·2기 출범을 앞둔 시점에 벌어졌다. 2016년 11월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고 한달여 만에 박 전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도 올해 11월 트럼프 당선 이후 한달 만이다. 아무리 좌충우돌하는 트럼프라도 한국 정치의 특수성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긴 쉽지 않을 거다.

박 전 대통령 탄핵 사태로 우리는 트럼프라는 미증유의 미국 지도자에 대응할 골든타임을 놓쳤다. 트럼프가 2016년 대선에서 당선된 지 사흘 만에 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비준을 중단하고, 이듬해 1월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한국 기업들의 가정용 세탁기 및 태양광 전지·모듈에 대한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를 승인했을 때 한국은 탄핵의 격랑에 휩싸여 미국을 볼 겨를이 없었다. 이후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친(親)중국 드라이브를 걸다가 중요한 국제 이슈에서 미국에 패싱 당하기 일쑤였다.

8년이 지난 지금 비슷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이 1기 때보다 더 높고 공고한 무역 장벽을 치겠다고 벼르고 있는데, 국내 인사 중 유일하게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만이 트럼프를 만났다. 한국 정부는 선진국 가운데도 유독 대미(對美) 로비가 약한 걸로 알려져있는데, 이런 중요한 시기에 우린 대통령 공백 상태다.

지금을 8년 전의 데자뷔 정도로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한국은 2%대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도 지켜내기 버거운 저성장 국가로 접어들고 있다. 내년 한국 GDP 성장률을 1%대로 전망하는 외국계 대형 금융사도 있다. 박근혜 탄핵 이듬 해인 2017년 GDP 성장률은 3.1%였다. 국가 성장 동력이 반토막이다. 최근 만난 경재계 인사들이 8년 전 탄핵과 다른 점으로 ‘경제에 주는 충격’이라고 입을 모으는 이유다.

수출 실적을 들어 한국 경제의 성장 동력을 높게 평가하는 일각의 목소리도 있다. 수출이 13개월 연속 증가했다는데, 수치를 뜯어보니 불황형 흑자다.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자료를 보면 올해 1~11월 누적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8.3% 증가한 6222억달러다. 최대 수출품목인 반도체 호황 덕분이다. 11월 반도체 수출 규모는 1년 전보다 30.8% 오른 124억5000만달러였다. 역대 11월 중 최대 실적이면서, 4개월 연속 월별 최대 실적을 갈아 치우는 상황이다. 반도체 수출 호황은 자동차, 배터리, 철강 등 다른 주요 산업의 수출 위기를 가린다. 11월 수출 2위 품목인 자동차 수출은 전년 동월 대비 13.6%나 줄었다.

수입은 계속 감소세다. 지난달 수입은 전년 대비 2.4% 감소한 507억4000만달러(70조7823억원)를 기록했다. 수입이 늘어난 부문은 반도체(25.4%)·반도체 장비(86.0%) 정도다. 에너지와 자동차, 전화기, 건설자재 등의 수입은 대폭 감소했다. 내수 경기가 그만큼 침체됐다는 의미다. 결국 수입도, 수출도 반도체 홀로 끌고가는 한국 경제다. 그나마 내년 반도체 시장이 암울하단 전망이 쏟아진다.

‘위기를 기회로 만들자’고 하기엔 처한 경제 상황이 척박하다. 위기를 타개할 정치 리더십이 부재해 더욱 그렇다. 기댈 곳이 고작 정치라는 게 개탄스러운 현실이지만, 결국 이 위기를 타개할 해법을 찾는 것도 정치의 몫이다. 나라 경제를 살리는데 여야가 없다. 당장 여야는 주요 경제부처 장관들과 경제 현안을 논의할 협의체라도 구성해야 한다. 탄핵안이 국회를 통과했고 검경의 조사도 시작했으니, 경제부처 장관을 불러 계엄 연루 여부나 따질 때는 지났다. 얼어붙은 공직 사회 분위기를 하루 빨리 해빙하고, 적극 행정을 지원하고, 여야 협의체를 통해 기업 애로사항을 해소해줄 때다. 정치권은 대한민국 위기를 여러 차례 극복한 대한민국 공직자들을 신뢰하고, 대한민국 경영인을 지원해야 한다.

지금 시장에 돈을 푸는 데 소극적이어선 안된다. 내년도 예산을 깎은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도 추가경정예산에 적극 동참해야 한다. 무엇보다 지금의 적극 행정이, 기업 경영인의 발빠른 대처가 훗날 ‘윤석열 정부를 위해 일했다’고 낙인 찍힐까 두려워하는 이들이 단 한명이라도 있어선 안된다. 아무리 초당적이라는 말이 정치 수사로 전락한 시대라지만, 지금은 당을 초월한 경제 원팀이 필요하다.

송기영 기자(rckye@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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