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한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 지난 8월 인천 청라동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발생한 전기차 화재사고를 조사해온 경찰(인천경찰청 형사기동대)이 최근 내놓은 결론이다. 4개월에 걸친 수사가 끝내 미궁 속에 빠졌다는 얘기다. 가해자는 없고 피해자만 남은 이 사고를 통해 우린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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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1일 인천 서구 청라동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발생한 전기차 화재사고를 기억하는가. 당시 화재는 메르세데스-벤츠에서 제조한 전기차(EQE 350)에서 발화했다. 이 사고로 함께 주차돼 있던 자동차 수십대가 불에 탔고, 700대 이상의 자동차가 그을렸다. 입주민들은 대규모 정전과 단수, 아파트 내부 분진 등의 피해도 입었다. 보험업계가 추정한 재산피해액만 수백억원에 달했다.
이상한 건 발화의 원인이었던 전기차는 사흘간 운행하지도 않았고, 충전 중인 상태도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공포가 더 커졌다. 아무런 이유 없이 가만히 있던 전기차가 불에 탈 수 있다는 걸 보여줬기 때문이다. 이후 국내 중고차 시장엔 전기차 매물이 쏟아져 나왔다.
곧바로 사고 원인을 밝혀내는 수사에 착수했던 경찰은 11월 28일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결론은 "원인을 알 수 없다"는 거였다. 경찰은 화재를 일으킨 전기차의 배터리관리장치(BMS)와 배터리팩을 확보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감정을 의뢰했지만, 화재로 인해 데이터가 손상돼 정확한 원인을 규명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고 밝혔다.
국과수는 "배터리팩 내부의 전기적 요인과 외부 충격에 의한 손상 등으로 화재가 발생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소견을 제시했을 뿐이다. 전기차 자체의 결함이나 전기차 소유주의 혐의도 찾지 못했다. 대신 아파트 관리사무소 관계자와 소방안전관리자 등에게 화재 초기 스프링클러 미작동과 같은 안전조치 미흡의 책임을 물어(업무상과실치상 혐의) 검찰에 송치했다.
피해를 입은 입주민은 모두 민사소송을 진행해야 할 상황이다. 해당 아파트 입주민과 차주는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가해자가 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 측은 "피해 분석이 완료되는 대로 합당한 책임을 다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법적 강제가 없는 상황에서 어느 정도의 책임을 질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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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심각한 건 시장에 퍼져 있는 '전기차 포비아(공포)'를 불식하기 어렵다는 거다. 지난 9월 정부가 전기차 배터리 정보 공개 의무화, 배터리 사전 인증제도 시행, 배터리 이상 징후를 미리 감지하는 BMS 장비 무상 설치 지원, 모든 신축 건물 지하주차장에 감지ㆍ작동이 빠른 '습식 스프링클러' 설치 의무화 등을 담은 '전기차 화재 종합대책'을 내놨다.
일부 아파트에서는 전기차의 지하주차장 주차를 막거나 충전을 제어할 수 없는 완속충전기를 지상으로 옮기고 있지만, 현실적인 대안이 아니다. 지상 공간이 충분하지도 않을뿐더러 어차피 충전을 완료하고 나면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갈 수 있어 위험요소가 사라지지 않는다. 특히 전기차 화재 중 20% 정도는 충전 후 주차 중에 발생한다.
결국 경찰 수사 이후 아무것도 해결된 건 없다. 이런 상황이라면 비슷한 사고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전기차 포비아'를 조금이라도 잠재우기 위해 지금 어떤 대책을 내놔야 할까.
첫째, 전국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있는 완속충전기(25만기)를 포함한 34만기의 완속충전기를 충전제어가 가능한 것으로 교체하는 거다. 물론 지하주차장에 있는 것부터 순서대로다.
사실 완속충전기 교체 비용은 1기당 100만원 정도(전체 3400억원)로 만만찮다. 하지만 아파트 측이나 일선 지자체들이 약간만 부담을 나눈다면 빠르게 교체할 수 있다. 자동충전제어를 통해 충전 비율을 80~90% 정도로 낮추는 만큼 전기차 화재는 줄어들 게 확실하니 시행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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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노후 전기차의 조기 폐차를 유도하는 거다. 노후 전기차의 BMS는 현재 제품들보다 제어기능이 약하다. 몇몇 전기차는 업그레이드도 못한다. 최근 2~3년 사이에 전기차의 기술력이 빠르게 진화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노후 전기차의 폐차도 지원할 필요가 있다. 그러면 전기차 화재사고의 빈도를 줄일 수 있다.
셋째, 배터리셀 전수 CT검사다. 배터리셀을 제조할 때 엑스레이로 찍어서 불량셀을 사전에 선별해 위험을 낮추자는 거다. 배터리셀 불량에서 기인하는 화재는 크게 두가지 원인으로 추정된다. 하나는 제작사의 제조 결함, 또 하나는 전기차주의 거친 운행으로 인한 충격이다. 이런 측면에서 3D CT검사를 도입하면 제조 결함은 확실히 제거할 수 있다.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 수준의 관련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강점도 있다.
이 세가지만 제대로 현실화해도 '전기차 포비아'를 덜어낼 수 있다. 지금처럼 '피해자만 있고 가해자는 없는' 화재사고가 더 이상 일어나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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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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