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2.24 (화)

다시 만난 (그들의) 세계 [한승훈 칼럼]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겨레

12·3 내란사태로 탄핵소추된 윤석열 대통령.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겨레

한승훈 |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종교학)



‘종교와 반란’은 필자의 주요 연구 테마 가운데 하나다. 이것은 기독교나 불교가 국가에 반란을 일으킨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물론 그런 사례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제도화된 종교집단들은 지배체제와 유착하는 편이 여러모로 유리하다. 이때의 ‘종교’란 물질적 현실과 초자연적인 영역 모두와 관련된 인간의 세계 인식을 말한다. 여기에는 인간이 세계를 경험하는 방식이나 사회적 관계를 맺는 법, 가치 판단이나 행위를 결정하는 규범 등이 포함된다는 점에서 ‘세계관’이나 ‘우주론’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 자신들이 믿고 있는 세상에 대한 인식이 현실의 체제와 일치하지 않을 때, 사람들은 환상 속의 세계로 도피하거나, 폭력적인 방식으로라도 세상을 ‘교정’하려고 한다.



대통령이 군대를 동원하여 의회를 공격하였다. 그러나 한국의 시민들은 맨몸으로 분연히 일어나 폭력적인 친위 쿠데타를 좌절시키고 내란 우두머리와 그 수하들을 심판하고 있다. 국회에서 탄핵이 가결되던 순간, 여의도를 가득 채운 시민들이 눈물과 환희를 담아 부른 “다시 만난 세계”와 함께 모든 것은 제자리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전세계 사람들은 21세기 동아시아의 대표적인 민주주의 국가에서 일어난 이 비현실적인 사태에 처음에는 경악했고, 이제는 찬탄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이야기는 오직 ‘우리’의 우주, 즉 현대를 살고 있는 대다수 지구인의 상식 속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상식이란 그저 대다수의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는 인식이라는 의미만이 아니다. 그것은 합리적이며, 공감하기 쉽고, 교육, 언론 등 제도적인 기반으로 뒷받침되는 세계다. 그러나 이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번 사태를 경험하는 이들도 있다. 내란 이후 이어진 여러 여론조사들에 의하면, 대통령 지지율은 집권 이후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으나 여전히 10%를 웃돌고 있다. 이것은 ‘종북 반국가 세력’이 체제 전복을 노리고 있고, 부정선거를 통해 의회를 장악한 ‘범죄자’들이 국가를 마비시키고 있으며, 무력을 동원해서라도 그들을 처단해야 한다는 윤석열의 광기에 찬 발언에 동조하는 사람이 한국인 가운데 열에 하나는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다시 세계관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그것은 상징들로 구성되어 있지만, 옳고 그름에 대한 윤리적 판단, 좋고 싫음에 대한 미적 판단, 세상을 인식하는 방법이나 감정적인 반응까지 결정한다는 점에서 ‘작동하는 상징들의 체계’다. 그것은 공동체가 공유하는 역사적 경험이나 의사소통 과정에서 형성되는 사회적 실체이기도 하다. 그러나 하나의 사회 내에서 여러개의 세계관이 공존하는 경우도 있다. 개인이 속한 종교집단, 계층, 하위문화에 따라서 똑같은 물질적 현실이라도 전혀 다른 방식으로 경험될 수 있는 것이다.



근대 국민국가는 보통교육과 매스미디어를 통해 세계관을 일정 수준까지 표준화함으로써 성립될 수 있었다. 그러나 한국 사회의 급속한 변동, 그리고 최근의 미디어 환경 변화는 일부 한국인들의 마음속에 하나의 대안적인 우주를 창조했다. 이에 의하면, 우리의 체제는 정치, 문화, 경제 등 모든 영역에서 ‘북한 공산 세력’의 침범을 받고 있고, 인권, 자유, 평등의 확대에 대한 요구는 그들의 준동에 의한 것이다. 따라서 이 종말론적 상황은 초법적인 권력을 통해서라도 타파되어야만 한다. 이것은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에 정확히 반대되는 사고방식이지만 그 세계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스스로가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한다고 믿고 있다. 오랜 군사 독재 시절의 훈육을 통해 몸에 새겨지고, 개인화된 영상매체를 통해 재생산되고 있는 이 우주론은 정치적 반대 세력에 대한 증오, 의회정치에 대한 불신,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로 현실화된다. 만약 국군통수권자이자 행정부 수반이 이 ‘종교’를 믿는다면, 그것은 총을 든 공수부대나 국회의원 체포조의 형태로 물질화할 수도 있다.



물론 이 세계관은 완전히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것은 지난 세기 한국인을 지배했던 식민제국과 독재국가의 세속종교와 대단히 닮아 있다. 역사적 소멸의 운명에 처해 있었던 그들의 세계는 급진화된 사적 폭력의 형태로 부흥을 시도하고 있다. 과거에 그것은 억압적인 체제를 유지하는 힘이었지만, 이제는 공격과 수비가 바뀌었다. 오늘날 시민들의 피로 구축한 자유롭고 민주적인 세상을 수호하기 위해서는 이 이질적인 세계의 침투를 막아야 한다. 처단되어야 할 것은 전공의들이 아니라 반역자이고, 척결되어야 할 것은 의회가 아니라 반역자를 비호하고 있는 위헌 정당이다.



▶▶한겨레는 함께 민주주의를 지키겠습니다 [한겨레후원]

▶▶실시간 뉴스, ‘한겨레 텔레그램 뉴스봇’과 함께!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