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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3 (월)

[장세정의 시선]'뺄셈 정치' 끝에 계엄 악수, 벼랑 끝에 선 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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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장세정 논설위원


12·3 비상계엄 선포의 불법성을 수사하는 공조수사본부가 지난 20일 윤석열 대통령에게 2차 출석요구서를 보냈다. 국회의 탄핵소추안 가결(14일)에 이어 내란 수괴 및 직권남용 혐의로 크리스마스 당일 조사받으라는 통보를 받은 것이다. 앞서 지난 18일 공수처의 1차 출석요구에 응하지 않았기에 이번에도 출석은 미지수다. 지난 18일 만 64세 생일이던 윤 대통령이 생애 최악의 성탄 선물을 받아든 모양새다.

직무정지 상태로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에 사실상 유폐(幽閉)된 윤 대통령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모든 것을 걸었을 계엄 도박이 미숙한 일처리로 무산됐다며 통탄하고 있을까, 아니면 부정 선거 세력들을 모두 잡아들여 싹 다 정리하려던 자신의 깊은 뜻을 헤아려 주지 못한다고 국민을 원망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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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11일 윤석열 대통령은 필리핀과 싱가포르 국빈 방문 및 라오스 아세안 정상회의를 마치고 귀국했다. 윤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공군 1호기에서 손을 꼭잡고 내려오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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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은 지난 7일 대국민 담화에서 "계엄 선포와 관련해 법적·정치적 책임을 회피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것을 실천해야 한다. 찬탄(贊彈)과 반탄(反彈)으로 국민이 반쪽씩 갈라져 추운 거리에 내몰렸으니 일말의 책임감을 느낀다면 조사에 성실히 임하는 것이 도리다. 아울러 틈나는 대로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른 경위를 하나씩 곱씹으며 통렬한 자성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탄핵과 내란 수사 직면한 대통령

보수 내부와 갈등하다 비극 자초

덧셈 정치만이 대한민국 사는 길

국민을 실망시킨 문재인 정부의 정권 재창출을 막고 지난 2022년 5월 취임할 때만 하더라도 윤 대통령은 호기로웠다. 대선은 0.73%포인트 차이의 박빙 승리였지만, 그해 6월 둘째 주 지지율은 53%로 최고치를 기록하며 6·1 지방 선거에서 압승했다. 2017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으로 지리멸렬했던 보수 세력은 불과 5년 만에 재정비해 권토중래(捲土重來)에 성공했다.

박근혜 탄핵 이후 비주류로 전락한 보수 세력은 문 정부의 일방통행 폭주에 맞선 '검찰총장 윤석열'이라는 정치 신상품을 내걸었다. 윤석열 후보는 꾀돌이 이준석과 김종인의 선거 전략 도움을 받고, 막판에 중도 안철수와의 단일화로 대선 승리 드라마를 썼다. 하지만 뜻밖의 승리에 도취하고 자만한 때문인지 얼마 못 가서 윤 정부는 내리막길로 들어섰고, 끝내 탄핵 비극을 피하지 못했다. 실패의 원인은 자신에 맞선다고 보수 진영 내부 주요 정치인들조차 포용하지 못하고 찍어낸 윤 대통령의 뺄셈 정치에서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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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21일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 용산 대통령실 파인그라스에서 당시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 면담 하고 있다. 윤-한 갈등은 끝내 봉합되지 못했고 윤 대통령 탄핵 사태로 파국을 맞았다.[대통령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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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선거 승리 한 달 뒤인 2022년 7월 국민의힘 윤리위원회는 윤 대통령과 티격태격하던 이준석 당 대표에게 당원권 정지 6개월의 징계 처분을 했다. 이준석은 4·10 총선을 앞두고 국민의힘을 탈당하며 등을 돌렸다. 윤 대통령이 여당을 쥐락펴락하는 바람에 국민의힘은 지난 2년 반 동안 주호영·정진석·한동훈 등 비대위 체제가 이어졌다. 비정상의 일상화였다.

대선 후보 단일화 때 공동정부를 약속해놓고 집권 이후 정작 안철수를 철저히 배제했다. 안철수는 얼마나 울분이 쌓였는지 공개적으로 탄핵 지지를 선언하고 보란 듯이 국회 본회의장을 지켰다. 대통령과 여당의 갈등은 총선 과정에서도 여과 없이 노출됐고, 국민은 여당을 보며 안정감보다 불안감을 느껴야 했다. 아슬아슬 수차례 충돌한 '윤·한'은 결국 탄핵으로 갈라섰다. 비상 포고령 발령 상황에서 한동훈 체포·사살 루머가 그냥 나온 것이 아닌듯하다.

뺄셈 정치로 고립무원(孤立無援)에 빠진 상황에서 윤 대통령은 계엄 선포를 통해 사면초가(四面楚歌) 궁지를 일거에 탈출하고 싶었던 것 같다. 사사건건 국정 발목을 잡아 온 이재명의 민주당과 한동훈을 한 방에 날려버리고 싶었을 듯하다. 하지만 비민주적이고 시대착오적인 망상일 뿐이다. 일각에서 유튜브 알고리즘과 알코올 중독을 탓하지만, 근본 문제는 민주주의와 자유를 제대로 체화하지 못한 낡은 불통 리더십 때문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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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1월 7일 윤석열 대통령이 대구 달성군 박근혜 전 대통령 사저를 방문해 함께 산책하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보수 진영이 배출한 두 대통령은 탄핵 사태를 직면한 공통점이 있다. [대통령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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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세력은 2017년 초 박근혜 탄핵 시점의 궤멸적 수준으로 되돌아간 듯하다. 폐족(廢族)이란 말이 나올 정도이니 당시보다 훨씬 더 엄혹하고 절망적 상황이다. 보수세력이 외치던 헌법 가치와 자유민주주의가 장례식을 치를 지경이란 탄식이 들린다.

보수는 이대로 절멸할 것인가. 거짓 보수가 죽어야 진짜 보수가 산다. 공정과 상식을 되살려야 한다. '내란 특검'이든 '김건희 특검'이든 정면으로 마주해야 한다. 내부 분열을 획책하며 자기 정치 잇속만 챙기려는 기회주의자들을 멀리해야 한다. 가짜 보수가 쓰레기통에 내던진 보수의 품격을 되살려 깨끗이 세탁해야 한다. 탄핵 열차가 출발하자 조기 대선이 거론된다. 이승만 대통령이 옳았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뺄셈의 정치를 덧셈의 정치로 바꿔야 한다. 그래야 대한민국이 산다.

장세정 논설위원 zh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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