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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3 (월)

[詩想과 세상]뜨거운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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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뜨거운 것을 쓰다 쏟았습니다 미안해요 부치진 못할 것 같군요 미지근한 건 문학이 아니야, 말하는 어른 여자를 만난 저녁 주꾸미를 먹었습니다 뛰지 않는 심장과 뛰려는 심장 사이에 사랑을 접어놓고

마음이란 뭘까요 호호 불어 먹고 싶은 마음이란 어디에 간직해야 하는 걸까요

당신은 오늘 내 손을 꼭 잡고 귓속에 뜨거운 말을 부어주었습니다
그것을 안고 멀리 갈 거예요
당신이 나를 처음 본 날,
쉬운 퀴즈를 풀듯 나를 맞혀버렸다는 걸 기억할 거예요

당신이 좋아서
다가가고 싶지가 않아요

겨울 숲에
봄 아닌, 다른 계절이 오면

그때 갈게요

박연준(1980~)


차가운 말보다는 뜨거운 말을 좋아한다. 그러나 혀는 어느새 차가운 말을 쏟아낸다. 당신에게 “뜨거운 것을 쓰다가 쏟”아버렸기에 부치지 못했다. 시인은 부치지도 못할 편지를 다시 쓰면서 “미지근한 건 문학이 아니야”라고 말했던 “어른 여자”를 생각한다. 문학은 뜨거운 건가. 식지 않는 건가. 그렇지. 문학은 뜨거운 거지. 때로는 차가운 것이기도 하지. 미지근하면 사랑이 아닌 것처럼. 주꾸미를 먹으며 시인은 “뛰지 않는 심장과 뛰려는 심장 사이에 사랑을 접어놓고” 그것들을 간직해야 할 마음이 무엇인지, 어디에 있는지 생각한다.

시인은 “당신이 오늘” “귓속에 뜨거운 말을 부어주”면 “그것을 안고 멀리 갈” 거라고 한다. “당신이 좋아서 다가가고 싶지” 않은 마음, 멀리 가는 마음, 그곳은 겨울 숲이다. 그 숲에서 “봄 아닌, 다른 계절이 오면” 당신에게 갈 수 있을 거라고, 그때는 서로의 귓속에 뜨거운 말을 쏟아붓자고 속삭인다.

이설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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