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간다고 한다.
돌이켜 보면 확실히 그렇다. 내게 다가오는 크리스마스가 32번째라는 데서 위화감이 느껴진다. 새해 계획은 뭘 세울지 고민하다 잠시 미뤄 뒀는데 1년이 다 갔다. 매번 힘겹게 써온 칼럼도 벌써 마지막 글이다.
수학적으로 당연한 얘기이긴 하다. 서른이 넘은 내게 1년은 지나온 인생의 3%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열 살 때 내겐 1년이 내 인생의 10분의 1에 달했다. 흘러가는 시간의 무게감이 점점 가벼워지는 셈이다.
확실히 열 살 남짓 했을 땐 올해와 내년의 삶이 완전히 다르게 느껴졌다. 새해가 되면 새로운 1년에 대한 기대감이 컸다.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을 기대했고, 봄꽃이 피는 것과 낙엽이 지는 걸 기다렸다.
30대에 들어선 지금은 모든 게 흐릿해졌다. 특별한 일이 아니라면 작년에 있었던 일인지, 재작년인지 종종 헷갈린다.
따지고 보면 꼭 무게감 때문은 아닌 것 같다. 우선 내 삶이 최근 들어 매년 크게 다를 바 없던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같은 일상이 반복되면서 시간의 흐름에 무감각해졌다. 한국에서 초등학교 3학년과 4학년의 하루는 크게 다르지만, 32세와 33세는 대개 비슷하다.
둘째로 최근 몇 달 사이 나는 매년 짧아지던 나의 시간이 크게 길어졌음을 느끼고 있다. 완벽한 반례다. 아이가 태어난 지 이제 70일 조금 넘었는데 갓 태어난 아이를 품에 안았던 때가 벌써 까마득하게 느껴지는 걸 보면 분명 그렇다.
퇴근이 늦는 날이면 항상 너무 아쉽다. 아이는 금방 잠에 드는데, 나와 눈을 맞추고 있는 시간이 너무 짧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 아이는 무섭도록 빠르게 성장한다. 지난달에 찍은 사진과 이달이 다르다. 어제와 오늘도 다르다. 매일 충분히 눈에 담지 못한 아이의 오늘이 항상 아쉽다.
잠들어 있는 아이를 보면서 감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따분하고 비슷하게 반복되던 하루하루가 날마다 조금씩 다른 특별함을 갖게 됐기 때문이다. 초점도 잘 못 맞추던 아이가 나를 보고 방긋 웃어줄 땐 세상 부러울 게 없다.
하루하루가 소중해진 뒤에 시간이 길어진 셈이다. 아이를 갖자는 얘기를 하는 건 아니다. 아이가 없던 시절에도 매일 조금 변화를 주면서 살았다면 좀 더 기억에 남는 나날이 되지 않았을까 한다.
일상에서 사소한 도전을 했으면, 조금 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으면 작년과 재작년이 뚜렷하게 다른 형태로 기억되지 않았을까. 하루, 일주일, 한 달, 1년을 그저 똑같이 보내온 세월이 아쉽게 느껴진다.
시간을 늘리는 법을 깨달은 요즘 다시 새해를 기대한다. 내년엔 또 아이가 어떻게 성장하고 달라질지, 언제쯤 아빠라고 불러줄지 기다려진다. 봄꽃이 피는 것과 낙엽이 지는 걸 같이 바라볼 날을 그린다. 아이가 산타 할아버지한테 소원을 빌 내 서른세 번째 크리스마스를 상상하면 벌써 신이 난다.
다가오는 새해에는 정말로 일상에 변화를 줘보는 건 어떨까. 물론 변화가 만드는 불확실성은 평온한 일상을 흔들어 놓는다. 하지만 흔들어진 일상을 걸어가는 게 매번 걷던 길을 걷는 것보다 훨씬 재밌는 것도 사실이다.
[최근도 증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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