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덕노의 중식삼림(中食森林)] 미국의 중국 잡채 찹수이 열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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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에는 한 나라의 사회 정치 경제가 은연중에 녹아 있다. 중국 음식도 예외가 아닌데 세계로 퍼진 중국 음식 속에는 현지의 문화와 역사까지 곁들어 있다. 지구촌 중국반점의 요리를 통해 중국 본색을 알아보고 세상을 들여다본다.
미국을 대표하는 거리 음식은 햄버거이고 그중에서도 선두 주자는 역시 맥도널드다. 1955년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1호점이 문을 열었고 이후 미국 전역으로 퍼졌다.
그러면 햄버거가 퍼지기 전, 미국에는 어떤 거리 음식, 패스트푸드가 유행했을까?
엉뚱하게도 1920년대 미국을 장악했던 거리 음식은 미국식 중국 음식인 찹수이(Chop Suey)였다. 이 무렵 미국에는 '찹수이 광풍(Chop Suey Craze)'이 불면서 지금의 햄버거에 버금가는 대표 거리 음식이 됐다.
찹수이(Chop Suey). 출처 : 바이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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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어바인대학교 역사학 교수가 쓴 『미국의 중국 음식, 찹수이(Chop Suey, USA: The Story of Chinese Food in America)』에 나오는 내용이다. 일부 학자의 주장일 수도 있지만 당시 미국 상황을 보면 고개를 끄덕일 만한 부분도 많다.
찹수이는 미국에서 발달한 중국 잡채다. 하지만 우리 짜장면이나 짬뽕처럼 정작 중국에는 없는 미국식 중국 음식이다. 양배추, 셀러리를 비롯한 채소를 계란과 돼지고기, 닭고기, 새우 등과 함께 볶아서 만든다. 물론 원래는 이런 채소, 저런 채소, 잡다한 채소만을 모아 볶았던 음식이다. 일종의 잡탕 채소볶음으로 문자 그대로 잡채(雜菜)다. 그러니 우리나라 잡채와는 개념이 다르다.
중국 잡채 찹수이. 출처 : 바이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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찹수이라는 이름도 한자로는 섞을 잡(雜) 부술 쇄(碎) 자를 써서 부스러기 채소를 섞어서 볶았다는 뜻이다. 북경어로는 자수이지만 광둥어로 발음해 찹수이가 됐다. 바꿔 말해 미국에 중국식 잡탕 채소볶음을 퍼트린 것은 광동성 출신의 노동자들이었다.
찹수이가 미국에 전해진 과정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지만 미국식 볶음면인 초우메인, 비빔면인 로메인과 마찬가지로 19세기 초 미국 대륙횡단철도 건설 노무자, 골드러시 때 금광 노동자로 들어온 막일꾼 쿠리(苦力)들이 먹었던 음식에서 시작됐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하지만 미국에서 찹수이가 대중화된 배경을 설명하기 위한 또 다른 기원설도 있다. 청나라 말 고위 대신이었던 이홍장 덕분에 만들어졌고 퍼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홍장 찹수이라고도 한다.
이홍장. 출처 : 바이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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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6년 이홍장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 미국 정계와 외교가에서 환대를 받았다. 이에 대한 화답으로 미국 주요 인사를 초청해 파티를 열었다. 이때 수행한 요리사가 미국인과 중국인의 입맛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요리로 만든 것이 다양한 채소와 고기를 함께 볶아낸 잡채 요리였다. 이 요리를 맛본 미국 인사가 요리 이름을 물었고 이홍장이 찹수이라고 대답했다. 이 연회를 계기로 이국적인 요리 맛에 반한 미국인들이 찹수이를 다시 찾으면서 미국에 찹수이 열풍이 불었다는 것이다.
이 밖에도 다양한 설이 있지만 핵심은 이홍장 때문에 찹수이가 만들어졌고 그의 외교활동 덕분에 미국에 퍼졌다는 것이다. 아마 화교 내지는 중국계 미국인들이 찹수이의 뿌리를 막노동자들의 싸구려 음식이 아닌 고위층 인사가 만든 고급 요리로 격상시키고 싶은 마음에서 만들어 낸 엉터리 기원설의 느낌이 짙다.
하지만 어쨌든 여기서 주목해 볼 부분이 있다. 이홍장 덕분은 아니지만 어바인 대학교 사학과 교수가 책에서 강조한 것처럼 1920년대 미국에서 찹수이가 전국적으로, 그리고 대중적으로 크게 유행을 했던 것은 분명하다. 곳곳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일례로 '마지막 잎새'로 유명한 미국 소설가 오 헨리의 단편 소설을 읽어 보면 다양한 작품에 찹수이가 등장한다. 대중적인 거리 음식이지만 싸구려 빵 조각보다는 조금은 음식 같은 음식으로 그려져 있다.
뿐만 아니라 당시 활동했던 유명한 재즈 가수 루이 암스트롱이 '코네트 찹수이(Cornet Chop Suey)'라는 곡을 만들어 연주했고 1920년대 여성 잡지에서는 경쟁적으로 찹수이 레시피를 게재했다고 한다. 심지어 미 육군의 급식 메뉴에도 찹수이가 올랐을 정도였다.
지금은 많이 쇠락했지만 뉴욕 차이나타운에 수백 개의 찹수이 전문점이 들어섰고 주말마다 수천 명의 뉴요커들이 찹수이를 먹으러 이곳을 찾았다는 기록도 있다.
뉴욕 차이나타운. 출처 : 게티이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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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 미국에 왜 이토록 찹수이 열풍이 불었을까? 여러 분석이 있지만 아직 햄버거 같은 패스트푸드가 등장하기 전, 단순한 빵 조각 대신 즉석에서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그나마 요리다운 따뜻한 음식이었기 때문에 서민들로부터 환영받았다는 것이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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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영구 기자 so5what@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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