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방송인 김어준씨, 윤석열 대통령. 연합뉴스, 대통령실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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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권일 | 미디어사회학자
전 정치인 유시민씨는 얼마 전 어느 토론에 나와 “나는 유튜브나 포털 사이트에서 원하는 기사만 찾아보지 기성 언론은 보지 않는다”며 “유튜브 보는 사람을 과소평가하지 마세요”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특히 기성 언론 다 무시하고 유튜브에 몰입하는 사람을 예의주시해야 한다. 그는 보고 싶은 뉴스만 보다가 현실을 오판하게 되고, 급기야 내란을 일으킬 수 있다.
내란 수괴 윤석열씨는 군대를 동원해 국회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장악하려 했을 뿐 아니라, 여론조사 꽃(방송인 김어준씨가 설립한 여론조사기관)을 확보·봉쇄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우선 아닌 밤중에 홍두깨 같은 일을 겪은 김어준씨에게 심심한 위로를 전한다. 여러 보도로 알려졌듯 윤석열씨는 부정선거 음모론을 진실로 믿고 있었고, 그래서 김어준씨의 회사를 노린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지난 10여년간 부정선거 음모론의 대표주자를 딱 하나만 꼽으라면 바로 김어준씨 아니던가.
과거 김씨는 18대 대선 개표 조작설, 이른바 ‘케이(K)값’ 음모론을 제기했다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그뿐만 아니다. 그는 황우석 사태, 세월호 참사, 정봉주 성추행 사건 등등에서 수많은 거짓과 음모론을 유포했고, 결국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음에도 제대로 된 사과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어지간한 언론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과시하며 활동하고 있다(박권일, ‘서사과잉: 김어준씨의 경우’ 참고). 이에 더해, 이번 내란 사태에서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가 김어준씨의 ‘북한군 위장 암살조 가동’ 주장을 충분한 검증도 없이 공개해 시민단체들이 거세게 비판하기도 했다. 김씨가 지금까지 대한민국 공론장에 끼친 해악을 모두 열거하자면 책 한권으로도 부족할 지경이다.
오해하면 곤란하다. 이건 김씨의 잘못이 내란 수괴와 동급이란 주장이 아니며, 윤석열 음모론의 원인이 김어준 음모론이라는 얘기도 아니다. 문제는 김어준과 윤석열이 공유하는 세계관, 이른바 ‘어준석열 유니버스’다. 그것은 무엇인가? 표면적 공통점은 음모론이다. 일반적으로 음모론이란, ‘권력자가 어떤 목적을 위해 비밀리에 모종의 사건을 계획·실행했음을 폭로하는 서사’를 가리킨다. 앞서 언급한 부정선거 음모론이 대표적 예다.
음모의 주체는 주로 강대한 권력집단이지만, 아닌 경우도 있다. 예컨대 여성, 페미니스트들을 겨냥한 ‘집게손가락’ 음모론이다. 광고, 게임 이미지에 등장하는 집게손가락 모양이 페미니스트가 숨겨둔 “남성 혐오 표현”이라는 주장인데, 사실로 밝혀진 적이 단 한번도 없음에도 수년째 반복되고 있다. 2023년 불거진 게임 업계 집게손가락 소동에서 정치인 이준석씨는 “볼 것도 없이 (남성혐오를 상징하는) 메갈(리아) 손가락이고 의도된 바가 있다고 본다”고 발언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논란이 된 이미지를 40대 남성이 그린 것으로 밝혀졌음에도 이씨는 아무런 사과도 해명도 하지 않았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저런 음모론의 생산과 소비를 끝없이 부추기는 사회적 조건이다. 여기엔 기성 언론과 정치에 대한 낮은 신뢰, 유튜브 같은 ‘게이트 키핑’ 없는 뉴미디어와 허위 정보의 확산 등 다양한 요인들이 있을 터이다. 내가 주목하는 건 음모론이 유독 ‘권력 쏠림’이 심한 사회에서 활개 친다는 점이다. ‘큰판’ 한번만 이기면 모든 게 뒤집히는 시스템에서는, 공정성을 확보하기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기보다 어렵다. 승자의 보상이 크면 클수록 편법·반칙의 유인도 그만큼 커지기 때문이다. 한국의 입시 비리가 결코 근절되지 않는 것도, 선거 음모론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도 근본적으로 여기에 있다. 승자가 모든 걸 독차지하고 패자들은 나락에 떨어져 모욕당하는 시스템에서 경쟁은 곧 전쟁이 되고, 공정성 시비와 음모론이 창궐하며, ‘강자 선망’과 ‘약자 혐오’도 만연한다. 나는 ‘한국의 능력주의’(박권일, 이데아)에서 그런 문화를 ‘힘 숭배’라는 말로 요약한 바 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어준석열들’에 대한 비판과 책임 묻기는 필수다. 그러나 그것만으론 부족하다. 대통령 비상계엄권을 비롯하여 권한과 자원이 과집중되는 승자독식 체제를 해체하지 않으면, ‘어준석열들’은 영원히 다른 얼굴로 회귀할 것이다. 시스템을 바꾼다는 것은 제도를 바꾸는 일과 함께 우리 삶의 방식을 성찰하고 혁신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 수라장 뒤에 다시 만나는 세계는 부디 다르게 만나는 세계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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