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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0 (금)

[투데이 窓]즐거운 마음이 건강한 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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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이상욱 서울아산병원 방사선종양학과 교수


우리의 몸과 정신은 매우 긴밀히 연결돼있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예를 들면 무서운 생각이 들면 소름이 돋고, 신맛이 강한 레몬을 한입 베어 문다고 생각하면 입에는 침이 고인다. 우리나라에서는 '밥 먹을 때는 개도 건드리지 않는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마음이 몸에 영향을 많이 준다고 생각했다. 의학적으로도 불편한 상황에서 밥을 먹을 먹으면 소화효소도 안 나오고 위장도 리듬도 떨어진다.

따라서 건강한 정신이 건강한 신체를 유지하는데 중요하다. 역으로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드는 것이다. 이런 평범한 진리를 실험으로 증명한 과학자가 바로 이반 파블로프다. 최근 그가 불쌍한 개를 실험용으로 너무 많이 사용했다는 이유로 그의 학문적 업적에 의문을 제기하는 글도 많다. 그 말도 틀린 말은 아니다. 1924년 파블로프의 실험실에는 큰 홍수가 생겨 많은 개들이 익사했다. 당시 살아남은 개들은 홍수에 대한 충격과 공포로 밥을 잘 먹으려 하지 않았고, 소리·빛 등 밥을 먹을 때 준 자극에 침을 분비하는 조건반사가 일어나지 않았다. 정신적 충격이 컷던 탓에 조건반사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똑같은 사람도 자란 환경이나 교육에 의해 다른 사람이 된다. 심각한 과거경험은 현재의 인간성을 만드는데 기여하게 된다. 마치 파블로프의 실험실에서 홍수를 경험한 개들처럼 말이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더라도 이렇게 한번 형성된 인간성은 고정되는 경향성이 있다. 미국에서 대공항을 겪었거나 우리나라에서 IMF(국제통화기금) 사태를 맞았던 사람들의 경우 독특한 삶의 자세 같은 것이 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필자도 어릴 적 반공 교육으로 북한과의 전쟁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무기나 전쟁에 관심이 많은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암진단을 받은 사람들의 과거를 자세히 분석해보면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은 경우들이 종종 있다. 사업이 망했거나, 극복하기 힘든 인간적인 배신을 당했거나, 모함 좌절 등 우여 곡절을 경험한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이 있다. 정신과 몸은 연결돼있기 때문에 정신이 심각하게 아프게 되면 스트레스 저항 호르몬이 과다 분비되고 여러가지 사이토카인(면역세포로부터 분비되는 단백질 면역조절제)이 분비되면서 면역체계의 혼란을 유발한다. 비 정상적인 면역기능 상태에서 우연히 암세포가 발생하면 면역기능이 암세포를 제거하지 못하고 암이 생길 수 있다. 이렇게 심각한 스트레스는 암뿐만 아니고 다른 종류의 병도 발생하게 할 수 있다. 가장 흔한 병이 위궤양 같은 것이다. 사람이 너무 억울한 일을 당하게 되면 피를 토한다고 하는데 이유는 스트레스 저항 호르몬이 많이 나와 위염이 생길 수 있고 과다한 위 출혈이 일어날 수 있다.

이제 2024년도 저물어 가고 있다. 어떤 사람은 좋은 일이 생겨 매우 행복한 마음이겠지만 사업실패나 승진누락, 입시 실패, 구직 실패 등으로 괴로운 사람이 상대적으로 더 많을 것이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할까. 괴롭더라도 활기찬 캐롤을 듣거나 즐거운 예능프로그램과 영화를 보면서 웃다 보면 즐거운 마음이 생겨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건강을 유지하게 될 것이다. 행동이 정신을 규정하기 때문이다.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 중 하나는 암을 진단받거나, 암이 재발되거나, 성공가능성이 있는 치료법이 없는 암환자들일 것이다. 이런 경우 환자나 보호자들이 어떻게 해야 할지 물어볼 때면 의사로서 난감하다. 하지만 요즘은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이라 하더라도 너무 멀리 보지 말고 당장 해야 할 일을 생각하며 희망을 갖자고 이야기해준다. 만약 환자를 절망에 빠트리면 환자의 몸도 망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는 크리스마스 때 떠날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을 가졌던 사람들이 크리스마스가 지나도 나갈 수 없게 되자 많은 사망자들이 나왔다고 한다.

이상욱 서울아산병원 방사선종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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