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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대회 성균관대 교수는 우리 고전(古典)을 새롭게 번역한 완정본(完整本)을 출간해 온 학자입니다. ‘택리지’ ‘연경’ ‘만오만필’ 같은 책들이 그의 손을 통해 새로운 모습으로 세상에 나왔습니다. 정조 임금이 노론의 거두 심환지에게 썼던 비밀 편지를 번역해 공개한 사람도 바로 그였습니다.
그가 이 복잡하고 골치 아픈 2024년 말에 새로 내놓은 책은 처음엔 좀 의아했습니다. ‘명심보감(明心寶鑑)’이라니! 많은 사람들이 그냥 ‘한문 책’, 고리타분한 도덕서이자 수양서로 생각하는 이 ‘뻔한 책’을 왜? 수십년 전 홍일식 고려대 총장이 ‘명심보감’을 신입생 교양필수과목으로 정하려 하자 학교엔 신입생 명의로 이런 플래카드가 붙기도 했습니다. ‘한자 몇 글자 더 그린다고 인성이 좋아지나요?’ 사실 그건 그냥 한자는 배우기 싫다는 항변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안 교수는 “사실 우리 대부분은 지금껏 명심보감을 제대로 읽은 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번에 낸 책이야말로 명심보감의 첫 완정본이라는 얘기죠. 우리나라에만 200종 넘는 번역본이 나왔는데, 단 7종(그중 한 번역본의 역자는 한학자 김병조였는데 ‘지구를 떠나거라’의 그 김병조 맞습니다)을 빼고는 모두 조선시대 광해군 때 만들어진 축약본을 번역했다는 겁니다. 안 교수가 보기엔 이 7종에도 오류가 많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원본에 없는 구절을 마음대로 넣거나 뒤섞은 무단 증보·해체한 판본과 번역본도 상당수 있었습니다. 안 교수의 책은 ‘태공왈(太公曰)’이라는 원문이 강태공의 말이 아니라 당나라 아동 교육서 ‘태공가교’에서 인용한 부분이라는 등, 기존 번역의 오류를 바로잡았을 뿐 아니라 책의 원형을 복원하고 인용한 원문을 일일이 찾아낸 데 이어 자세한 해설까지 썼습니다. 그래서 ‘완정본’이라 한 것입니다.
명심보감의 '완정본'을 낸 성균관대 안대회 문과대학장, 2024. 12. 10. 성대 퇴계인문관 연구실/ 조인원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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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를 분명히 바로잡은 것도 있었습니다. 일부에서 고려 충렬왕 때 문신 추적이 명심보감의 저자라고 나오는 것은 잘못 알려진 것이고, 원말명초의 중국 무명 학자 범입본(范立本)이 진짜 저자라는 얘깁니다.
범입본은 그저 여러 고전에서 대충 명언을 뽑아낸 것이 아니었습니다. 삶을 살아가며 당장 현실에서 활용할 수 있는 매우 실용적인 문장을 찾아내 쉽고 강렬한 문장으로 다듬었습니다. 명심보감에는 ‘인생은 실전이고 세상은 냉혹한 것’이란 가치관이 깃들어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동양의 ‘철학적 처세서’이자 ‘자기계발서’였던 것입니다. 안 교수는 “범입본이야말로 14세기 동양의 데일 카네기나 스티븐 커비였다”고까지 말했습니다. 반면 세상을 따뜻하게 봤던 레오 버스카글리아 같은 사람과는 결이 달랐다는 것입니다.
명심보감의 몇 구절을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聞人過失, 如聞父母之名, 耳可得聞, 口不可得言也.
문인과실, 여문부모지명, 이가득문, 구불가득언야.
남의 허물을 들으면 부모의 이름을 들은 듯이 귀로만 듣고 입으로는 말하지 말라.
이런 사회생활의 조언이 들어있는 건 물론이고…
幼而不學, 老無所知; 春若不耕, 秋無所望; 寅若不起, 日無所辦.
유이불학, 노무소지: 춘약불경, 추무소망; 인약불기, 일무소판.
어려서 배우지 않으면 늙어서 아는 것이 없고, 봄에 논밭 갈지 않으면 가을에 바랄 것이 없으며, 새벽에 일어나지 않으면 그날 하루 한 일이 없다.
이렇게 나이 들어 읽을수록 무릎을 치게 되는 인생의 가르침도 들어 있습니다.
안 교수에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혹시,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기 전에 진작 읽었더라면 좋았을 구절도 있습니까?”
그는 아예 페이지를 여러 곳 적은 포스트잇을 사진을 촬영해 보내 줬습니다. 한번 하나하나 살펴 보겠습니다. 모두 안대회 교수의 번역입니다.
<5장 정기편(正己篇) 104조>
短莫短於苟德, 孤莫孤於自恃.
단막단어구덕, 고막고어자시.
(여기서 德은 得과 의미가 같음)
얻지 말아야 할 것을 얻은 것보다 더 짧게 가는 것은 없고, 제 능력을 믿고 오만한 자보다 더 외로운 사람은 없다.
<7장 존심편(存心篇) 1조>
坐密室, 如通衢; 馭寸心, 如六馬, 可免過.
좌밀실, 여통구; 어촌심, 여육마, 가면과.
밀실에 앉아서도 사통팔달 큰 거리에 있듯이 처신하고, 한 치의 마음을 제어하되 썩은 새끼줄로 여섯 마리 말을 몰 듯 조심한다면 잘못에서 벗어날 수 있다.
<8장 계성편(戒性篇) 2조>
忍一時之氣, 免百日之憂.
인일시지기, 면백일지우.
한때의 끓는 혈기를 참으면 백날 겪을 근심에서 벗어난다.
<8장 계성편 7조>
天子不忍, 國空虛; 諸侯不忍, 喪其軀; 官吏不忍, 刑法誅; 兄弟不忍, 各分居; 夫妻不忍, 令子孤; 朋友不忍, 情意疏; 自身不忍, 患不除.
천자불인, 국공허; 제후불인, 상기구; 관리불인, 형법주; 형제불인, 각분거; 부처불인, 영자고; 붕우불인, 정의소; 자신불인, 환불제.
천자가 참지 않으면 나라가 비고, 제후가 참지 않으면 몸을 잃는다. 관리가 참지 않으면 형벌로 죽임을 당하고, 형제가 참지 않으면 뿔뿔이 흩어진다. 부부가 참지 않으면 자식이 고아가 되고, 친구끼리 참지 않으면 사이가 서먹서먹해진다. 사람은 누구나 참지 않으면 우환이 끊이지 않는다.
<11장 성심편(省心篇) 47조>
若聽一面說, 便見相離別.
약청일면설, 편견상이별.
한쪽 말만 들으면 다른 편과는 갈라서게 된다.
<11장 성심편 72조>
自意得其勢, 無風可動搖.
자의득기세, 무풍가동요.
큰 세력을 얻은 사람은 그 어떤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다고 착각한다.
<11장 성심편 214조>
德微而位尊, 智小而謀大, 無禍者鮮矣.
덕미이존위, 지소이모대, 무화자선의.
덕이 없음에도 지위가 높으면, 또는 지혜가 부족함에도 큰일을 꾀하면 화를 입지 않을 사람이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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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석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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