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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0 (금)

[박성희의 커피하우스] 대한민국, 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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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계엄 선포 다음 날, 학과 사무실에서 연락이 왔다. 뉴욕타임스 서울사무실에서 내 연락처를 물어왔는데, 휴대폰 번호는 개인 정보라 이메일 주소를 대신 알려줬다고 했다. 학교 행사 관계로 뉴욕타임스 인사들과 안면이 있던 터라 미디어 전공 교수인 나와 인터뷰를 원했던 것 같다. 질문의 요지는 이번 계엄령에 대한 미디어의 반응과 한국 내 언론 자유의 향방 관련이었다. 나는 전화와 이메일을 통해 한국의 언론 자유는 굳건하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취지의 답변을 했다.

답변이 너무 간단했는지, 뉴욕타임스 기자는 한국의 언론이 이런 상황에서도 취재 노력을 멈출 것을 거부하는 눈에 띌 만한(stood out to you) 사례가 있는지 재차 질문했다. 그 후속 질문을 나는 그날 밤에서야 이메일을 열어보고 알았다. 종일 이런저런 잡무로 뛰어다니다 늦게 귀가했기 때문이다. 나는 질문이 좀 생소하고 어색해서 한참 생각하다가 이번 사태 중 언론 자유는 위축되지 않았다는 엉성한 답변으로 갈음했다. 그러면서 “이게 왜 궁금하지?”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계엄’이라는 단어의 뜻에 충실하면 국가가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으며 그 안에는 언론 자유도 포함된다. 그걸 생각하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질문이긴 하다. 그러나 한국처럼 인터넷으로 얽히고 신문과 방송이 전국에 포진한 나라의 ‘말길’을 막는 게 가능할지, 얼른 상상이 가지 않았다. 자유는 불가역적 성질이 있어 사람들이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한국의 언론은 많은 문제를 안고 있지만, 자유는 굳건하고 오래갈 것이라고 믿는 근거다.

물론 뉴욕타임스는 놀랄 만도 하다. 2020년 홍콩 보안법이 통과되자 언론 자유의 위축을 우려해 이듬해 아시아 사무소를 홍콩에서 서울로 옮기는 큰 이사를 한 뉴욕타임스의 입장에서, 당시 아시아 여러 도시를 검토하다 최종적으로 ‘높은 언론 자유 수준(high level of press freedom)’을 이유로 서울을 선택했는데, 일껏 홍콩의 보안법을 피해 온 곳에서 계엄령을 맞다니. 그 황당함과 놀람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이번 사태를 겪으며 내가 특이하다고 느낀 건 건 따로 있다. 그건 대통령이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계엄을 선포하고 탄핵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는 풍파 속에서도 내 주변의 일상이 흐트러지지 않고 사람들도 대단히 차분해 보였다는 점이다. 계엄 사태가 워낙 조속히 종식된 덕분이기도 하지만, 어차피 지속될 분위기도 아니었다. 계엄 다음 날 만난 동료 교수와는 기말 업무를 이야기하거나 “이건 또 뭐래요?”라고 가볍게 지나가고, 가게와 상인들은 세상에 아랑곳하지 않고 여전히 바쁘며, 내가 관여하는 여러 단체도 예정된 행사를 진행했다. 주말에 찾은 재래시장에는 제철 상품이 넘쳐 났으며, 시장을 누비는 외국인 관광객도 여전했다.

어디에도 ‘비상사태’는 없었다. 자기의 위기를 국가의 위기로 착각한 대통령과, 자기의 위기를 정당의 위기로 치환시키는 재주가 비상한 야당 대표, 그 사이에서 나라 꼴이 엉망이라 바로잡아야겠다는 쪽과, 나라 꼴이 엉망이기를 바라거나 그래서 그게 자기들에게 유리하도록 이용하려는 정치인들이 있을 뿐이다. 외신들은 한국을 불안하게 바라보지만, 우리는 불안하지 않다. 불안한 사람은 이 사태를 정치적 지렛대로 활용하지 못해 안달 난 사람들뿐, 일반 국민은 비교적 태연하게 관망 중이다.

그건 아마도 우리의 낙천적인 국민성과 그동안의 학습 효과, 거기에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정치적 효능감이 보태진 결과는 아닐까 짐작해본다. 나폴레옹은 자기 사전에 ‘불가능’이라는 단어가 없다고 했지만, 대한민국 정치 사전에는 없는 단어가 없다. 지난 100여 년간 우리는 왕정과 식민지배와 군사독재와 내각제와 민주화를 겪었고, 민주주의의 큰집을 자임하는 미국도 내지 못한 여성 대통령과 고졸 대통령을 비롯해 별의별 지도자를 다 겪어본 우리에게 이번 사태는 별로 새로울 것도 없다. 계엄을 포함해 그보다 더 엄혹한 상황도 겪어봤으며, 대통령 탄핵도 이번이 세 번째다. 물론 얼마간의 혼란이 뒤따를 것이고, 어쩌면 조기 대선도 치러야 할지 모르고, 경제에도 좋지 못한 영향이 있겠지만, 우리의 멘털을 흔들 정도는 아니다. 윈스턴 처칠이 그랬던가. “성공이란 열정을 잃지 않고 실패를 거듭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우리는 많은 실패를 겪었지만, 그건 다시 일어나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한다는 뜻이기에, 그 또한 능력이다.

이번 사태로 우방국 사이에서 한국을 ‘믿을 수 없는 나라’로 본다는 애석한 분석이 있다. 우리에게 믿을 수 없는 몇몇 정치인이 있는 건 인정. 그러나 한국 국민은 그들보다 튼튼하고 상식적이며 신뢰할 만하다고 그들 국가에 전해주고 싶다. 우리의 이런 정치적 역동성을 부러워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그들에게 계속 부러워하라고 말하고 싶다. 북한은 탄핵 직후 ‘괴뢰 한국땅 아비규환’이라고 논평하고, 중국은 이런 한국의 사태를 빗대 사회주의의 우월성을 강조했다는 보도를 보았다. 그들에게도 확실하게 해두고 싶다. 이 혼란과 불확실이 아무리 지속되어도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와 맞바꿀 성질의 것이 아니니 꿈 깨라고. 그리고 내가 엉성하게 답해준 뉴욕타임스 쪽에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밖에서 바라보는 것만큼 한국 사회는 혼란스럽지 않으며, 사람도 언론도 너무 자유로워서 오히려 문제라고. 무엇보다 우리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외국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대한민국은 괜찮습니다.”(그러니 놀러오시고 투자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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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희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교수·한국미래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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