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 여성들의 응원봉 새 집회” 분석은 안일
그동안 늘 정치사회 고관심층으로 참여해와
광장의 외침 소리에 귀 기울이는 사회 되길
정소연 객원논설위원·변호사·SF작가 |
이번 탄핵 촉구 집회에는 젊은 여성이 많았다는 말이 어딜 가나 빠지지 않는다. 현장에서 체감하기로도 여성이 눈에 띄게 많았고, 서울시 생활 인구 공공데이터 분석 결과에서도 20대 여성의 비중이 가장 높았다. ‘MZ세대 여성들의 응원봉 집회’라는 분석까지 보인다.
광장에서 여성의 존재를 온전히 인지한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새삼스럽다는 생각도 떨칠 수 없다.
집회와 시위는 필연적으로 약자의 활동이다. 그리고 세계경제포럼 세계성평등지수 순위가 최하위권인 우리나라에서, 여성은 언제나 차별의 주체가 아니라 대상이었고, 사회적 소수자로서 행동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최근 10여 년만 돌아보아도 2016년 5월 ‘강남역 10번 출구 여성혐오 살인사건 피해자 추모 집회’, 2016년부터 꾸준히 이어진 ‘낙태죄 폐지’ 시위, 2018년 하반기 내내 이어졌던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 올해의 ‘동덕여대 공학 전환 반대 시위’ 같은 젊은 여성들이 주체가 되었던 여러 집회와 시위가 바로 떠오른다.
그러나 수천 명에서 수만 명이 모여 거리를 가득 메웠던 이런 활동을 이 글에서 처음 안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여성의 목소리는 자주 무시당한다. 언론이 제대로 보도하지 않고, 사회가 제대로 듣지 않을 때가 많다. 혐오의 오락화가 심각한 사회문제가 된 요즘은 페미니즘적인 발언을 한 여성이 조롱당하거나 혐오범죄의 표적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더더욱, 우리 사회의 젊은 여성들은 광장에 나가야 생각이 비슷한 여성 동지들을 만나는 연대의 경험을 할 수 있고, 혼자일 때보다 그나마 보호받는다는 사실을 학습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의 젊은 여성들만의 일도 아니다. 수십 년 전 민주화의 선봉에 함께 섰던 여성들, 호주제 폐지를 위해 분투했던 여성들이 있었다. 2008년 촛불집회, 2014년 세월호 추모 집회, 2016년 탄핵 집회에도 여성들이 있었다. 아주 많았다. 그러나 이들의 참여는 대개 무시당하다가, 도저히 무시할 수 없을 만큼 가시화되면 그제야 ‘발견’되었다. 젊은 여성들은 주체적 참여자로 인식되지 못하고 몇 년이 지나면 잊혔다가 그다음 정치적 사건이 발생하면 “이번에는 젊은 여성이 많은 점이 놀랍다”는 새삼스러운 칭찬을 받으며 기특한 존재가 되기를 반복해 왔다.
‘MZ 여성들의 응원봉 집회’라는 분석이 개운치 않은 것도 이 지점이다. 이 감탄에는 젊은 여성은 정치에 관심이 없으리라는 편견이 깔려 있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그러나 어떤 통계를 보아도 한국 사회의 젊은 여성은 언제나 정치사회 고관심층이다. 주요 선거 투표율 또한 또래 남성들보다 현저히 높다. 젊은 여성들은 항상 한 명의 동등한 시민으로서 주체적으로 정치에 참여해 왔다. 이들은 특정 정당이나 조직에 동원된 것도, 잘생긴 정치인의 팬클럽인 것도 아니다. 응원봉을 들고 나왔을 뿐이지 정말 즐겁고 재미있어 집회에 나온 어린애들도 아니다.
그리고 젊은 여성들은 광장에서 나이가 든다.
우리 사회는 ‘유모차 부대’의 유모차만 기억하고, 그 유모차를 밀던 젊은 엄마가 있었다는 사실을 지운다. 2008년 촛불집회에 유모차 부대로 참가한 여성이 30세였다고 가정하면, 16년이 지난 이번 집회에서 그는 46세가 되었을 것이다. 2003년 호주제 폐지 시위에 참여했던 20세 여대생은 올해 41세다. 1987년 6월 민주화 시위에 참여했던 25세 여성은 환갑이 넘었으리라. 이들은 모두 그날 여의도에 함께 있었다.
젊은 여성들을 신기해하는 태도는 여성의 정치적 참여에 대한 차별적 시선, 주로 남성에게 고령자의 대표성이나 정치적 권위와 기회를 부여하는 우리 사회 전반의 성차별과도 결국 연결된다. 집회와 시위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주로 들린다는 것은 젊은 여성의 목소리가 들린다는 말과 같지 않다. 25세 여성의 목소리가 55세가 된다고 소위 남자 목소리로 바뀌지 않는다. 실제로 이번 집회 참가자는 전체적으로 여성이 많았고, 참여자 성비는 50대 이상에서야 역전되나 그 차이는 크지 않았다. 그럼에도 젊은 여성들의 참가에 놀라고 감탄하는 중장년 남성들이라는 구도에서 이번 집회를 분석하는 것은 안이하고 차별적이다.
그만들 신기해하라. 이제 젊은 여성들이 유독 정치 고관여층이 될 수밖에 없는 우리 사회의 오래된 불공정과 차별에 더 주목하라. 만약 미래 한국 정치사에 또 대규모 집회가 열린다면 그때는 그때의 젊은 여성들을 새롭게 발견하지 않아야 한다. 동등한 시민 누구도 비로소 발견되지 않아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응원봉 집회’가 우리, 기성세대에게 남긴 과제다.
정소연 객원논설위원·변호사·SF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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