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는 '정체성'을 둘러싼 형이상학적 논쟁을 불러일으킨 유명한 역설로, 근대 철학자인 홉스는 테세우스의 배에 대해 그 배를 배로 만드는 것은 '형상'이라고 언급한다. 원래의 형상, 즉 정체성을 유지한다면 배를 구성하고 있는 요소에 변화가 있더라도 그것은 테세우스의 배가 맞다는 주장이다.
과거 한국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있었다. 2008년 화재로 사라진 국보 1호 숭례문(남대문) 복원 당시 전소된 숭례문이 새롭게 복원된 뒤에도 여전히 '국보 1호' 지위를 유지하는 것이 맞느냐는 논란이 일었다. 당시 70%가 넘는 국민이 국보 1호 지위 유지에 찬성했고, 결국 문화재위원회 결정에 따라 숭례문은 2021년 지정 번호제도 폐지 전까지 국보 1호 지위를 유지하게 됐다. 구성 요소가 바뀌더라도 숭례문의 '정체성'은 유지된다는 암묵적 합의가 있었던 것이다.
정체성이란 그만큼 중요한 것이다. 국내 기술특례상장 바이오헬스 기업이 처한 현실을 빗대어 '정체성'의 중요성을 다시금 되새기고 싶다.
바이오 호황기라 불리는 지난 2019년부터 2021년까지 약 10곳에 달하는 바이오텍이 기술특례상장에 나섰다. 하지만 오늘, 대부분은 현재 관리종목 지정 위기에 놓였 있다.
본래 코스닥 상장사의 관리종목 지정 요건은 ▲매출 30억 원 미만 ▲최근 3년 내 2회 이상 법인세 비용 차감 전 계속사업 손실(법차손)이 자본의 50% 초과 등이다. 기술특례상장 기업은 매출 요건에 대해서는 5년, 법차손 요건에 대해서는 3년의 유예 기간이 주어진다. 관리종목 지정 유예 기간 제도를 통해 당장 눈에 보이는 매출 등 성과보다는 미래를 위한 연구개발(R&D)에 집중할 시간이 추가로 주어지는 셈이다.
문제는 이런 유예기간이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기업은 이달 말까지 해당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내년 3월 관리종목에 지정될 위기에 처했다는 점이다. 일부 기업은 추가 투자 유치나 CB 발행, 유상증자 등을 추진하고 있지만, 일부 기업은 매출 발생을 위해 본업과 무관한 신사업에 뛰어드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올해 3월 베이커리 업체인 '포베이커'를 인수한 셀리드가 대표적이다. 면역항암 치료백신 개발 기업인 셀리드는 포베이커 인수 후 이커머스 사업부를 신설해 냉동감자, 티슈브레드, 피스타치오 스프레드 등 신제품을 론칭했고 3분기 기준 법차손 비율 16%를 기록해 관리종목 지정 위기를 벗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셀리드처럼 신사업 운영에 성공한 사례는 그나마 상황이 나은 편이다. 지난해 법차손 요건을 만족하지 못해 관리종목에 지정된 펩타이드핵산(PNA) 플랫폼 기반 신약 개발 기업 올리패스는 민간임대아파트 241세대를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잔금 지급 기일을 내년 1월 이후로 미루며 신사업에 진출할 자금조차 부족하다는 사실만 드러났다.
바이오 기업은 아니지만 헬스케어, 진단기기 기업 등 유관 업계가 처한 현실도 마찬가지다.
국내 1호 디지털헬스케어 기술특례 상장사인 '라이프시맨틱스'는 경영권 매각 후 특례 상장 목적과 상관없는 '우주항공' 분야에 진출하기 시작했다. 코로나 시기 호황을 누렸던 휴마시스는 지난 3월 정기 주주총회에서 2차전지 소재 광물 생산업 진출 등을 사업목적에 추가하며 신사업 진출을 선언했다.
해당 기업이 앞으로 신사업에서 성공을 거두든 아니든 이들이 정작 본업인 신약 개발 등에서 멀어지는 현실은 안타깝다. 신사업 진출은 기업의 자유라지만, 상장 목적과 반대의 길로 향해 정체성마저 훼손하게 된다면 그것을 여전히 '테세우스의 배', 즉 기술특례 상장 바이오헬스 기업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한경주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책임연구원에 따르면 기술특례상장 바이오헬스 기업에서만 나타나는 특이한 현상 중 하나가 바로 상장 3년∼5년 차 사업연도에서 연구개발비 투자액이 감소한다는 것이다. 일반 상장 바이오헬스 기업이 오히려 같은 기간 R&D 투자액을 늘리는 것과 비교하면 현행 제도에 따른 부작용이라는 게 한 연구원의 진단이다.
즉 현행 기술특례 상장 기업의 상장유지 요건이 오히려 이들의 연구개발 투자를 줄이는 엉뚱한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테세우스의 배 역설은 지금 형이상학적 난제가 아니라 국내 기업이 처한 냉혹한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현행 요건을 재검토하고 적극적인 제도 개선에 나서야 하는 이유다.
이병현 기자 bott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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