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바 총리 "위대한 저널리스트" 애도
[서울=뉴시스]와타나베 쓰네요(渡?恒雄) 일본 요미우리신문그룹 본사 대표이사 주필이 19일 오전 2시 도쿄(東京)도 병원에서 폐렴으로 별세했다. 향년 98세. 사진은 일본 민영 TBS 보도 장면 갈무리. <사진캡처=일본 민영 TBS 뉴스>2024.12.19. *DB 및 재판매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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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김예진 기자 = 와타나베 쓰네오(渡?恒雄) 일본 요미우리신문그룹 본사 대표이사 주필이 19일 오전 2시 도쿄(東京)도 병원에서 폐렴으로 별세했다. 향년 98세.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그는 11월 말까지 정기적으로 회사로 출근했다. 간부 회의, 사론회의 등에 참석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달 들어 컨디션이 악화돼 병원에도 치료를 받았다. 숨지기 며칠 전에도 사설 원고를 훎어보며 점검하는 등 마지막까지 주필로서의 업무를 계속했다.
도쿄 출신인 그는 도쿄대를 졸업하고 1950년 요미우리신문에 입사했다. 미국 워싱턴지국장, 편집국 총무 겸 정치부장, 전무이사 주필 겸 논설위원장 등을 거쳐 1991년 대표이사 사장 주필로 취임했다.
이후 2002년 요미우리신문의 지주회사가 마련되면서 그룹 본사 대표이사 사장 겸 주필을 2년 가까이 역임했다. 이후 회장 주필을 거쳐 2016년부터 대표이사 주필을 맡아왔다.
그가 사장으로 재임하던 중이던 1994년 요미우리신문 발행 부수는 처음으로 1000만 부를 돌파했다. 2001년 1월 1031만91부 최고 부수도 달성했다.
보수 성향인 요미우리는 와나타베 대표가 신문의 논조를 중용이라는 현실적 시점에서 자유주의적 보수 노선을 확립했다고 평가했다.
또한 1994년 ‘헌법개정시안’을 발표해 자위력 유지, 환경권 신설, 헌법재판소 창설 등을 명기하며 그간 금기시됐던 헌법 논란에 큰 반향을 불렀다고 했다.
와타나베 대표는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根康弘) 전 총리,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전 총리 등과 친분도 두터워 정계는 물론 각 방면에서 강한 영향력도 가지고 있었다.
특히 그는 정치인의 태평양 전쟁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靖?) 신사 참배에 대해 비판한 인물로 알려졌다.
와타나베 대표는 2006년 진보 성향 아사히신문의 와카미야 요시부미(若宮啓文) 논설주간과의 대담에서 "야스쿠니 신사 본전 옆에 있는 그 유슈칸(遊就館)은 이상하다"고 지적했다. 유슈칸은 야스쿠니 신사 경내 전쟁박물관이다.
그는 "군국주의를 부추기고 예찬하는 전시품을 늘어놓은 박물관을 야스쿠니 신사가 경영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 곳에 총리가 참배하는 것은 이상하다"고 비판했다.
또 총리 재임 중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적 있는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 純一?) 전총리를 언급하며 "고이즈미 전 총리는 정치를 하고 있는 것이지 이데올로기 장사를 하는 게 아니다"고 비난했다. "국제 관계를 관장하고 있으니 야스쿠니 문제로 중국, 한국을 적으로 삼는 것은 이제 그만 좀 해달라고 말하고 싶다"고 꼬집었다.
요미우리신문은 사설을 통해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 반대 입장을 밝힌 바 있으나, 사설과는 비교할 수 없는 분명한 행보라고 아사히는 평했다.
와타나베 대표의 별세에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총리는 총리 관저에서 기자들에게 "위대한 저널리스트였다. 명복을 빈다"고 밝혔다.
이시바 총리는 와타나베 대표의 "자민당과 파벌"을 읽었다며 "자민당이란 무엇인가, 파벌이란 무엇인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에 대해 많은 시사가 풍부한 책이었다"고 평가했다. "당이나 민주주의 본연의 자세, 일본의 평화국가로서의 걸음에 대해 좀 더 가르쳐 주었으면 했다"고 애도의 뜻을 표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aci2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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