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 널 이 느낌 이대로, 그려 왔던 헤매임의 끝, 이 세상 속에서 반복되는, 슬픔 이젠 안녕~.”
지난 7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선 생경한 풍경이 연출됐다. 대통령 탄핵을 외치며 촛불집회에 나선 100만 군중이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를 함께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어둠 속에서도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있고, 반복되는 슬픔의 끝에서 새로운 길을 함께 열어갈 수 있다’는 내용의 이 곡은 ‘2세대 아이돌 시대’를 연 소녀시대의 데뷔곡이다. 심지어 촛불 대신 알록달록한 응원봉을 들고 시위에 참여한 사람들도 많았다.
보통 시위 현장을 떠올리면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로 시작하는 ‘임을 위한 행진곡’이 생각나기 마련이다. 이 곡은 5·18 광주 민주화 운동 중 희생된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과 노동운동가 박기순의 영혼결혼식을 위해 1981년에 작곡됐다. 단조풍의 선율과 함께 떠나간 동지에 대한 애뜻함 및 그의 유지를 따르자는 가사는 결연한 의지를 표현하는 데 효과적이었다. 그래서인지 광화문이나 서울역에서 이 노래가 들리며 빨간 깃발이 나부끼면 으레 ‘누가 시위를 하나보다’라고 떠올리게 된다.
‘임을 위한 행진곡’에 비하면 ‘다시 만난 세계’는 집회를 위한 민중가요로 쓰기엔 다소 밝고 명랑하다. 곡 자체에 정치적 메시지가 전혀 없는 데다 곡 중간에 조성이 단조로 바뀌긴 하지만 전반적으론 밝고 따뜻한 느낌이다. 그럼에도 시위 현장에서 이 곡이 어색하지 않게 들리는 것은 일찌감치 이 곡을 시위 현장에서 들어봤기 때문이리라.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당하기 직전인 지난 2016년 이화여대 학생들이 평생교육 단과대학 설립을 두고 총장 퇴진을 외칠 때 이 곡을 불렀고, 2020년엔 태국 반정부 시위 때도 이 곡이 울려 퍼졌다.
사실 찬찬히 뜯어보면 왜 이 곡이 시위 현장에서 선호되는지 짐작할 수 있다. 내 앞에 펼쳐진 많은 갈래의 거친 길과 알 수 없는 미래, 그럼에도 서로를 향한 신뢰와 사랑으로 반복되는 슬픔을 헤쳐 나가자는 메시지는 대통령의 비상계엄 조치로 시작된 어지러운 정치 상황, 그리고 이를 바로잡고자 광장으로 나온 시민들로 점철되는 현 상황과 묘하게 맞닿아 있다. 비단 이제 막 가요계에 들어선 신인 걸그룹 만의 사정이 아닌 것이다.
‘다시 만난 세계’뿐 아니라 ‘2024 집회 플레이리스트’ 오른 지드래곤의 ‘삐딱하게’, 싸이의 ‘챔피언’, 데이식스의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 등도 광장에서 그 의미가 확장되며, 새 시대를 위한 희망의 노래로 재탄생했다. 이에 이 노래를 잘 아는 2030세대 뿐 아니라 집에서 해당 곡을 예습해 온 5060세대도 집회 현장에서 스스럼없이 따라 부른다.
안타깝게도 21세기 대한민국은 BTS, 블랙핑크 등으로 이어진 ‘K-팝’의 문화강국에서 하루아침에 계엄령이 선포되는 정치 후진국으로 전락했다. 그럼에도 불법적 계엄령을 저지하기 위해, 혹은 ‘대통령 탄핵’이라는 국민적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 국회의사당 앞으로 모여든 수 십만명의 시민들을 보면 아직 우리에겐 희망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이 민중가요 대신 K-팝을 부르든, 촛불 대신 응원봉을 들면 어떠한가. 역사적 현장에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그저 충분하다.
신소연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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