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 금융지원 강화 잰걸음…가계대출도 문턱 낮출듯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안이 가결되면서 우리나라 경제의 불확실성이 확대되자 주 자금 공급원인 은행들이 진화에 나서기로 한 모습이다.
정치적 리스크가 확대되면서 경기 침체 가속화 전망이 나오자, 은행들이 경제주체들의 '숨통'을 틔워주기 위한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은행들은 그간 역대급 수익을 내면서 체력을 다져온 데다가, 경제주체들의 부실은 은행의 생존과도 연결돼 있는 만큼 현재 상황을 면밀하게 살피면서 할 수 있는 조치를 적극 실행한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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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사(乙巳)년…가계도, 중소기업도, 대기업도 모두 힘들다
최근 국제통화기금(IMF)는 우리나라의 내년 경제성장률을 2.0%로 전망했다. 종전에는 2.2%였는데, 이를 0.2%포인트 하향한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역시 내년 우리나라의 경제 성장률을 2.2%에서 2.1%로 0.1%포인트 하향 조정했다. 국제기관들이 우리나라의 내년 경제상황이 녹록지 않을 것이라고 보고 있는 셈이다.
한국은행의 입장은 더욱 부정적이다. 앞서 한국은행은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종전 2.1%에서 1.9%로 낮췄다. 연간 경제성장률이 2%를 하회한다는 것인데, 그만큼 우리나라의 상황이 어두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주목할 점은 이러한 전망이 윤석렬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탄핵안 가결과 같은 정치적인 리스크가 발생하기 이전에 나왔다는 점이다. 금융권 안팎에서는 이번 사태로 인해 우리나라가 애초 예상보다 더욱 고된 한 해를 보내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최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현안질의에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의 발언이 이같은 우려에 힘을 보탠다. 이 총재는 "올해 4분기 성장률을 0.4% 정도로 보고 연간 2.2%를 예상했었다"라며 "애초 전망보다 조금 내려갈 가능성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했다. 정치적 리스크가 우리나라 경제를 갉아먹고 있다는 얘기다.
주요 기관들이 우리나라 경제에 대한 우려를 나타내는 것처럼 실제 경제주체들 역시 쉽지 않은 내년을 보낼 것을 우려하고 있는 모습이다. 정치적 리스크 확대로 우리나라에 대한 대외 신인도, 투자 매력도가 하락하면서 기업들이 제때 자금을 공급받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한 수출기업 관계자는 "내년 미국 정권이 바뀌면 관세 확대 등으로 쉽지 않은 한 해가 될 것으로 예상됐는데 탄핵으로 인한 우리나라 기업에 대한 투자 매력도가 떨어지면서 자금 조달 부분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라며 "전체적으로 모든 상황이 좋지 않아 비용을 절감하는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특히 중소기업, 소상공인의 경우는 상황이 더욱 좋지 않다. 이들이 숨통을 돌리기 위해서는 내수회복이라는 카드가 필요한데 당장은 내수가 회복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어서다. 산업군이 휘청이는 만큼 가계 역시 쉽지 않을 한해를 보낼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속도조절했던 가계·기업대출 '기지개'?
이같은 상황에서 경제 주체들에게 자금을 공급하는 역할을 하는 은행들 역시 이들이 부실로 내몰리지 않도록 하는 방안을 고심중인 모습이다. 비 올 때 우산을 뺏지 않는다는 말을 실천하겠다는 의지다.
BIS(국제결제은행)비율 등을 맞추기 위해 속도 조절에 나섰던 기업금융을 다시금 활성화 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기업들의 상황이 안좋아지면 내어준 대출에 대한 부실 가능성도 함께 높아질 수 있다. 리스크 관리를 위해서는 반대로 대출을 더욱 조여야 한다. 다만 이 경우 일시적 자금 애로에 처한 경쟁력 있는 기업들의 동아줄을 끊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만큼, 자금을 내어주는 데 있어 보다 적극적으로 나선다는 얘기다.
은행 한 고위 관계자는 "우리나라의 불확실성이 확대되면서 기업들이 채권 혹은 주식시장에서 대출을 받기 어려워질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라며 "금융당국 역시 기업 자금애로에 대한 우려를 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럴 때 은행들이 자기만의 안위를 생각한다면 우리나라 전체 경제가 위협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기업금융에 대한 전략을 보다 세밀히 짜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조만간 주요 은행들은 금융당국과 함께 회의를 열어 현재 기업금융상황을 점검하고 앞으로의 대응 방향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우리나라 경제의 중추로 자리잡은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에 대한 지원도 더욱 강화할 예정이다. 코로나19 대유행 당시 진행됐던 대출 원리금 만기 연장 및 이자 상환 유예 등 단순히 돈을 늦게 받는것에 더해 은행이 이들에 대한 재무 상황을 점검해 빚을 갚아나갈 수 있는 체력을 다져주는 프로그램 등을 확대 운영하기로 했다.
은행 관계자는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에 대한 우려가 가장 크다"라며 "은행에서 이들의 재무 상황을 점검하고 대출 금리를 낮춰주는 등 재기를 돕는 프로그램을 서민금융진흥원 등과 연계해 전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같은 프로그램을 활용하면 급한불을 끄는 것은 물론 장기적인 상환 계획도 세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가계부채 문제로 인해 문을 닫았던 가계대출 억제책 역시 소폭 완화할 예정이다. 신한은행과 하나은행은 일부 주택담보대출, 전세대출,신용대출 등의 조건을 완화하거나 판매를 재개하기로 결정했다. 우리은행 역시 조만간 판매 중단했던 가계대출 중 일부 상품군에 대한 판매를 다시 시작한다.
다른 은행 한 관계자는 "다주택 보유 등 투기 목적이 강한 대출 외에는 대부분 대출에 대한 허들을 모두 낮출 예정"이라며 "경제상황이 녹록지 않을때 가계대출의 문턱을 높이면 가계의 위기가 더욱 심화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게다가 이들이 부실화 할 경우 은행의 수익성 등에도 악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리스크 관리에만 지나치게 초점을 맞춰서도 안된다"고 덧붙였다.
그는 "최근 몇 년 사이 은행들이 막대한 이자수익을 바탕으로 높은 순익을 내며 비판의 여론이 컸던 부분이 있다"라며 "상생의 키워드에 맞춰 어려울때 은행들이 적극 나서는 모습을 보일 필요도 있다고 본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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