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병호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부원장 |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으로 국제적 긴장감이 고조됨에 따라 독자적 무기체계 획득 능력이 주목받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2022년부터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대통령은 지속해서 서방에 F-16 전투기 지원을 요청했으나, 29개월이 지난 올해 8월에야 첫 전투기를 인도받을 수 있었다. 우크라이나와 인접한 폴란드는 막대한 국방예산을 투자하여 K9 자주포 등 우리나라의 우수한 무기체계에 대한 구매계약을 체결했다. 이런 사례들은 자주국방을 위해서는 독자적 무기체계가 절실하며, 이를 위한 연구개발과 양산 기반이 꼭 필요함을 시사한다.
우리나라는 50년 이상의 연구개발을 통해 다수의 무기체계를 개발해 해외에서 도입한 무기체계를 대체해 왔다. 1970년 국방과학연구소가 창설된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는 소총조차 개발하기 쉽지 않은 환경이었다. 오늘날 적 항공기를 요격하기 위해 도입한 미국산 호크 미사일은 국방과학연구소가 개발한 천궁으로 대체되었으며, 탄도미사일 요격 능력이 보강된 천궁-II는 한국형 미사일 방어체계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우리 손으로 개발한 4.5세대 초음속 전투기 KF-21은 시험비행을 마치고 올해 7월부터 양산에 들어갔다.
지난 50년간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독자적 무기체계 국산화를 위해 풀어야 할 문제가 많이 남아있다. 첫째는 핵심 기술의 해외 의존이다. 천궁 개발 과정에는 러시아와의 기술협력이 있었으며, KF-21의 일부 핵심 기술은 미국으로부터 이전받았다. 둘째는 핵심 구성품의 수입 의존이다. 방위사업청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완성 장비 전체의 국산화율은 86.1%지만, 항공 분야 국산화율은 50% 대에 머물고 있다. 국내에서 건조되는 함정에 탑재되는 엔진 등 핵심 구성품도 수입 의존도가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입한 구성품을 적용한 무기체계를 제3국에 수출할 경우 구성품 생산국 및 원 제작사의 허가 문제가 방산 수출의 걸림돌이 된다. 요즘처럼 글로벌 공급망이 불안한 시기에는 주요 구성품의 확보 여부가 자주국방에 큰 위협요인이 되기도 한다. 셋째는 민·군 협력의 한계다. 최근 무기체계의 기술적 고도화에 따라 민간의 우수한 기술을 국방 분야에 적용해야 함에도, 기술보호 측면을 강조하느라 민·군 상호교류와 R&D 역량 결집이 어려운 실정이다.
과거 우리나라는 선진국의 무기를 구매하는 고객의 입장에서 절충교역의 형태로 관련 기술을 함께 이전받았지만, 이제 우리나라는 더이상 글로벌 방산시장의 고객이 아니다. 주요국들은 이미 우리나라를 중요한 경쟁자로 인식하고 있다. K-방산의 주가가 높아지고 수출이 늘어날수록 경쟁국들의 견제는 더욱 치열해지고, 기술이전을 기반으로 무기를 개발하던 과거의 전략은 지속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정부는 '2023~2027년 방위산업발전기본계획'을 통해 '국방과학기술 7대 강국, 4대 방산수출국가'라는 목표를 제시했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해외 기술 의존도를 낮추고 기술 자립화를 이뤄야 한다. 지금까지는 경제성 부족이나 사업 실패 위험 등 다양한 이유로 항공 엔진과 같은 고비용·고위험 기술 분야에 대한 연구개발을 미루어 왔으나, 이제는 첨단 국방 기술에 대한 도전적 연구를 추진해야 하는 시점이다.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첨단 기술을 확보하고 이를 독자적 무기체계로 환류하기 위해서는 실패위험이 높지만 보상이 큰 연구, 로켓·발사체 등 거대과학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장기적인 인적·물적 자원 투자와 더불어 민·군의 역량을 한곳으로 모으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 민간의 우수한 기술들이 국방의 첨단화에 기여할 수 있도록 민·군간 협력으로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는 과제를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추진해야 한다. 우리 힘으로 우리 국민을 지키고, 나아가 글로벌 방산시장에서도 K-방산의 힘으로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국방과학기술 강국, 대한민국을 그려본다.
손병호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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