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 이연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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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5월 케냐에 다녀왔다. 구호 단체 세이브더칠드런의 앰배서더 자격으로 모자 보건 사업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기부로 도움을 받는 사람들과 도움을 주는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었다. 또 우리가 왜 이역만리 아동을 도와야 하는지 이해하고 싶었다.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는 동아프리카의 중심 도시다. 케냐는 아프리카에서 내전을 경험하지 않은 몇 안 되는 국가다. 하지만 독재, 쿠데타, 내전 등을 겪는 소말리아, 남수단, 우간다 등이 인접해 있다. 정치적 불안과 빈곤으로 난민이 많이 발생하는 국가다. 이들이 나이로비로 몰려들어 슬럼가를 이루고 있었다.
슬럼가는 입구부터 흙길이었다. 사람들이 낡은 축구 유니폼이나 작동할 것 같지 않은 라디오를 팔고 있었다. 이곳은 엄청난 인구가 사는 판자촌이었다. 유리는 단열이 되지 않고 관리하기 어려워 모든 집은 슬레이트와 진흙으로 되어 있었다. 집 안까지 흙바닥이어서 먼지가 날렸고 빛이 들어오지 않아 습했다. 집 안에 외부 공기가 그대로 들어왔고 전기가 없어서 대낮에도 어두웠다. 상하수도가 분리되지 않았고 재래식 화장실을 수십 가구가 같이 썼으며 길에는 음식 쓰레기와 동물 사체가 널려 있었다. 걸을 수 있는 아이는 모두 거리로 나와 쓰레기 더미와 함께 하루를 보냈다.
악취를 풍기는 주택가 옆 개울은 자주 범람했다. 얼마 전에도 홍수가 나서 많은 사람이 집을 잃었다고 했다. 게다가 열악한 환경일수록 거주비 효율이 떨어진다. 난민은 집을 소유할 수 없고 판자촌이라도 월세를 내야 한다. 온 가족이 벌 수 있는 돈은 한 달에 3만원 남짓이지만, 한 끼니가 2000원 정도라 집세를 내면 남는 돈이 없었다. 위생을 개선하는 데 투자할 여력이 없었지만 출산율은 한국보다 최고 네 배 높았다. 덕분에 슬럼가는 더러운 환경에서 그대로 지내는 아이들로 가득했다.
이곳에서 다양한 사연을 들었다. 린다는 병원까지 가는 차비가 부담스러워서 흙바닥에서 아이를 낳았다. 홀리의 두 아이는 영양실조였다. 팔뚝 둘레로 영양실조를 진단하는 뮤악 밴드를 나는 이들에게 처음 사용해 보았다. 멜라니의 세 살 아이는 태변 흡인으로 발달 장애를 얻었다. 남편이 없는 멜라니는 일을 그만두고 유동식만 먹는 아이만 돌보고 있었다. 아이는 뇌수종이 의심되었지만 MRI 비용이 없어 진단조차 되지 않았다. 이베트는 자궁 외 임신이었지만 치료받지 못한 채 일하다가 하혈하며 쓰러졌다. 수술 후 살아났지만 앞으로 2년 수입을 모두 병원에 지불해야 한다. 엘리는 홍수로 집을 잃고 천장이 열린 교회 건물에서 가족과 생활했는데 첫째 아이가 생후 일주일에 신생아 황달로 사망했다. 한국이라면 그 어떤 아이도 죽지 않는 질환이다. 엘리의 집이 홍수로 철거될 때, 첫째 아이를 감싸주려던 포대를 챙겨 왔다고 했다. 뱃속에서 두 달째 자라고 있는 생명이 태어나면 감싸준다고 했다.
나는 아동 구호 팀과 동행해서 이들을 만났다. 사실 나 스스로도 단체를 후원하는 이유를 찾고 싶었다. 일단 한국에 있는 나는 이들의 사정을 파악하고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물을 수가 없다. 하지만 현지 사업장은 직접 여성과 신생아를 돕고 모자보건센터를 지원하고 있었다. 케냐는 상대적으로 안정된 환경에 슬럼가가 공존해서 아동 구호 팀이 활동하기 최적이었다. 이들은 업으로 아동 권리에 기반하여 아동을 돕고 있었다.
이 업무에 참여하면서 깨달았다. 우리에게는 선의가 있고 이타심으로 남을 돕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 또 선진 시민으로서 국적에 관계없이 권리를 지닌 주체인 아동을 도와야 한다. 하지만 철학과 이념을 가지고 조직을 꾸려서 아동을 돕는 일을 개인이 할 수 없다. 단체 활동은 전문가들이 토의한 방향으로 진행되며 기록을 남기면서 효율적으로 집행된다. 구호 단체는 우리의 이타심을 최선의 방식으로 대신하는 곳이었다. 후원의 의미를 발견하고 확신을 얻은 것이 이번 참여의 진정한 소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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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인 이대 목동병원 응급의학과 교수·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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