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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9 (목)

더 이상의 '경제 기적'은 없는가: 한국·독일 평행이론 [마켓톡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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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연 기자]

한 나라의 경제는 어느 정도까지 성장할 수 있을까. 산업혁명으로 영국의 국내총생산(GDP)이 1760~1820년 60년간 3배 정도 늘어났지만, 한국의 GDP는 1953년 이후 70년간 무려 5만 배 이상 늘어났다. 한강의 기적은 독일 라인강의 기적, 일본의 경제 기적을 압도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경제 기적의 시대는 저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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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독일은 제조업과 수출을 무기로 경제 기적을 일궈냈다. 구미공단 전경. [사진 |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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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최대 부국이었던 영국과 20세기 최악의 빈국이었던 한국을 단순 비교할 순 없다. 그래서 한국 경제의 성장은 더욱 돋보인다. 한국은행이 18일 발표한 국민계정 2차 개편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 명목 GDP는 1953년 477억원에서 2023년 2401조원으로 5만336배 증가했다.

■ 한강과 라인강=제2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 기적'이 발현한 나라는 한국‧독일‧일본 3개국에 불과하다. 이중 한국의 '한강의 기적'은 성장 속도와 기울기 면에서 다른 두 나라를 압도한다. 한국 경제는 1954~1959년 연평균 5.9%씩, 1960~1969년 연평균 8.7%씩, 1970~1979년에는 무려 연평균 10.6%씩 성장했다.

독일은 '라인강의 기적'으로 1948~1972년 연평균 5.7% 성장했는데, 같은 기간 일본은 연평균 8.2% 성장했다. 일본 GDP 성장률도 1960년대에 연평균 10.0%를 기록했지만, 1970년대에는 평균 6.1%로, 1980년대과 1990년대엔 각각 4.0%, 1%대로 추락했다. 계획경제인 중국 정도가 수치상으로는 '한강의 기적'에 가장 근접해 있다. 중국의 연평균 성장률은 1990년대에 9.5%, 2000년대에 9.7%였다.

■ 기적의 원천=독일과 한국을 중심으로 경제 기적의 원인을 살펴보면 3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째, 이전소득이라는 마중물이 존재했다. 독일은 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이 유럽에 제공한 마셜 플랜(Marshall Plan) 원조금의 10% 정도인 14억4800만 달러를 지원받았다.

우리나라는 한일 양국의 '청구권·경제협력에 관한 협정'을 근거로 1966~1975년 무상지원 3억달러, 장기저리 2억달러를 수령했다. 이런 대일청구권자금의 GDP 기여도는 이 기간 연 1.04~1.61%였다.

둘째, 두 나라는 공히 경공업에서 중후장대산업까지 노동집약적인 제조업 위주 성장 정책을 썼다. 완제품 무게가 가벼운 섬유·고무·플라스틱 등이 경공업이고, 철강·화학·조선처럼 완제품이 무거운 제품을 중후장대산업이라고 한다. 2020년 기준 세계 주요 국가의 GDP 대비 제조업 비중을 보면 우리나라가 27.8%, 독일이 21.6%로 일본의 20.8%나 미국의 11.6%보다 높다.

셋째, 이렇게 만든 제품을 세계 시장에 수출해 성장했다. 1980년대 시장에 몰아친 '세계화'의 혜택을 받은 셈이다. 우리나라의 GDP 대비 수출입 비율은 1970년 36.0%에서 2022년 현재 102.0%로 높아졌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세계화의 4가지 기본으로 무역과 거래, 자본과 투자, 이주와 이동, 지식의 보급을 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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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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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기적=한국과 독일의 공통적인 부작용도 있다. 제조업은 저렴한 임금근로자를 양산한다. 세계화의 부메랑은 더 독하다. 저임금 근로자를 따라가는 수출 대기업들은 생산기지를 해외로 이전하고, 이는 결국 경제적 불평등을 악화시킨다.

독일은 2010년대 이후 중산층 감소가 심각한 사회문제가 됐다. 구舊 서독 지역 저임금 근로자 비율은 1995년 11.9%에서 2015년 19.7%로 커졌고, 구 동독 지역의 저임금 근로자 비율도 2015년 36.3%로 20년 전보다 줄지 않았다.

우리나라의 불평등은 1997년 IMF 구제금융을 기점으로 심화했다. 수출 비중이 커지면서 수출 대기업들은 자본을 쌓았지만, 소득의 불평등은 더 나빠졌다. 국제불평등연구소(WIL)는 올해 1월 발표한 '1933~2022년 한국의 소득 불평등' 논문에서 "한국의 소득 불평등은 지난 30년 동안 악화해 1930년대 식민지 시절에 근접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한국‧독일‧일본이 주도한 '경제 기적'의 시대는 서서히 막을 내리고 있다. 지난해 독일 경제성장률은 –0.3%였고, 한국 경제성장률은 1.4%였다. 대규모 무상이전도 없고, 농촌인구의 대규모 도시 이주도 힘들다. 저임금 수출 제조업은 공장자동화, 중국의 과잉생산으로 경쟁력을 잃었다. 미중 무역전쟁 이후 세계화에 의문을 표하는 나라가 늘어난 것도 기적의 시대를 끝내는 데 일조했다.

한정연 더스쿠프 기자

jeongyeon.han@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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