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나라의 경제는 어느 정도까지 성장할 수 있을까. 산업혁명으로 영국의 국내총생산(GDP)이 1760~1820년 60년간 3배 정도 늘어났지만, 한국의 GDP는 1953년 이후 70년간 무려 5만 배 이상 늘어났다. 한강의 기적은 독일 라인강의 기적, 일본의 경제 기적을 압도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경제 기적의 시대는 저물고 있다.
한국과 독일은 제조업과 수출을 무기로 경제 기적을 일궈냈다. 구미공단 전경. [사진 |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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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최대 부국이었던 영국과 20세기 최악의 빈국이었던 한국을 단순 비교할 순 없다. 그래서 한국 경제의 성장은 더욱 돋보인다. 한국은행이 18일 발표한 국민계정 2차 개편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 명목 GDP는 1953년 477억원에서 2023년 2401조원으로 5만336배 증가했다.
■ 한강과 라인강=제2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 기적'이 발현한 나라는 한국‧독일‧일본 3개국에 불과하다. 이중 한국의 '한강의 기적'은 성장 속도와 기울기 면에서 다른 두 나라를 압도한다. 한국 경제는 1954~1959년 연평균 5.9%씩, 1960~1969년 연평균 8.7%씩, 1970~1979년에는 무려 연평균 10.6%씩 성장했다.
독일은 '라인강의 기적'으로 1948~1972년 연평균 5.7% 성장했는데, 같은 기간 일본은 연평균 8.2% 성장했다. 일본 GDP 성장률도 1960년대에 연평균 10.0%를 기록했지만, 1970년대에는 평균 6.1%로, 1980년대과 1990년대엔 각각 4.0%, 1%대로 추락했다. 계획경제인 중국 정도가 수치상으로는 '한강의 기적'에 가장 근접해 있다. 중국의 연평균 성장률은 1990년대에 9.5%, 2000년대에 9.7%였다.
■ 기적의 원천=독일과 한국을 중심으로 경제 기적의 원인을 살펴보면 3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째, 이전소득이라는 마중물이 존재했다. 독일은 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이 유럽에 제공한 마셜 플랜(Marshall Plan) 원조금의 10% 정도인 14억4800만 달러를 지원받았다.
우리나라는 한일 양국의 '청구권·경제협력에 관한 협정'을 근거로 1966~1975년 무상지원 3억달러, 장기저리 2억달러를 수령했다. 이런 대일청구권자금의 GDP 기여도는 이 기간 연 1.04~1.61%였다.
셋째, 이렇게 만든 제품을 세계 시장에 수출해 성장했다. 1980년대 시장에 몰아친 '세계화'의 혜택을 받은 셈이다. 우리나라의 GDP 대비 수출입 비율은 1970년 36.0%에서 2022년 현재 102.0%로 높아졌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세계화의 4가지 기본으로 무역과 거래, 자본과 투자, 이주와 이동, 지식의 보급을 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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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기적=한국과 독일의 공통적인 부작용도 있다. 제조업은 저렴한 임금근로자를 양산한다. 세계화의 부메랑은 더 독하다. 저임금 근로자를 따라가는 수출 대기업들은 생산기지를 해외로 이전하고, 이는 결국 경제적 불평등을 악화시킨다.
독일은 2010년대 이후 중산층 감소가 심각한 사회문제가 됐다. 구舊 서독 지역 저임금 근로자 비율은 1995년 11.9%에서 2015년 19.7%로 커졌고, 구 동독 지역의 저임금 근로자 비율도 2015년 36.3%로 20년 전보다 줄지 않았다.
한국‧독일‧일본이 주도한 '경제 기적'의 시대는 서서히 막을 내리고 있다. 지난해 독일 경제성장률은 –0.3%였고, 한국 경제성장률은 1.4%였다. 대규모 무상이전도 없고, 농촌인구의 대규모 도시 이주도 힘들다. 저임금 수출 제조업은 공장자동화, 중국의 과잉생산으로 경쟁력을 잃었다. 미중 무역전쟁 이후 세계화에 의문을 표하는 나라가 늘어난 것도 기적의 시대를 끝내는 데 일조했다.
한정연 더스쿠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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