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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9 (목)

현재적 인물로 그려 더 재밌다…‘옥씨부인전’, 임지연 활약에 시청률 8.9% 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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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 셈에 밝은 구덕이는 자신을 괴롭혀 온 주인인 소혜 아씨로부터 도망친 후, 옥씨 가문의 양녀가 되어 태영이라는 죽은 아씨의 이름을 빌려 살고 있다. 사진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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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친 노비 구덕이(임지연)는 우연한 계기로 옥씨 가문의 양녀가 돼서 죽은 아씨 옥태영의 신분을 빌려 살아간다. 성소수자인 현감 아들 성윤겸(추영우, 1인 2역)과 서로의 비밀을 품은 혼례를 하는 구덕이를 멀리서 지켜보며 가슴 아파하는 이가 있다. 그의 모든 처지를 알면서도 계속 연모하는 천승휘(추영우)다.

지난달 30일 첫 방송한 JTBC 토일극 ‘옥씨부인전’의 1화부터 4화까지의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드라마는 이름과 신분, 남편까지 모든 것이 가짜였던 외지부(조선시대 변호사) 옥태영과 그를 지키기 위해 목숨까지 거는 예인 천승휘의 치열한 생존 사기극을 그렸다. 넷플릭스 시리즈 ‘더 글로리’에서 악녀 연진을 연기했던 임지연이 원톱으로 나섰다.

출생과 가문의 비밀을 처음부터 다 드러내놓고 시작하는 '옥씨부인전'은 예측할 수 없는 전개가 특징이다.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시리즈가 아닌 16부작 TV 드라마임에도 이야기를 풀어내는 속도가 굉장히 빠르다. 지난 15일 방송한 4화는 옥태영이 모두가 탐 내는 현감댁 며느리가 돼서 기뻐하는 얼굴로 시작해, 성 소수자 남편의 비밀로 인해 현감 집안이 몰락한 뒤 울부짖는 모습으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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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덕이가 주인인 김낙수 대감과 소혜 아씨의 괴롭힘을 견디지 못하고 아버지인 개죽과 함께 도망치는 장면. 사진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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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몰아치는 전개에 시청률은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전국 시청률(닐슨코리아)이 1회 4.2%로 시작해 2회 6.8%, 3회 7.8%, 4회 8.5%로 잇따라 자체 최고를 기록 중이다. 4화는 분당 시청률이 10%까지 치솟았다. 비상계엄 사태 여파로 지난 7일과 14일 결방했음에도 무서운 기세로 주말극 1위를 향해 달리고 있다. 동시간대 방영 중인 MBC ‘지금 거신 전화는’(6회 6.9%)과 tvN ‘사랑은 외나무다리에서’(8회 5.7%)를 뛰어넘고, 한 달 가량 먼저 시작한 SBS ‘열혈사제2’(10회 10.8%)를 추격 중이다.



실제 사건에 픽션 가미



극본을 집필한 박지숙 작가는 오성 이항복이 쓴 고전소설 『유연전』에서 영감을 얻었다. 『유연전』은 조선 선조 때 실제 있었던 사건을 기록한 범죄수사물 같은 작품이다. 행방불명된 형을 죽였다는 모함을 받아 사형 당한 유연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그의 아내가 진실을 밝히는 이야기다. 뿌리 깊은 위계 구조 때문에 진실을 밝히는 일이 쉽지 않은 당시 사회상을 담았다. 이와 함께 1542년 프랑스에서 가짜 남편 행세를 하다가 사형을 당한 한 남자의 이야기 또한 모티브가 됐다. 이 이야기는 나탈리 저먼 데이비스의 저서 『마르탱 게르의 귀향』에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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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태영이 천승휘와 똑같이 생긴 현감 아들 성윤겸을 만나는 장면. 사진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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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작가는 “처음에는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실존 인물의 이야기를 엮고자 자료를 찾았으나, 극적인 서사를 지닌 여성들의 기록을 발견하기 쉽지 않았다. 조선의 가부장적 질서 속에서 삶을 개척했던 많은 여성들이 자신들의 존재를 기록으로 남기지 못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들어 가상의 인물을 창조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역사에서 소외된 노비, 여성 캐릭터를 앞세우면서 요즘 시대의 사고방식과 가치관을 투영했다. 기존 드라마에선 주인공이 출생의 비밀을 끝까지 숨기려 하지만, 구덕이는 주변에 모든 진실을 털어놓는다. 동성애 소재도 끌고 들어왔고, 계급을 뛰어넘은 조연들의 러브 스토리도 애절하게 그려냈다.

자신과 '다른' 사람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들을 함부로 짓밟는 권력자의 모습은 요즘 시대상을 연상케 한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요즘 사극은 과거의 시공간을 배경으로 하면서도 ‘역사는 결국 권력자들의 기록일 수밖에 없다’는 현대 대중의 달라진 관점이 투영되는 것이 추세”라면서 “허구로 그려내는 당대의 인물들은 사실상 현재적 인물에 더 가깝게 그려지게 되고, 이는 시청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요소로 작용한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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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플갱어 성윤겸과 천승휘의 만남. 배우 추영우가 1인2역을 맡았다. 사진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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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분상승 아닌 주체적인 신분 이동



임지연은 억척스러운 노비에서 우아하고 기품있는 양반으로 변해가는 여정에서 처절함, 두려움, 강인함 등 다양한 감정을 표현해낸다. 우연하게 주어진 신분 상승이 아닌, 주체적으로 신분을 바꿔가는 서사에 설득력을 부여하는 탁월한 연기로 몰입도를 끌어올렸다. 구더기처럼 살라고 주인이 지어준 이름답게, 구더기처럼 질긴 생명력으로 살아가는 구덕이의 행보를 드라마틱하게 그려낸다.

사실, 드라마에서 거짓 인생을 사는 주인공을 시청자들이 응원하는 건 흔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옥씨부인전'은 다음과 같은 대사로 구덕이에 감정 이입하며 지지하게 되는 시청자들의 심리를 설명한다. “눈먼 아비가 어미도 없이 젖동냥으로 키운 심청이가 왕비마마가 되다니요. 현실에서 가당키나 합니까?…사람들은 그냥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이 행복해지는 이야기가 좋은 겁니다. 대리만족하는 거지요.”

공희정 드라마평론가는 “대사 자체로도 공감이 가지만 무엇보다 임지연이 구덕이의 험난하고 팍팍한 삶을 잘 표현하고 있다. ‘더 글로리’, ‘마당이 있는 집’(ENA)에서 자기 생존을 위해 발버둥치는 이미지를 이어가면서도, 한 걸음 더 나아가 ‘다 같이 잘 살아야 한다’는 공동체적 가치관이 잘 느껴지도록 연기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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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태영과 천승휘. 두 사람은 노비 구덕이, 송대감댁 맏아들(서자) 송서인이라는 서로의 과거를 알고 있다. 사진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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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엔 구덕이처럼 자신의 삶을 개척하는 또 다른 인물 천승휘가 나온다. 인기 만점의 전기수(조선시대 낭독가)인 천승휘는 원래 송대감 댁 서자 송서인이다. 송서인은 송대감 댁 맏아들인 줄 알고 살다가 기녀 사이에서 태어난 서자임을 알게 된 후, 집에서 쫓겨나듯 도망쳐 나왔다. 이후 천승휘라는 예명을 지어 전국을 떠돌며 공연을 펼친다. 양반 신분과 안락한 집을 떠나왔음에도,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지금이 더 행복하다"고 말한다.

연출자인 진혁 PD가 구덕이와 천승휘, 두 인물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흙수저, 금수저 등 타고난 현실에 얽매이거나 좌절하지 말고 이들처럼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며 희망을 일구자는 것이다. 그는 "사극이라는 외양을 택했지만 이 시대의 현실을 반영하는 내용이 많다"며 "자기 삶의 주인공이 돼야 한다는 메시지는 후반부로 갈수록 더욱 강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황지영 기자 hwang.jee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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