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개 유통기업 CEO 대상 조사
"비용 절감·투자 축소 계획 있다"
10곳은 가격인상 카드 '만지작'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유통가 최고경영자(CEO) 10명 중 9명이 내년 업계를 둘러싼 경기 전망에 대해 올해보다 훨씬 상황이 좋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경기 침체 영향에 최근 비상계엄과 대통령 탄핵을 둘러싼 정치권의 공방 등 정국 불확실성이 커져서다. 얼어붙은 민간 소비심리로 내수 부진이 지속되고, 환율 상승으로 원자재 가격이 치솟을 것이라는 우려가 컸다.
18일 아시아경제가 유통업계 주요 기업 22개 사의 CEO를 대상으로 진행한 2025년 경기 전망 설문 조사에서 응답자의 91%가 '내년 경기 상황이 올해보다 좋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매우 좋지 않을 것(5점)' '대체로 나빠질 것(4점)' '올해와 비슷한 수준을 유지할 것(3점)' '올해보다는 나아질 것(2점)' '비교적 선방할 것(1점)' 등 객관식 항목 가운데 14명이 4점을 선택했고, 5점을 택한 이들도 6명으로 총 20명이 부정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유통기업 CEO 10명 중 9명 "내년 경기 더 악화"
올해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는 응답은 2명에 그쳤고 상황을 비교적 낙관적으로 보는 CEO는 한 명도 없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이 같은 전망은 민간 소비심리를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데 사용하는 한국은행의 소비자심리지수(CCSI)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올해 7월 103.6으로 정점을 기록했던 소비자심리지수는 8월부터 4개월 연속 기준점인 100을 간신히 상회하는 데 그쳤다. 소비자심리지수는 한국은행이 매달 우리나라 가계부문의 현재생활형편, 생활형편전망, 가계수입전망, 소비지출전망, 현재경기판단, 향후경기전망 총 6개의 주요 개별지수를 표준화해 합성하는 지수로, 소비자들이 체감하는 경기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데 쓰인다. 지수가 100 이하로 내려가면 경제 전반에 대한 소비자 기대심리가 부정적이라는 뜻이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내수 부진으로 수출입을 통해 활로를 모색해온 식음료 업계는 대체로 환율 상승에 따른 경영 환경 변화를 우려했다. 원화 가치가 하락하면서 해외에서 들여오는 식품 원자재 가격이 오르고, 이는 결국 물가를 자극해 국내 소비자의 실질 구매력에도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업계 한 CEO는 "불안정한 환율은 수출입 가격에 영향을 미치고 물가 상승 압력을 가중시킬 것"이라며 "특히 원화 약세가 지속되면 수입 물가가 높아지고, 무역수지 적자가 확대될 것"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미·중 갈등 등 국제정세 불안으로 공급망 차질, 원자재 가격 상승, 글로벌 경기 침체 등이 지속돼 우리나라에 경제에도 부정적인 영향이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내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미국이 자국 우선주의를 강화해 글로벌 통상 환경 악화할 것이란 의견도 나왔다.
CEO 절반 "긴축경영 돌입"…비용절감·투자축소 검토
이들 CEO 절반 이상(13개사)은 내년 비용 절감, 신규 투자 축소 등을 통해 허리띠를 졸라매는 '긴축 경영'을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3개가 긴축경영 가능성을 저울질했고, 긴축 계획이 없는 기업은 6개였다. 구체적인 긴축 경영 방안(복수 응답)으로 비용 절감(75%)을 가장 많이 꼽았다. 다음으로는 투자 축소(25%)를 통해 비용을 효율화하겠다는 답이 많았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내수 의존도가 높은 판매 채널들은 이미 비상경영 체제에 선제적으로 돌입했다. 임직원 인사를 축소하는 '조직 슬림화'로 인건비 부담을 줄이고 있다. 유통강자로 꼽히는 롯데는 비상경영 체제 선포 이후 단행한 최근 인사에서 임원 규모를 지난해 말 대비 13%나 축소했다. 대형마트 업계 1위인 이마트도 이달 들어 희망퇴직 신청을 받고 있다. 앞선 3월, 1993년 창사 후 처음으로 희망퇴직 신청을 받고 나서 올해에만 벌써 2번째다. 한 식품사 CEO는 "최근 경영 여건은 소비, 금융, 국제 이슈 등 경제 각 분야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있어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대다수 의견"이라며 "당사도 현재 상황을 심각하게 판단 중"이라고 했다.
일부 기업은 최근 국내외 정세 혼란으로 환율 상승이 이어지자 벌써부터 가격 인상을 검토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22개사 중 10개사 CEO가 "내년에 가격을 인상할 수 있다"는 취지로 답했다. 이 같은 응답은 특히나 제품 생산 과정에 수입 원자재 의존도가 높은 식품·패션 제조사를 중심으로 나왔다. 한 식품 제조사 CEO는 "소비자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최대한 감내하고 있으나, 이 수준을 벗어나면 가격 인상 외 뾰족한 수가 없다"고 했다. 한 화장품 제조사 CEO는 "올해와 같은 상황이 내년에도 이어진다면 가격 인상 방안도 생각해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앞서 식품·화장품 제조사들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원자재 가격 인상을 이유로 줄줄이 가격 인상에 나선 바 있다. 특히 주류의 경우 평균 7% 내외, 화장품은 5~10%가량 올랐다. 올해 역시 가격 인상이 이어졌다. 동서식품은 지난달부터 인스턴트 커피, 맥심 커피믹스 등의 가격을 평균 8.9% 인상했다. 오뚜기는 지난 9월부터 케첩과 참기름, 볶음참깨 등 24개 제품 가격을 최대 15% 인상했고, 풀무원 차돌된장찌개양념 등 양념류는 2000원에서 2500원으로, 매일유업 상하 밀크파인트 등 아이스크림 제품류도 평균 10.4% 올랐다.
CEO 대부분은 이 같은 긴축 경영을 통해 내년 실적을 방어한다는 전략이다. 내년 회사의 경영 성적표는 22개 사 중 9개사가 내년 매출과 영업이익에 대해 '올해와 비슷한 수준'을 예상했고, 6명은 '올해보다 나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올해보다 나빠질 것'이라고 내다본 CEO가 5명에 그쳤다. '예측하기 어렵다'는 의견과 '아직 구체적인 사업 계획과 전망을 수립하지 못했다'는 의견도 1명씩 있었다. 한 식품업계 CEO는 "국내 사업은 효율적인 경영에 초점을 맞추고 해외사업은 올해보다 공격적인 목표를 수립해 매출과 이익을 끌어올릴 계획"이라고 전했다. 또 다른 CEO는 "매출은 일정 부분 성장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면서도 "원부자재와 각종 비용 부담이 증가해 영업이익은 올해보다 하락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흥순 기자 sport@asiae.co.kr
조성필 기자 gatozz@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