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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8 (수)

해방 80년, 제7공화국 시대를 열자 [김누리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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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12·3 내란사태 핵심 피의자인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 재적 의원 300명 중 204명의 찬성으로 가결된 뒤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일대를 가득 메운 시민들이 형형색색 응원봉을 흔들며 기뻐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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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누리 | 중앙대 교수(독문학)



지난 열흘은 절망과 희망, 환멸과 환희의 변곡점을 수없이 오간 나날이었다. 반세기 전 사라진 줄 알았던 비상계엄의 악령을 한밤중에 모여든 용감한 시민들이 막아냈고, 기회주의적인 정치인들의 괴이한 행동에 경악하면서도 여의도 거리의 활력과 열기, 풍자와 해학에 진한 감동을 맛보았다.



이제 윤석열의 시대는 끝났다. 내년 초에 헌법재판소는 윤석열 탄핵을 인용할 것이다. 온 국민이 지켜본 명명백백한 내란 범죄에 대해 다른 판결 가능성은 없다. 남은 것은 내란죄에 대한 사법부의 판결뿐이다. 쿠데타를 정치적 수단으로 삼는 질긴 악습을 끊어내기 위해서라도 법정 최고형으로 엄단해야 한다.



국민의힘도 수명을 다했다. 국민을 상대로 전쟁을 선포한 대통령에 대한 탄핵에 반대하는 정당은 도대체 어느 나라 정당인가. 의원 대다수가 내란 수괴의 탄핵에 반대표를 던짐으로써 스스로 내란죄의 공범이 되었다. 스스로 기회주의적 수구 정당, 반민주적 파쇼 정당임을 고백했다. 박정희, 전두환의 쿠데타 정당의 피가 ‘연면히’ 흐르고 있음을 자인했다.



수구보수 국민의힘이 괴멸했으니, 자유주의 보수인 더불어민주당만 남았다. 민주당의 독주 시대가 열렸다. 이제 민주당은 자신의 역사적 사명을 자각해야 한다. 그것은 자신의 뿌리대로 ‘좋은 보수’가 되는 것이다. 진보를 가장하지 말고 보수다운 보수가 됨으로써 다시는 수구가 보수를 참칭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스스로 파멸한 수구를 정치의 무대에서 완전히 퇴장시키고 자신의 왼쪽에 합리적인 진보가 등장할 공간을 열어주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지난 80년간 한국 정치를 왜곡해온 ‘수구-보수 과두지배 체제’를 끝장내고, 진정한 ‘보수-진보 대결 체제’를 세우는 것이다.



윤석열의 시대가 끝났다고 바로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윤석열이 아니다. 윤석열이라는 괴물을 낳은 우리의 낡은 제도, 관행, 의식, 규범이 문제다. 윤석열은 제왕적 대통령의 전형이자 신자유주의의 선봉장이고, 권위주의의 화신이자 능력주의 경쟁교육의 산물이다. 제왕적 대통령제, 신자유주의적 경제질서, 권위주의적 조직문화, 능력주의 경쟁교육을 개혁하지 않는 한 괴물 윤석열은 언제든 부활할 수 있다. 우리 사회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 시대착오적인 구질서, 이 앙시앵레짐을 타파해야 한다.



2025년은 해방 80주년을 맞는 역사적인 해이다. 내년은 ‘새로운 대한민국의 원년’이 되어야 한다. 윤석열로 상징되는 낡은 대한민국을 혁파하여 새로운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제왕적 대통령제에서 분권형 대통령제 혹은 의원내각제로 권력구조를 바꾸어야 하고, 수구-보수 과두지배 체제를 유지시키고 새로운 정치세력의 등장을 막아온 선거제도를 개혁해야 한다. 자유시장경제에서 사회적 시장경제로 경제체제를 개혁해야 하고, 냉전체제에서 평화체제로 한반도의 국제질서도 재편해야 한다. 또한 권위주의 문화는 민주주의 문화로, 능력주의 교육은 존엄주의 교육으로 바꿔내야 한다. 그리하여 명실상부 성숙한 민주국가, 선진적 복지국가로 진입해야 한다.



어떻게 새로운 공화국을 만들 것인가. 무엇보다 경계할 것은 문재인 정부의 실패를 결코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민주당만으로는 한국 사회의 질적 변혁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우리 모두는 함께 배웠다. 모든 시민사회단체가 힘을 합쳐 새로운 대한민국의 청사진을 그려내야 한다. 나는 ‘국가대개혁 범국민시국회의’(가칭)를 구성할 것을 제안한다. 학계, 교육계, 종교계, 노동계, 문화계, 법조계 등 모든 시민사회단체가 정치계와 머리를 맞대고 새로운 대한민국의 비전, 제7공화국의 청사진을 설계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정치인들이 모든 논의를 독점하거나 주도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특히 민주당은 박근혜 탄핵 이후 국민이 건네준 압도적 권력에도 불구하고, 즉 대선·총선·지방선거의 압승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가 절실히 필요로 하는 개혁을 거의 한 것이 없다는 점을 인정하고 통절히 반성해야 한다. 박근혜 탄핵은 수구에만 트라우마가 된 것이 아니다. 수구 보수에 박근혜 트라우마가 있다면, 자유주의 보수와 진보엔 문재인 트라우마가 있다.



한국 현대사를 돌아볼 때 참으로 놀라운 점은 광장을 뒤흔드는 역동적인 국민주권의 에너지이다. 김대중을 살리고 노무현을 세운 바로 그 에너지가 다시 살아나 윤석열을 몰아냈다. 이 광장의 활력과 열기를 체제 전환의 동력으로 삼아야 한다. 폭발적인 국민주권의 에너지를 모아 해방 이후 80년 동안 지속된 구체제를 청산하고 새로운 대한민국, 제7공화국 시대를 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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