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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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가 A에게 1억원을 빌려줬는데 약속한 날짜가 됐는데도 변제하지 않았어. A를 사기죄로 고소하려고 하니 고소장 초안을 작성해줘.”
최근 법률 인공지능(AI) 에이전트의 존재를 알게 된 변호사 김 모씨는 이 같은 내용을 AI 에이전트 ‘슈퍼로이어’ 대화창에 입력하고 대여일과 변제기일, 이자율 등 구체적 정보와 함께 “피해자의 변호사 입장에서 피해자의 심적 고통이 잘 드러나도록 쓰고 적절한 대법원 판결도 인용해 달라”는 주문을 추가했다.
슈퍼로이어는 단 1분 만에 사건번호, 고소 취지, 범죄 사실 등으로 구성된 양식에 맞는 초안을 뚝딱 만들어냈다. 피해자의 고통을 담아 달라는 지시에 맞춰 “피고소인의 사기 행위로 생계마저 위협받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로 인해 고소인은 극심한 스트레스와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습니다”라는 문구까지 삽입했다. 대법원과 특허법원 판례도 알아서 추가해 서면 초안을 완성했다.
김씨는 법률 AI 에이전트의 조언도 받고 있다. 토사 붕괴 사고 관련 기사와 함께 ‘이 사고의 주체별 법적 책임은 어느 정도인가’를 묻자 슈퍼로이어는 “○○법 ○○조 ○○항에 따라 B가 안전관리에 대한 일차적 책임이 있지만, 사고 당시 긴급 대피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한 점을 고려할 때 감경될 여지는 있어 보인다”는 법률의견서를 순식간에 작성했다.
생성형 AI를 활용한 에이전트 서비스는 금융, 법률, 의료 등 인간이 다년간의 경력을 기반으로 제공했던 전문 서비스 분야의 판도까지 확 바꿔놓고 있다. 구글, 오픈AI 등 자체 대형언어모델(LLM)을 운영하는 글로벌 빅테크가 아니더라도 한 업종만 전문적으로 파고드는 ‘버티컬 AI 에이전트’ 서비스를 통해 AI 시장에서 성과를 거두는 국내외 기업도 늘어나는 추세다. 단순 챗봇(1단계)에서 추론자(2단계)를 거쳐 에이전트(3단계) 수준까지 AI가 발전한 가운데 향후 혁신자(4단계) 이상으로 올라설 경우 AI는 산업 전반을 통째로 바꾸는 게임 체인저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17일 정보통신기술(ICT) 업계에 따르면 수많은 문서에 시달리는 법률 전문가를 도와주는 AI 에이전트의 출현은 업무 전반에서 혁명을 일으키고 있다. 캐나다 리걸테크 기업 키라시스템스는 기업의 각종 계약서와 법률 문서를 스캔하면 중요한 조항과 함께 불공정한 조항을 자동으로 찾아내고 이를 시각화해 보여주는 AI 에이전트를 운영하고 있다. 로스인텔리전스가 IBM의 AI 시스템 왓슨을 기반으로 만든 AI 에이전트 ‘로스’는 법률 문서 분석부터 관련 사례·판례 검색까지 변호사에게 꼭 필요한 업무 비서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이를 통해 판례 분석 시간을 기존보다 80%나 단축할 수 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국내에서는 법률 서비스 플랫폼 ‘로톡’을 운영하는 로앤컴퍼니가 국내 최초의 대화형 법률 AI 에이전트 슈퍼로이어를 선보였다. 461만건에 달하는 판례 데이터를 활용해 고소장 등 법률 문서 초안 작성뿐 아니라 판례 리서치, 검사의 반대 신문 사항에 대한 예상 질문 작성 등 법조 업무 전반을 실제 사람처럼 해결하는 것이 특징이다. 지난 7월 출시된 후 현재까지 이 서비스에 가입한 변호사는 5400여 명으로 국내 전체 변호인 중 15%에 달한다.
금융도 AI 에이전트 활약이 돋보이는 분야다. 가장 유명한 AI 금융 비서는 뱅크오브아메리카(BoA)의 에리카다. 매일 평균 150만명의 이용자에게 문자와 음성 대화를 통해 계좌 조회, 카드 관리, 개인 송금, 거래 보고, 투자 조언 등 다양한 유형의 금융 서비스를 지원하는 에리카는 이미 누적 3200만명이 넘는 이용자를 유치하며 성공적인 금융 AI 에이전트로 자리매김했다.
기업 재무 업무를 돕는 에이전트도 눈길을 끈다. 국내 기업 웹케시가 최근 출시한 AI 자금 비서 서비스 ‘AI CFO’는 생성형 AI를 활용해 회사 자금을 실시간 모니터링하고 이를 토대로 가용 자금과 대출 만기, 거래처 입금 여부 등에 대한 최고경영자(CEO) 질문에 답을 내놓는다. 일간·주간·월간 단위로 자금 관련 보고서를 자동으로 만들어 경영진에게 전달하고 거액 지출이나 마감 시간 외 거래 같은 상황이 생기면 즉시 알람을 보내 횡령을 막아준다.
의료와 교육 분야에도 AI 에이전트가 빠르게 침투하고 있다. 카네기러닝의 ‘매시아(MATHia)’는 미국 카네기멜런대 AI 연구자들이 개발한 중·고등학생용 수학 지능형 교육 시스템으로, 학생의 학습 패턴을 분석해 개인화된 공부 계획을 제안한다. 이미 미국 내 여러 학교에서 수학 성적이 낮은 학생들에게 맞춤형 학습을 지원하는 데 활용하고 있다. 영국 헬스케어 스타트업 바빌론헬스의 앱 ‘바빌론’은 사용자와 24시간을 함께하며 주치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의료 AI 에이전트다. 환자가 증상을 입력하면 AI가 초기 진단을 내리고 필요하면 의사에게 예약해준다. 이 서비스는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급성장하며 현재 전 세계 240만명이 사용하는 대표적 비대면 헬스케어 앱으로 성장했다.
전문 분야에서 인간 수준의 능력을 발휘하는 버티컬 AI 에이전트는 기업 업무에 빠르게 확산될 전망이다. 딜로이트의 2025 기술·미디어·통신(TMT) 예측 보고서에 따르면 2025년까지 생성형 AI를 사용하는 기업 중 25%가 AI 에이전트를 도입할 전망이다. 2027년에는 그 비율이 50%까지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관련 시장이 각광받으며 최근 2년간 AI 에이전트 관련 스타트업에 투자된 글로벌 자금은 20억달러(약 2조8700억원)를 돌파한 것으로 집계됐다.
AI 에이전트가 활약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분야로 꼽히는 것이 가상화폐다. 현행 금융 규제상 은행 계좌나 결제 서비스, 서면 계약은 보안 문제 등으로 인해 AI 에이전트가 100% 자유롭게 사용하기 어렵지만 블록체인과 웹3 지갑, 스마트 계약, 디지털 자산 등에는 제약이 없기 때문이다. 이를 활용해 최근 블록체인 개발사 스카이파이어는 AI 에이전트가 자율적으로 돈을 쓸 수 있는 결제 플랫폼을 출시했다. 특정 기업이 현금을 USD코인(USDC)으로 전환해 전자지갑에 충전해두면 AI 에이전트가 자체적으로 지시한 업무에 맞게 독립적으로 결제를 처리하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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