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3일 저녁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4일 밤 서울 국회의사당에서 계엄군이 국회 본청으로 진입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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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법한 계엄 선포를 통한 속칭 ‘윤석열 내란 사건’이 발생하고 제법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그날 놀랐던 가슴이 제대로 진정되지 않고 있다. 계엄 선포가 너무나도 비현실적이고 충격적인 일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그처럼 시대착오적이고 반헌법적 사고방식을 가진 위험인물이 아직도 우리 사회의 요직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데서 오는 걱정과 불안 때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 3일은 내게 평범하다는 말이 부족할 정도로 너무나도 평온한 날이었다. 아내가 친구들과 지방으로 여행을 떠난지라 일찍 퇴근해 오랜만에 큰아이와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맛있게 저녁을 먹고, 미룰 수 없는 집안일 몇가지를 마친 뒤, 이튿날 새벽 운동을 나갈 생각으로 밤 10시 무렵 잠자리에 들었다.
막 잠이 들었을 무렵 나를 깨우는 큰아이의 말은 도무지 믿을 수 없는 황당한 내용이었다. ‘요즘 같은 세상에 비상계엄이라니?’ 너무 놀라 방송과 인터넷 뉴스를 찾아보니,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곧바로 법무부 실·국장 단톡방을 확인해보니, 계엄 선포에 따라 법무부 실·국장을 비롯한 직원들에게 비상소집이 발령돼 있었다.
류혁 전 법무부 감찰관 |
과천 법무부 청사에 도착해 장관 회의실에서 장관님께 ‘이게 계엄 관련 회의냐’고 물었다. 박성재 장관이 ‘그렇다’고 하기에 미리 결심한 대로 ‘계엄 선포에 따를 수 없다’는 의사를 밝히며 사직하겠다고 말씀드렸다. 장관 부속실에 비치된 법무부 용지에 사직서를 작성해 4일 0시9분 비서관에게 건네고 부속실 직원들과 차례로 작별 인사를 하는데, 깊은 분노와 함께 울컥하는 감정이 밀려왔다.
겨우 운전해 집으로 돌아와 에스엔에스(SNS)에 사직했음을 알리는 글을 올렸다. 즉시 기자 한분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왜 사직한 것이냐, 혹시 계엄에 반대해 그런 것이냐’고 물었다. 평소 공감 가는 기사를 많이 써오던 기자였기에 내 생각을 거침없이 이야기했다. 혹시 닥쳐올 수 있는 어려움에 대한 걱정보다는 시대착오적이고 위헌·위법한 계엄, 개인적 위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개인 맞춤형 계엄’에 대한 분노가 훨씬 컸기 때문인지 평소와 달리 꽤 흥분된 어조로 이야기했던 것 같기도 하다.
이제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소추가 가결됐고, 수사기관들도 경쟁적으로 형사책임을 묻기 위한 절차를 진행하는 중이기에 분노의 감정이 조금씩 가셔질 만도 하지만, 사태 뒤에도 반성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그의 언행을 접할 때마다 마음속 깊은 곳에 응어리진 부정적 감정이 커지고 무거워지고 있음을 느낀다. 또 이 같은 터무니없는 궤변을 앞으로도 헌법재판소 탄핵심판과 형사재판 과정에서 자주 접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에 한숨이 나오기도 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계엄은 고도의 통치행위로서 사법심사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주장을 늘어놓았다. 그러나 이 변명은 확립된 최신 헌법 판례에 무지함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일뿐더러, 자신이 나치의 반인륜적 전쟁범죄를 옹호했던 일부 법실증주의자들과 똑같은 생각을 가진 시대착오적 인간임을 공표한 것이나 다름없다. 더 나아가 자신이 법 위에 군림하는 폭군과도 같은 특별한 존재라고 착각하고 있음을 자인하는 것 아닐까 싶기도 하다.
대통령은 ‘국회에 경고하려고 했던 것일 뿐이며, 2시간 만에 끝나는 그런 내란이 어디 있느냐’는 터무니없는 변명을 늘어놓기도 했다. 어쩌면 엄청난 유혈 사태와 헌정 중단을 불러올 수도 있었던 이번 내란이 다행히 단시간 안에 종료된 것은, 대통령 주장처럼 이번 사태가 ‘단순 경고’ 목적의 계엄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동원된 계엄군들의 준비 부족과 미숙함, 지시 내용에 의문을 품은 일부 병력의 임무 수행 거부, 국회의 빠른 계엄 해제 의결, 시시각각 상황을 전파하며 계엄군에 맞선 시민들과 국회 보좌진들의 용기 있는 대응 등이 종합된 다행스러운 결과였음은 누구나 아는 바와 같다.
아울러 우리 형법이 규정하고 있는 ‘국헌을 문란하게 할 목적’의 내란은, 폭력적인 수단을 동원하여 나라의 헌법 질서를 위태롭게 하는 경우 즉시 완성되는 범죄다. 국가원수뿐만 아니라 그 누구에 의해서도 저질러질 수 있으며, 헌법 질서를 위협하는 상황이 2시간이 아니라 단 1분이라도 발생하면 즉시 완성되기에 위와 같은 변명은 너무나도 터무니없는 것이라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외에도 대통령은 여러 주장을 늘어놓았지만, 궤변과 거짓말이 혼합된 허위 주장으로 반박할 가치조차 없으며 자신의 책임을 조금이라도 회피하기 위한 비겁하고 찌질한 변명일 뿐이다.
12.3 밤 대국민담화를 통해 비상계엄 선포를 밝히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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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사건을 계기로 사직서를 제출하고 계엄 선포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내 의견을 분명히 밝히게 되었으니, 나 자신도 윤석열 대통령이 말하는 속칭 ‘반국가 세력’의 일원이 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이런저런 궁리 끝에 이런 생각에까지 이르게 되면, 어이없어 헛웃음이 나오기도 하지만 이와 더불어 걱정과 탄식, 분노가 어우러진 서글픈 감정도 솟구쳐 오른다.
얼마 전 내가 걱정된다며 전화를 걸어 온 중독치료 전문 정신과 의사인 오랜 친구에게 ‘최근 평소와 달리 깊이 잠들지 못하고, 천천히 달리기를 해도 평소보다 심박수가 높게 나와 걱정이다. 술이라도 한잔 마셔 억지로라도 잠을 청해봐야겠다’고 하소연했다. 이에 친구는 이런 얘기를 해줬다.
“부정적 감정을 회피하기 위해 술을 마시는 것은 진짜 해결책이 아니야. 술을 많이 마시면 알코올 분해 과정에서 나오는 독소로 전두엽이 손상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렇게 되면 화를 자주 내고 자신의 행동에 대한 부정적 결과를 과소평가해 남들이 보기에 엄청난 잘못을 주저 없이 저지르게 되기도 해. 그리고 타인이 느끼는 고통에 무감각해지면서 자신에 대한 공격에 과도하게 공격적으로 반응하게 되지. 결국 이런 성향 때문에 가족, 동료 등 주변 사람들이 모두 떠나게 되는 거야. 그래서 모든 건전한 관계가 상실되고 주변에는 비위를 맞춰주면서까지 뭔가 이익을 보려는 사람들만 남게 되니 더더욱 자기중심적인 사람이 돼가지. 그렇지만 결국에는 그런 사람들조차 모두 떠나게 돼. 또 자기중심적인 사람은 보기와 달리 자존감이 낮은 경우도 많은데, 그 때문에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잘 받아들이지 못해. 결국 혼자만 남게 되는 거야. 술은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고.”
친구의 고마운 조언을 받아들여 운동화 신발 끈을 조여 매고 오래전부터 해오던 아침 달리기를 다시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지난 3일 비상계엄 선포로 시작된 내란 사태가 완전히 마무리되려면 꽤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나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평소 내 모습으로 돌아가 소소한 일상 속에서 행복을 느끼며 45년간 쌓아온 민주주의의 전통이 회복돼가는 과정을 차분히, 굳은 마음으로 지켜보려 한다.
12·3 내란사태 핵심 피의자인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다음날인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인근에서 시민들이 모여 헌법재판소에 조속한 탄핵 심판을 촉구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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